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부부나 연인이 싸울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그때 네가 분명히 그랬잖아!"
"내가 언제? 네가 그랬지!"


분명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이 겪은 일인데,
두 사람의 기억은 마치 서로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처럼 
어긋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필자가 단언컨대, 대개는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진심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기억이 
애초에 서로 다르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여기서 '만들어졌다'는 표현을 잘 봐야 한다. 
사람들은 기억을 녹화 테이프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해 둔 영상을 
그대로 꺼내 본다고 믿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새로 조립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어떤 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을 그 자리에서 
다시 짜 맞추는 작업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짜 맞추는 과정에 지금의 감정, 
그동안 쌓인 해석, 듣고 싶은 결론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러니 같은 대화를 두고도, 
서운했던 사람은 상대의 날 선 말투를 중심으로 기억을 짜고,
억울했던 사람은 자기가 참았던 순간을 중심으로 
기억을 짠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점점 더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기억은 처음부터 빈틈투성이다.
우리는 겪은 일을 다 담아 두지 못한다.
띄엄띄엄 남은 조각들 사이의 빈 곳을 
나중에 그럴듯한 내용으로 메운다. 

 

이 메우는 작업이 워낙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우리는 실제로 겪은 부분과 
나중에 채워 넣은 부분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는 강한 확신은 
기억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아니게 된다. 

 

오히려 거꾸로일 때가 많다. 
여러 번 곱씹은 기억일수록 그만큼 
여러 번 다시 조립됐다는 뜻이니, 
강하게 확신하는 기억일수록 
원본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거다. 

 

이걸 알면 등골이 좀 서늘해진다.
우리가 그렇게 굳게 믿는 "그때 그랬잖아"가 사실은 
내가 여러 번 고쳐 쓴 이야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 나온다.

 

관계의 다툼에서 "누가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는가"를 
끝까지 가리는 일은 대개 의미가 없다는 거다. 
두 사람 다 자기 기억을 진실로 믿고 있고, 
그 믿음은 거짓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본래 성질에서 나온 거다. 

 

그러니 과거의 사실을 놓고 끝까지 다투는 건, 
서로 다른 카메라로 찍힌 두 영상을 들고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이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이건 누구나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영원히 결론이 안 나는 과거 어떤 장면의 이유다. 
그러니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고 끝장을 보려고 할수록 
둘 다 지치기만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권한다.
"그때 정확히 어땠는가"를 두고 다투지 말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로 
대화의 무게를 옮기라고 말이다. 

 

과거의 사실은 합의가 안 돼도, 지금의 감정은 나눌 수 있다.
"그때 네가 틀렸어"는 끝없는 싸움을 부르지만, 
"그 일로 나는 많이 서운했어, 
오해를 없었다면 달랐을 텐데.."는 대화의 시작이 된다. 

 

같은 자리를 다른 카메라로 찍었다는 걸 
둘 다 인정하는 순간, 
두 개의 어긋난 기억은 싸움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바뀐다. 

 

기억은 못 맞춰도 마음은 맞출 수 있다는 것, 
이걸 아는 부부는 늙어서도 사이가 좋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적당한 거리> 는 2026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얼굴로 사람을 읽는다는 것

컨설팅사례보고 2026. 6. 26. 07:47 Posted by 인컨설팅

필자는 오랫동안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을 해 왔다.
관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내 얼굴 어때요? 부자 되겠어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필자가 얼굴에서 읽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자주 짓는 감정이 고스란히 새겨진다. 

 

늘 찡그리는 사람은 미간에 골이 패고, 
잘 웃는 사람은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이 잡힌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과 잘 참는 사람은 입매가 다르다.
얼굴은 거짓말을 잘 못 한다.

 

마음이 오래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관상이고, 관상을 보는 거다.

 

관상은 미신이 아니라 관찰의 통계인 것이다.
그 관찰에 부자 얼굴도 많긴해서 보면 안다. 근데...
겨우 그거 보는 게 뭐라고 일이라고 했겠나?

 

그런데 사람들은 관상을 잘 모르다 보니, 
관상을 오해하는 면이 크다.

