보통 사주팔자에 정관이 강하게 들어있는 사람은 항상 정당하고 바른 생활을 한다. 정의의 편에서 바르지 않음과 싸운다. 옷차림도 정장을 선호하고 흐트러짐을 싫어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복종하며 닮기위해 노력한다.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을 보면 튼튼한 정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다른 당의 국회의원들이 편관이나 상관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하는 것에 비해 유독 새누리당은 정관을 쓰는 국회의원이 많은게 특이할 정도다. 그들 대부분이 과거 관료사회의 일원이었거나 기업, 언론, 사학재단에 관여해 정관을 통한 고위직을 지냈기에 그렇다고 예측해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거다. 정관이 정말 바른 인자인데 과연 그 인자를 가진 사람이 인간 말종들의 표상인 새누리당 국회의원에 많다고? 하는 의문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인간 말종짓은 가족 읽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없음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가 그것이다.

 

인간의 상식, 인간의 정의는 인간의 윤리, 인간의 도덕, 인간의 인권과는 사실 별개로 돌아간다. 정치권력의 사상에 따라, 통치자의 인간성에 따라 국가의 상식과 정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군납비리를 보면 인간의 상식과 정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군납비리 재판과정에서 고위급 장성들이 수조원대의 군납비리를 저지생계형 비리라고 했다. 외국인이 보면 대한민국 군대는 월급을 주지 않나라고 생각할만한 황당한 괘변을 당당하게 법정에서 할 수 있는 똥별들이 군대에 수두룩 한 것이다. 최근 정부의 특수활동비 같은 돈도 많은 고위직 공무원과 새한국당 사람들은 생활비나 용돈으로 생각하고 빼쓴 정황이 뚜렷하다. 모두 정관을 강하게 쓰는 사람들이 한 짓이다. 그렇다면 정관은 무엇일까? 필자는 정관을 설명할 때 상대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인자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뭔가 빠릿하고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을 보이고 있지만, 이명박이나 박근혜 때는 그런 상 병신도 없다 싶을 정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관이 뭐라고? 상대편 마음을 읽는 인자... 대통령이라는 상대가 제대로 일할 마음이 있으면 정관을 가진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게 되고, 사기꾼 대통령이 있으면 적당히 아부하면서 같이 사기치게 되고, 저능아 수준의 대통령이 있으면 그 저능아를 누가 조종하는지 찾아내서 그 조종자에게 아부하는데 열중하고, 복지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실제 당선직 공무원이 가지는 편관성이나 상관성이 아닌 정관성을 많이 가지는 이유는 영남권의 묻지마 투표 때문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줄 잘 잡아서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 되니깐 비판이나 혁명성을 가진 사람보다는 무조건 예, 예 하면서 아부하고 줄 잘서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이스카웃도 못되는 것들이라고 하기도 했었다.

 

정관은 카멜레온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사주에 정관을 잘 쓸 수 있고, 대운에서 정관대운이 잘 흐른다면 공무원, 대기업 등 직장생활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업무능력이나 개인의 경쟁력이 아닌 조직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그것 역시 현대사회에선 경쟁력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능력자를 뽑고 싶다면 정관이 강한 사람은 피해야 한다. 조직에, 회사에, 업무에 잘 적응하겠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기에 그 사람으로 인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나 작은 조직이나 회사라면 더 그렇다. 필자가 한창 벤처기업의 직원을 뽑아주러 다닐 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지금 직원이 4명인데 1명을 더 뽑는건 단순히 5번째 직원을 뽑는게 아니라 회사 경쟁력의 20%를 책임질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관이 강한데... 이런 나쁜 말을 쏟아내 놓다니 하면서 서운해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제 본인의 스타일을 알았으니 노력하시면 된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고 인지의 동물이다. 알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맹목적인 따름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고, 그게 맞는지, 옳은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와 왜 생각이 다른지... 다각도로 생각해보고 일하고 행동하면 된다. 대부분의 정관은 노후가 외롭다. 더이상 아부할 곳도 챙김을 받을 곳도 없는데... 내가 주도적으로 해본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경험을 하고, 비판을 하고, 비평을 하는 노력을 하시라. 인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개선한다. 그러니 뭐라도 자꾸 해보면 없던 것도 생기고, 못하는 것도 잘하게 된다.

 

 

인컨설팅 연구소    이동헌 

사주명리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분들은 좋은 운이 오면 그냥 좋고, 좋은 운이 오지 않아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운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마냥 그 운이 자신에게 좋은 작용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바이바이하고 다 지나갈 때까지 말이다.

 

과거의 사주명리학과 현대의 사주명리학의 해석에는 크게 세가지 차이점을 고려해야한다. 첫번째는 인구증가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자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말 특정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이 10명이었다면 지금은 3배정도 증가한 인구에 비례해 30명이 넘는다. 두번째는 지역편중이다. 과거에도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지만 최근만큼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100년전과 비교해 약 3배 늘었지만 서울의 인구는 30배, 수도권을 합하면 60배 정도 증가했다. 그만큼 경쟁때문에 서울, 수도권에서의 삶은 팍팍하게 된 것이다. 세번째는 평균수명이다. 100년 전의 평균수명은 50살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80살이 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60갑자로 이루어진 사주는 61살과 1살의 사주가 같다. 나쁜 사주를 가진 사람보다 좋은 사주를 가진 사람의 생존확률이 높으므로 과거보단 현재에 좋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훨등히 많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노령층이 젊은이가 하던 아르바이트 일을 차지하는 비중이 느는 부분이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노령층과 젊은층을 동시에 고용하려는 노력은 인구가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지역편중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건 이젠 무조건 경쟁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경쟁이 필요하지 않았던 일들이 현재에는 경쟁을 통해야만 할 수 있게 변했다. 운이란건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 기회를 잡고 말고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었다.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옛말만 봐도 원래부터 운은 기회이고 그 선택은 본인의 판단이라는 걸 알수 있다. 그런데 현대에는 본인에게 기회라는 운이 왔을 때, 그 운이 본인 한명에게만 온게 아니다. 과거라면 본인이 취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했지만, 지금은 본인이 선택하고 싶어도 같이 운이 들어와 선택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경쟁할 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왜 그렇겠는가? 그렇다. 앞에 말한대로 인구수가 많아지고, 살고싶은 지역이 편중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같은 운을 가지고 경쟁하는 구도가 생겨버린 것이다.

