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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많이 오해하는 이유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모르겠어요."
한집에 사는 배우자, 
평생을 본 부모, 
십 년 지기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엔 이상하게 들린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매일 보는 사람을 왜 모른다는 건가?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자주 어긋나고, 
더 크게 서운하고, 
더 깊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지 않는다. 
이름만 아는 동료, 길에서 한 번 스친 사람에게는 굳이 마음을 쓰지 않으니 어긋날 일도 없다. 마음을 쓰지 않는데 무슨 오해가 생기겠는가? 
오해라는 건 마음을 쓰는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그러니 오해가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가깝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가까울수록 더 많이 어긋날까?
여기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사람을 보는 '방식'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깔고 있는 
'오래된 상처'의 문제다.

 

먼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 보자. 
사람들은 흔히 자기 눈이 카메라처럼 정확하다고 믿는다.
본 대로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사람의 눈과 귀는 들어온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틀에 맞춰서 편집을 한다. 
빠진 부분은 추측으로 메우고, 
어긋나는 부분은 슬그머니 지워 버린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본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를 수 있고, 
같은 말을 들은 두 사람의 해석이 정반대로 갈릴 수도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가 같이 와서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없이 본다.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자기가 본 대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다.
다만 그 '본 대로'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 편집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심하게 한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라는 
강한 선입견이 이미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선입견이 무서운 게,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다 걸러 버린다는 거다. 
상대가 평소와 다른 다정한 말을 해도 
‘왜 저래, 무슨 꿍꿍이가 있나’ 하고 흘려듣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거봐, 역시 저 사람은 나를 우습게 안다’는 
증거로 차곡차곡 저장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거다.

 

오해란 게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 같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오히려 
정보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단정해서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사람은 한 번에 모든 걸 다 볼 수가 없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다른 건 놓치게 된다.
상대의 말꼬리 하나에 꽂히는 순간, 
그 말 아래에 깔려 있는 
상대의 피로나 호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가까운 사람을 보는 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보기로 '선택한' 일부일 뿐이다.

 

이제 두 번째, 더 깊은 이유로 가 보자.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을 나누고 연결되는 방식은 
사실 아주 어릴 때 정해진다. 
갓난아기 때 자기를 돌봐 주는 사람과 맺은 정서적인 끈, 
이걸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고 부른다.

 

이 애착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평생을 따라다닌다.
"사람은 믿을 만한가?"
"내가 다가가면 받아 줄까?"
"내가 매달리면 떠나지 않을까?"
위의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릴 때 받은 답을 
무의식중에 평생을 들고 다니는 게 된다.

 

어릴 때 안정적으로 사랑받은 사람은 
가까움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경험이 불안했던 사람은 
똑같은 다정함 앞에서도 긴장한다. 
상대가 조금만 거리를 두면 
‘버려지는 신호’로 읽고 불안해하고, 
조금만 가까이 오면 
‘구속하려는 위협’으로 느끼고 밀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걸 짚고 넘어가자. 
이때 그 사람이 오해하는 대상은 사실 눈앞의 상대가 아니다.
눈앞의 상대를 통해서 옛날의 상처가 
다시 불려 나오는 것뿐이다. 
지금 화가 난 것 같지만, 
실은 오래전에 받지 못한 무언가가 아직도 아픈 거란 말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의 다툼은 
겉으로 보이는 사건보다 훨씬 크다. 
‘왜 연락 안 했어?’라는 말이 
정말 연락이 궁금해서 하는 말이겠는가?
아니다. 그 말의 진짜 뜻은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훨씬 오래된 불안의 번역인 경우가 많다. 
이걸 모르고
‘연락 좀 안 했다고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냐’고
받아치면 싸움은 절대 안 끝난다. 
엉뚱한 데를 긁고 있으니 
가려운 데가 가라앉을 리가 없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기 말을 더 분명하고 더 조리 있게 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반대다.

 

가까운 사이가 어긋날 때 부족한 건 
말이 아니라 '들음'이다.
진짜 듣는다는 건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반박하는 말을 꺼내는 게 아니다.
그 말 아래 깔린 마음까지 같이 들어야 한다.

 

"왜 연락 안 했어"를 비난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듣고, 
"됐어, 신경 꺼"를 거절이 아니라 상처받았으나 
아직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들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마음을 먼저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이게 가까운 관계를 살리는 가장 강한 힘이다.
백 마디 설명보다 ‘그랬구나, 서운했겠다’라는 
공감과 위로의 한마디가 사람을 움직인다.

 

정리하면... 가까움은 저절로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고, 
그 착각이 새로운 정보를 막아 버린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 자주 오해하는 역설이 
여기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관계는 서로를 다 아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다 알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알아 가려는 그 끈질긴 마음, 그 다정한 호기심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인컨설팅    이  동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