 

관상이라는 학문에는 없는 
미디어나 소설, 요즘은 조회수를 노리는 
엉터리 관상 신문 기사 등에서 픽션으로 사용된 
유사 사이비 관상 이론을 진실이라고 믿고는 
거기서 본 걸 실생활 속에서 써먹는다. 

 

얼굴 한 번 슬쩍 보고는
‘저 사람은 인상이 안 좋아’
‘관상이 사납다’
'무슨 상이라서 어떻고, 무슨 상이라서 어떻다'
내가 어디서 봤는데 하며 사람을 단정해 버리는 거다.

 

관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얼굴로 사람을 읽는 일은 
그 첫인상의 함정과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얼굴을 보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왜 조심해야 하는가?
첫째, 얼굴은 한 장면이 아니라 
흐름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으로는 사람을 못 읽는다.
가만있을 때의 얼굴, 웃을 때의 얼굴, 
화날 때 일그러지는 얼굴, 
남의 말을 들을 때의 얼굴이 다 다르다.
진짜 그 사람은 이 여러 얼굴의 합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처음 마주친 한 장면, 
그것도 긴장하거나 피곤한 순간의 얼굴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해 버린다. 

 

그건 영화의 한 컷만 보고 
줄거리를 다 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둘째, 얼굴을 읽는다면서 사실은 
자기 편견을 읽는 경우가 너무 많다. 

 

눈이 작으면 째진 눈이라 사납다 하고, 
광대가 나오면 드세다 하고, 
입이 크면 욕심이 많다 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나?
대부분이 그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이다.
그 고정관념을 얼굴에 덧씌워 놓고 
"관상을 봤다"고 하는 거다. 

 

이건 얼굴을 읽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편견을 얼굴에 투사하는 것에 가깝다.

잘생긴 사람은 성격도 좋을 거라 믿고, 
인상이 험한 사람은 속도 험할 거라 믿는 그 마음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외모가 호감인 사람에게 
능력이나 인성까지 후하게 점수를 준다. 
면접에서도, 첫 소개팅에서도 이게 작동한다. 
그런데 살아보면 어떤가?

 

얼굴 곱던 사람에게 크게 데이고, 
인상 험하던 사람에게 깊은 정을 받는 일이 
인생엔 수두룩하지 않나? 
츤드레란 단어가 만국 공용어가 된 이유도 이것 아니겠나?

 

그럼, 얼굴을 읽는 일은 다 부질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제대로만 읽는다면 얼굴은 분명 많은 걸 알려준다. 
다만 그 '제대로'가 어렵다.

 

필자가 권하는 올바른 스텐스는 이거다.
얼굴에서 받은 첫인상은 
'의문의 출발점'으로만 쓰라는 것이다. 
‘이 사람 표정이 좀 굳어 있네’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추고 단정하지 말고 
‘원래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궁금해하라는 거다.

 

인상은 가설이고, 
그 가설은 그 사람을 겪어 가며 확인하거나 
수정해야 할 무엇이지, 
처음부터 박제할 결론이 아니라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작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얼굴은 
남의 얼굴이 아닌 나의 얼굴이다. 

 

앞서 말했듯이 얼굴엔 자주 짓는 감정이 새겨진다. 
그 말은 곧,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가 
결국 내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남의 관상을 보는 데는 그렇게 열심이면서, 
자기 얼굴에 무엇이 쌓이고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매일 짜증과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과, 
매일 감사와 호기심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은 
십 년 후에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다.
그러니 얼굴 공부의 끝은 결국 자기 마음 공부로 돌아온다.

 

좋은 얼굴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오래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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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첫인상은 왜 그렇게 안 바뀌는가?

컨설팅사례보고 2026. 6. 24. 14:03 Posted by 인컨설팅


사람을 처음 볼 때 우리는, 

겨우 몇 초 만에 그에 대한 판단을 끝낸다. 

 

옷차림, 말투, 표정 등으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빠르기도 빠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그 속도가 아니다.
한번 메모리 된 그 단정이 좀처럼 안 지워진다는 거다.

 

이걸 두고 필자는
'첫인상은 콘크리트처럼 굳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빨리, 그리고 단단하게 첫인상이 굳을까?