 

옛날엔 이런 경우가 흔했다. 특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어디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아가는 사례다. 혼자 독야청청하고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니 굳이 능력이 있다면 자신이 나서 알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삼고초려란 말도 옛날엔 흔할 법도 했겠다 싶다. 그런데 말이다. 요샌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진 몰라도 그 정도되는 사람은 흔하다. '아니야. 난 정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라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묻고 싶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가? 최근 몇년간 오만가지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겼다 사라졌다. 원래 미디어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소개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그게 뭐 특별해, 더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해버리는 어떻겠는가? 그럼 그 중 최고를 뽑아보자는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취지인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능력이 정말 출중하다면 일단 자신의 능력을 알려서,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과 당신과의 능력차를 확인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인터넷이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인터넷과 관련된 회사, 도구, 아이템은 수명이 짧다는 것에도 토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인터넷 상에서 생겨난 이래 사라지지 않을 것이 딱하나 있다. 그건 블로그다. 처음 1인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블로그는 언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활황하다가 곧 사라질 것 같았지만, SNS의 종말을 점치는 지금에도 블로그는 여전히 개인이나 기업, 단체의 사이버홈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활용도를 더해가고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라인 같은 대세 SNS들도 블로그의 홍보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블로그는 흡사 고대 그리스 광장 구석에서 누가 듣던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그 생각에 대해서 듣고 이야기하는 하나의 광장 기능을 하고 있는게 블로그인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곳... 그 곳이 블로그인 것이다. 무한경쟁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다는 IT 생태계에서 블로그가 살아남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 즉 자신을 알리는 가장 최적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블로그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 생각을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별화되고 잘하는게 있다면 사람들은 몰리게 된다. 블로그의 생존에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생존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필자는 현대를 인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보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인기가 더 큰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인기는 얻는 첫번째 방법이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블로그는 그 좋은 도구인 것이다.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에 대해서 100% 실력만 인정하는 무한경쟁이라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딴 이유로 한번도 왕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고 많이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는 원래 그렇게 100% 실력만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한다. 양궁이 실력만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하는게 대단한게 아니고 그 경쟁을 이겨낸 우리나라 양궁선수들 한명한명이 진짜 대단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유도가 금메달을 많이 딸거라고 언론에서 많이 보도가 됐다. 그런데 결과는 노메달이다. 그런데 노메달인 유도의 결과를 보고는 과거의 몇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추성훈이 국가대표가 되기위해 한국에 왔다가 텃세에 밀려 돌아간 일이나, 음주교통사고를 낸 선수를 금메달이 유력하다는 이유로 올림픽에 출전시킨 사례가 그것이다. 실력만 보는 무한경쟁이 아닌, 기득권을 인정하는 선발구조는 분명 잘한다고 뽑긴 했겠지만 무언가 간절함은 떨어지는 것 같은 눈빛을 가진 국가대표 선수가 많아진 요인이다. 다른 사례로 IOC도 인정한 논문표절을 한 메달리스트가 버젓이 국회의원이 되고 체육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실력만으로 국가대표가 되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아니면 그런게 싫어서 정말 실력이 있거나 꿈이 있는 유망주들이 얼마나 많이 그 길을 포기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과거 박찬호, 박지성, 지금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을 봐도 당연히 이들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실력을 인정받고 그 곳에서 성장해 가고 있다. 원래 그게 상식이고, 그게 정의고 그래서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현실로 돌아오자. 그리고 삶의 방법을 찾아보다.

첫째, 운... 그따위꺼 없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경쟁상황이니 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하자. 요행따위 바라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아닌 것 같으면 포기도 빨리하자.

둘째, 숨쉬는 것도 경쟁인 상황에서 가만 있다고 당신에게 눈길을 머무를 사람은 부모님도 힘들다. 그러니 잘하는게 있다면 강점이 있다면 항상 알리고 또 알려라.

셋째, 소수에게 의존된 삶을 살지마라. 유명한 누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유명한 사람을 만든건 대중의 인기이거나 부정부패다. 그러니 그냥 그 소수들보다는 대중에게 어필해서 인기를 얻을 노력을 해라. 뭘하든 인기만 있으면 돈은 따르는 시대다.

넷째,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있다. 실제 그 책의 배경이 된 하바드 대학의 강의 동영상을 보면 정말 저런게 정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책 내용도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대한민국에 오면 그 정의가 그 정의가 아니게 된다. 참고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 교수를 한국에 초청해서 대담을 진행한 곳은 종편 채널A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다. 처음엔 과연 책이나 읽어보고 저 방송국에서 저당에서 초청했을까 싶었지만, 곧 아... 다 같은 정의가 아니지 하고 생각을 말았던 기억이 있다. 정의에 대한 생각도 재각각인 대한민국에서 너무 순진하게 살지말자. 1 더하기 1이 꼭 2가 아니라는 건 창의력 책에서 나오는 얘기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현실임을 알고 항상 의심하고 확인하고 살자.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