 

사람의 뇌는 게으르다. 
정확히 말하면 효율을 추구한다. 
매번 모든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겪어 보고 판단하려면
시간도 에너지도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적은 단서로 빠르게 결론을 내리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먼 옛날에는 낯선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순식간에 판단하지 못하면 목숨이 위험했을 테니, 
이건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가깝다. 

 

문제는 이 본능이 현대의 인간관계에서는 
자꾸 헛발질을 한다는 거다.
생각해 보자. 
첫 만남에서 상대가 무뚝뚝했다고 하자.
우리는 곧장 "차가운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이 몸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급한 일로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원래 낯을 가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정은 백만 가지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건 그 한 장면뿐이다. 

 

그런데도 사람의 마음은 그 빈약한 한 장면을 
전체 스토리라 규정하고는 
장르를 구분해서 기억에 남겨 박제해 버린다.
그러고는 그 이야기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어 버린다. 
이게 첫 번째 함정이다. 

 

진짜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일단 "차가운 사람"이라고 결론이 서면, 
그때부터 우리 눈과 귀는 
그 결론을 확인해 주는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베푸는 친절은 눈에 안 들어오고, 
무심한 행동만 또렷하게 보인다. 

 

친절을 보면 "원래 차가운 사람인데 오늘은 웬일이지?" 하고
예외로 처리해 버리고, 
무심함을 보면 "거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증거로 저장한다.
이러니 시간이 갈수록 "내 판단이 맞았다"는 
확신만 점점 굳어진다. 

 

그런데 그 확신이라는 게 뭔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본 결과일 뿐이다.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말이다.
여기에 사람이 흔히 빠지는 또 하나의 착각이 얹힌다. 
우리는 남의 행동을 볼 때 
그 사람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있다. 
약속에 늦은 사람을 보면 
‘원래 게으른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오늘 길이 많이 막혔나 보다’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내가 늦었을 때는 어떤가?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똑같은 지각인데, 
남의 것은 사람됨의 문제로 보고 
내 것은 상황의 문제로 본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인간이에요."
그 '원래'라는 말 속에, 
자기가 그려 놓은 첫 그림을 
그 사람의 본질로 못 박아 버리는 마음이 들어 있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권하는 건 이거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판단이 빠르게 설 때,
그 판단을 연필로 적어 두라는 거다.
지울 수 있게 말이다. 볼펜으로 적지 말라.
첫인상은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끈질기게 자기를 증명하려고 드는 가설일 뿐, 
진실은 아니다. 

 

사람을 알아 간다는 건 
처음 그린 그림을 기꺼이 고쳐 그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준비가 안 된 사람은 
평생 자기가 처음 본 한 장면 속에 상대를 가둬 놓고 산다.
그러고는 말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
사실은 그 사람이 변할 기회를 자기가 막아 놓고서 말이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적당한 거리> 는 2026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모르겠어요."
한집에 사는 배우자, 
평생을 본 부모, 
십 년 지기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린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매일 보는 사람을 왜 모른다는 건가?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자주 어긋나고, 
더 크게 서운하고, 
더 깊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지 않는다. 
이름만 아는 동료, 길에서 한 번 스친 사람에게는 굳이 마음을 쓰지 않으니 어긋날 일도 없다. 마음을 쓰지 않는데 무슨 오해가 생기겠는가? 
오해라는 건 마음을 쓰는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그러니 오해가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가깝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가까울수록 더 많이 어긋날까?
여기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사람을 보는 '방식'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깔고 있는 
'오래된 상처'의 문제다.

 

먼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 보자. 
사람들은 흔히 자기 눈이 카메라처럼 정확하다고 믿는다.
본 대로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사람의 눈과 귀는 들어온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틀에 맞춰서 편집을 한다. 
빠진 부분은 추측으로 메우고, 
어긋나는 부분은 슬그머니 지워 버린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본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를 수 있고, 
같은 말을 들은 두 사람의 해석이 정반대로 갈릴 수도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가 같이 와서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없이 본다.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자기가 본 대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다.
다만 그 '본 대로'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편집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심하게 한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강한 선입견이 이미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선입견이 무서운 게,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다 걸러 버린다는 거다. 
상대가 평소와 다른 다정한 말을 해도 
‘왜 저래,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하고 흘려듣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거봐, 역시 저 사람은 나를 우습게 안다’는 
증거로 차곡차곡 저장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거다.

 

오해란 게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 같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오히려 
정보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단정해서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사람은 한 번에 모든 걸 다 볼 수가 없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다른 건 놓치게 된다.
상대의 말꼬리 하나에 꽂히는 순간, 
그 말 아래에 깔려 있는 
상대의 피로나 호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가까운 사람을 보는 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보기로 '선택한' 일부일 뿐이다.

 

이제 두 번째, 더 깊은 이유로 가 보자.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을 나누고 연결되는 방식은 
사실 아주 어릴 때 정해진다. 
갓난아기 때 자기를 돌봐 주는 사람과 맺은 정서적인 끈, 
이걸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고 부른다.

 

이 애착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평생을 따라다닌다.
"사람은 믿을 만한가?"
"내가 다가가면 받아 줄까?"
"내가 매달리면 떠나지 않을까?"
위의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릴 때 받은 답을 
무의식중에 평생을 들고 다니는 게 된다.

 

어릴 때 안정적으로 사랑받은 사람은 
가까움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경험이 불안했던 사람은 
똑같은 다정함 앞에서도 긴장한다. 
상대가 조금만 거리를 두면 
‘버려지는 신호’로 읽고 불안해하고, 
조금만 가까이 오면 
‘구속하려는 위협’으로 느끼고 밀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가자. 
이때 그 사람이 오해하는 대상은 사실 눈앞의 상대가 아니다.
눈앞의 상대를 통해서 옛날의 상처가 
다시 불려 나오는 것뿐이다. 
지금 화가 난 것 같지만, 
실은 오래전에 받지 못한 무언가가 아직도 아픈 거란 말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의 다툼은 
겉으로 보이는 사건보다 훨씬 크다. 
‘왜 연락 안 했어?’라는 말이 
정말 연락이 궁금해서 하는 말이겠는가?
아니다. 그 말의 진짜 뜻은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훨씬 오래된 불안의 번역인 경우가 많다. 
이걸 모르고
‘연락 좀 안 했다고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냐’고
받아치면 싸움은 절대 안 끝난다. 
엉뚱한 데를 긁고 있으니 
가려운 데가 가라앉을 리가 없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기 말을 더 분명하고 더 조리 있게 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반대다.

 

가까운 사이가 어긋날 때 부족한 건 
말이 아니라 '들음'이다.
진짜 듣는다는 건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반박하는 말을 꺼내는 게 아니다.
그 말 아래 깔린 마음까지 같이 들어야 한다.

 

"왜 연락 안 했어"를 비난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듣고, 
"됐어, 신경 꺼"를 거절이 아니라 상처받았으나 
아직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들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마음을 먼저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이게 가까운 관계를 살리는 가장 강한 힘이다.
백 마디 설명보다 ‘그랬구나, 서운했겠다’라는 
공감과 위로의 한마디가 사람을 움직인다.

 

정리하면... 가까움은 저절로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고, 
그 착각이 새로운 정보를 막아 버린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 자주 오해하는 역설이 
여기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관계는 서로를 다 아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다 알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알아 가려는 그 끈질긴 마음, 그 다정한 호기심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적당한 거리> 는 2026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유튜버가 초등학생들이 뽑는 인기 직업이 된 시대에 실제 인기 유튜버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떻하시겠나? 영상 크리에이터가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에는 유튜브 외에도 글로벌 플랫폼인 틱톡과 인스타 릴스, 국내 플랫폼인 지지직 등이 있고, 아프리카TV라는 플랫폼도 오래 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건재한 만큼 돈이 되는 분야이기에 여기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예전이 연예인들이 길거리 캐스팅으로 매니지먼트사 명함을 받아 데뷔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유튜버를 그런 식으로 캐스팅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플랫폼에서 가장 수위가 높은 소위 말하는 벗방 유튜버 회사의 갑질 수법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불법적인 계약서를 통해 고액을 배상하든지 그러한 영상을 찍던지를 강요하는 곳이었다. 한 회사만 뉴스에 나온 것이지만, 실제 이러한 사례는 이미 필자가 오래전부터 봐 오던 사례였고, 그 뉴스가 나온 이후로 계약하지 말 것을 조언했던 분들에게서 감사 메시지가 많이 왔었다. 그중엔 학교 선생님부터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등이 있었는데, 뛰어난 외모를 가진 분들에게 접근해서 그냥 일상 브이로그만 찍으면 알아서 편집해서 올리고 홍보까지 해준다고 광고한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 촬영이 안 될 경우 촬영까지 해준다는 곳도 있다고 했다. 필자도 유튜브에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외모 외엔 특별할 게 없는 여성분의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리고 비용까지 들여서 홍보해주려면 엄청난 인건비와 비용이 소요된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건 그냥 자신의 품을 팔면 될 일이지만 회사라면 다른 것이다. 회사는 투자한 만큼 돈을 뽑아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성상품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런 계약을 제안할 이유도, 할 이유도 없는 게 그런 회사라봐야 한다. 하지만 계약의 제안을 받은 분들 입장에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분명 평범한 영상을 찍어올려서 빵 터진 사례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사례에 자신이 속할 수 있다는 기대와 좀 편하게 영상을 찍고 올릴 수 있다는 제안은 솔깃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법 사례가 아마도 엄청나게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조심하셔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유튜버로 뜨는 분들은 사주로 특정된다. 무언가의 활동을 할 때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주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이 아니라면 아무리 찍어 올려도 누구도 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사주상 남들이 보고 싶은 걸 잘 찾아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유튜버로 뜰 수 있는 사주라 할 수 있다. 필자의 관찰상으로 이것을 벗어나는 돈 되는 유튜버는 이미 다른 곳에서 인기를 얻어서 확장한 몇몇 뿐이었다.
 
인기 유튜버분들이 꽤 상담하러 오신다. 대부분이 상담을 하려는 이유는 예전만 못해서이다. 그래서 원래 해야 할 컨텐츠의 방식을 알려주면 그걸 해서 떳다고 말하고,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한다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사주에 맞는 컨텐츠를 할 때는 빵 터졌다가 다른 것에 집중하거나 전환하면서 인기가 내려간 것이다. 4000년 전에 만들어진 사주가 현대 유튜버의 승패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놀라웠으나.. 과거 장터에서 눈길을 끌었던 사람이 지금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다는 걸로 바꿔 생각하면 전혀 새로울 게 없기도 하다.
 
필자가 염려가 되는 건 이런 거다. 사주상으로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인자는 편관과 비겁 인자이고, 도화와 목욕, 홍염 등의 신살 인자와 극음과 극양의 구성을 갖춘 사주가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편관은 명예와 자존심, 비겁은 경쟁심과 주변인의 평가, 신살은 눈길을 끔, 극음과 극양은 시선의 쏠림을 중시한다. 순간의 판단 또는 계약의 실수로 자신에게 치명적인 영상을 남긴다면 단순히 그 영상을 남긴 자체로도 개인적 타격을 받겠지만, 현대사회는 메모리의 사회로 그 영상이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게 된다.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무너뜨릴 영상이, 주변인에게 지탄받을 수도 있는 영상이,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숨겨도 숨겨도 찾아서 볼 공개를 원치 않는 영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명 연기자들조차도 그러한 영상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찍은 영화임에도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가 있었다.
 
필자의 상담 사례로 유추해보면.. 자신의 의지로 영상을 찍었던 분들은 오히려 그게 자랑이 된다. 하지만 타인의 권유나 협박으로 그러한 영상을 남긴 사람은 치욕으로 생각한다. 어떤 유명 배우분이 무명 시절에 찍었던 영화의 치욕을 씻는 방법을 물어와서 답해준 적이 있다. 두 가지를 조언해 줬는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위의 작품을 하나 더 하라는 것이었고, 과거에 찍은 영상에 대한 평가를 본인의 입으로 흔하게 밝히라는 말이었다. 과거에 질이 낮는 팀과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최악이었다. 그 정도 톤으로... 지금 중년이 된 이 배우는 필자의 조언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극단을 생각하던 분이어서..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오히려 필자가 고맙고 응원하게 된다.
 
일단 그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유튜버나 영상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면 먼저 혼자서 시작하시라. 인기를 얻을 사람은 어떻게 해도 인기를 얻는다. 사주에 나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인기를 얻으면 혼자 다 먹는 거다. 얼마나 좋나? 인기를 얻고 나서 하는 계약은 속을 가능성이 낮고, 이미 팬층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도 함부로 하기 힘드니 여러분의 항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글을 올리면 꼭 니 채널은 왜 그러냐고 토를 다는 분들이 있다.
답한다. 토 다는 것들이 싫어서 아무나 보지 못하게 영상을 만든다.
필자의 채널은 아무나 보는 채널이 아닌, 필요하고 제대로 실천할 사람이 보는 채널이다.
쓸데없이 사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욕치는 사람들이 싫어서, 시중 인터넷서점에 종이책도 안 파는 사람이 나다. 내건 꼭 필요한 사람만 봤음 한다. 글과 영상과 책 모두 말이다.
(종이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서 정보를 드리면.. 가까운 시일 내에 POD방식으로 교보문고에서 종이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지금도 leebook.kr 이나 유튜브쇼핑, 쿠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는 종이책을 구매할 수 있다.)
 
 
인컨설팅    이 동 헌
 
 
 

 

 

지난 <26.01 좋은 사주> 이후로 쉬었던 좋은 사주가 6월호부터 다시 발간됩니다.

구매링크 https://leebook.kr/surl/O/51

필요하셨던 분들의 많은 구매 부탁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복불복 사주', '시간이 필요한 사주', '특이한 사주' 리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엔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었다. 서울대를 가고 싶은데 성적이 너무 안 나왔단다. 그때가 재수 때다. 고3 때 성적으론 문제만 다 풀면 가능한 사주라서 사주에 맞는 공부 방법과 시험 때 해야 할 행동을 알려줬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는데, 6월 모의고사 성적이 서울대 가능권이 나오자 알려준 방법을 제대로 실천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난 후 대학원과 취업을 갈등하며 다시 찾아왔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알고 있으니 성적은 아주 좋았으나, 너무 전공에 치우쳐 있었다. 그런데 그 전공으로는 대학원이든 취업이든 크게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공부는 되니깐 사주에 맞는 행시를 준비하자고.. 그래서 1년 만에 패스하고 세종으로 내려갔다.

 

젊은 공무원들도 시류는 피할 수 없는지.. 사주에 없는 투자에 관심이 생기고, 동기들과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공부도 한다면서.. 작년 초에 찾아와서는... 경매를 공부하고 있는데 투자 물건 종류나 돈벌 시기를 물었다. 해서 좋을 건 없지만 시간이 난다면 소극적으로는 해봐라. 그것도 경험이라고 하며 말리진 않겠다고 말해서 보냈다. 그런데 최근에 급하게 예약을 잡더니 큰일이 났다고 했다. 나름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자기가 보기엔 아주 괜찮은 물건을 찾았는데, 유찰도 많이 되서 반의 반값에 낙찰을 받았단다. 근데 그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안것이다. 그러면서 경매를 해도 큰 문제 없다고 했는데 왜 이러냐면 필자를 탓한다. 일단 생긴 문제이니 해결하고자 그 물건을 찾아보니 이미 몇몇 경매 유튜브에서도 다뤘던 문제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정말 꼼꼼히 보고 응찰한 거 맞냐니깐, 앞에 주저하다 놓친 적이 있어서 급한 마음에 덜컥 응찰한 거라고 했다. 이 물건의 가격 대가 절대 소극적이지 않았고, 이런 물건을 낙찰받아 임대로 돌리려면 리모델링 비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데 그런 고려도 없었다고 한다. 계속 물어보니 이미 몇 건의 거래로 이번 입찰 보증금 정도의 수익을 올렸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잔금을 치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서 해준 말이..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어서 해보라고 한 거였다..란 말이었다. 하지만 다시 더 하려면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도 더했다.

 

필자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현대는 재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재의 시대란 말은 실제로 재의 한자 의미처럼 돈의 시대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거나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재적인 손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시대가 재의 시대이기도 하다. 과거 관의 시대와 비교해 보자면, 그때는 어떤 판단을 잘못해서 관적인 문제가 생기면 갇혀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관의 갇힘은 내 몸이나 정신이 갇히는 것이기에 괴로울 수는 있지만 크게 돈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 재의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갇히지 않는다고 해도, 재적인 문제가 생기면 아무것도 못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가령 저런 물건을 낙찰받는다면, 대출이자와 리모델링을 통한 임대 전까지의 기간을 현금으로 막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진다. 시간 자체로 돈이 나가는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적자인 것이다. 부동산을 특정 목적을 위해 구입했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그에 따른 비용이 지불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지금이 그런 재의 시대인 거다.

 

지금은 주식이 대세다. 그런데 어제 선거 결과를 보니 길게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모두가 지금 현재와 다가올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결과가 나와서다. 그러면 누군가가 조성할 불안이 먹히는 때가 올 것이고, 그때 큰 등락이 생길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외국은 전쟁 중이니 더할 것이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경매를 할까? 이미 경험했고, 이번엔 잃었지만 벌어본 적이 있으니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경매가 이 사람 사주에 잘맞는 일은 아니니... 그리 잘 되진 않을 것이다. 사주에 있는 일을 하면 잘되고, 오래해도 문제가 없으니 그런 일만 하면 좋겠지만.. 사람은 사주에 없는 일도 경험으로, 건성으로 계속할 수도 있다. 잘 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선 큰 손실이나 위험이 따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떤 일이 사주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줬을 때..

아닌데? 나는 많이 벌었는데, 성공했는데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필자가 저주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인생은 길다. 지금 살고 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런 행운을 잡았다면.. 그걸 유지하는 당신의 사주적 방법을 물어라.

다 날리고 다시 재기하지 못하거나 그걸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인컨설팅   이 동 헌

 

 

지금은 빠진 상태다. 괜찮아 보인다.

 

“재상담이시라구요?”

“예. 10년 전에 상담했었습니다.”

“보통 상담하면 사주를 저장해두는데, 성함으로 저장된 게 없어서요. 생년월일시가?”

“몇 년, 몇 월...”

“아, 안OO님 남편분이세요?”

“하! 지금은 아닙니다. 이혼했거든요.”

“아, 그래요. 봅시다.”

부부 동반으로 방문한 분이 이혼했다면, 두 사람의 궁합에서 이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경우는...

“그때 방문하셨을 때 두 분이 같이 앉아서 상담하셨죠?”

“예. 같이 상담받았습니다.”

“뒤에 전처분이 한 번 더 오셨네요.”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같이 들었을 땐 안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고..”

“예. 그런 경우가 있죠. 근데 두 분은 그런 건 없었을 텐데. 아마도 전처분 원인으로 이혼할 수는 있으니 주의하라고 말씀드렸겠네요.”

남자의 인상이 변했다. 화가 난 건 아니고 무언가 헷깔리는 표정이다.

“전처가 이혼의 원인이라구요?”

“아!? 아니었나요? 본인은 10년 동안 그냥 다니는 회사 다니고, 애들 돌보고, 하자는 대로 하시고 계셨을 텐데요. 투자나 여자한테 한눈파는 사주도 아니고 ...?”

“그렇긴 한데. 건강은 요?”

“건강이요? 아직 아픈 곳은 없으실 텐데.. 담배는 안 피실거고, 술도 많이 안 하시잖아요?”

“예. 그렇죠. 그럼... 왜 헤어져야 둘 다 산다고 말씀해 주셨나요?”

남자의 말을 듣자 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리지?

“제가 두 분이 헤어져야 둘 다 산다고 말씀 드렸다구요?”

“전처가 그랬어요. 전처가 정말 대표님 팬인데요. 둘이 상담 다녀와서도 대표님 블로그 읽고, 이후에 내신 책도 샀어요. 이혼 전에 같이 살 땐 거실TV에 대표님 유튜브 영상이 항상 켜져 있었구요.”

“그래요. 근데 전 건강 문제 때문에 이혼해야 둘이 산다는 말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주명리학에는 그런 이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한 사람이 폭력성이 있으니 같이 살면 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같이 사는 걸로 건강 적인 문제가 생겨서 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럼, 왜 전처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사람은 이혼을 했지만, 아직 전처를 신뢰하고 있었다.

“제가 보통의 경우엔 상담 내용을 다른 분에게 오픈하진 않지만, 이 말을 해드리지 않으면 상담이 진행되지 않을 테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와이프분은 아마도 두 분이 같이 상담하고 한 달 이내에 재상담하신 것 같구요. 상담 내용은 아내분이 바람이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 정도였을 거예요. 이혼은 아마도 2020년에 하셨을 텐데...”

“아니요. 18년에 했습니다.”

“18년이요? 이때 아내분의 이성문제는 속도위반운인데?? 이혼하고 바로 출산했나요?”

“가을에 이혼했는데, 겨울에 재혼했더라구요. 지금 아이도 있는 것 같구요.”

“아... 그래요. 아주 급하게 이혼했겠네요?”

“말은 계속 나왔는데, 그때 제가 주재원 나가 있을 때였는데, 하두 급하게 서두르니까 여름 휴가때 서류 접수시켰더니 바로 이혼이 되었다고 오더라구요. 아이들은 휴다 복귀하면서 데리고 나갔고, 전처는 주재원 오기 직전에 세종으로 발령나서 세종에 혼자 살고 있었어요. 법적으로 확정되니까 그냥 끝나더라구요.”

 

정리하자면 이랬다. 필자가 경고한 것처럼 아내분은 혼자 살면서 남자가 생겼고, 이혼이 하고 싶어서 필자 핑계로 이혼 말을 꺼냈었는데, 아이가 생기자 바로 이혼을 감행해서 이혼을 한 거였다. 남편도 필자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니 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남편은 너무 빨리 재혼한 아내가 아쉽긴 해도 남자가 필요한 여자란 걸 아니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필자를 신뢰하는 배우자와 헤어지기 위해 필자가 이혼하라고 했다는 거짓말로 이혼하는 케이스.. 그 과정에서 필자에게 상담받은 내역은 없다. 오히려 아내분은 필자를 신뢰하지 않은 건가? 겁재운이니 급해서 그냥 밀어붙였나? 모를 일이다.

 

남편분에게 재혼을 권하니 말한다.

 

“어? 혼자 살라고 했다고 전해 들어서 그런 생각은 안 했었는데요.”

“아니예요. 결혼하셔야죠. 혼자 어떻게 애들 키우면서 살아요.”
“그래요? 그럼, 추가로 한 명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사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냥 봐 드릴께요.”

애들 태어날 때 이사한 집의 앞 집 분인데, 자신이 이혼할 시기에 사별을 했단다. 국내에 복귀할 때 같은 단지로 갔는데, 아이들 돌보느라 힘들 때부터 몇 년간 자신의 아이와 공동육아 중인데 아이들끼리도 친하고 너무 선한 사람인데, 며칠 전 아이들과 생일파티를 해서 생일을 알았단다. 괜찮은 궁합에 가지고 있는 재능도 다양하고 재적인 부분도 괜찮은 분이라 결혼하면 좋다고 했다.

전처는 자신은 재혼과 출산까지 하면서도 전남편은 결혼하지 않길 바란 듯하다. 남편은 그 말을 믿고 혼자서 고생하고 있었고 말이다.

꼭 10년을 채울 필요는 없으니 이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서 물으라고 했다. 이혼 같은 큰 변화는 묻는 게 맞지 않겠나? 더구나 필자가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확인했어야 했다. 자신이 유책 배우자가 아님에도 유책 배우자일 가능성이 높은 전처에게 유리한 이혼과 재산분할을 했으니 말이다.

 

누가 악하고 선하고를 말하려는 글은 아니다.

그냥 필자가 이렇게도 소모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인컨설팅    이 동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