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부부나 연인이 싸울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그때 네가 분명히 그랬잖아!"
"내가 언제? 네가 그랬지!"
분명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이 겪은 일인데,
두 사람의 기억은 마치 서로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처럼
어긋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필자가 단언컨대, 대개는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진심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기억이
애초에 서로 다르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여기서 '만들어졌다'는 표현을 잘 봐야 한다.
사람들은 기억을 녹화 테이프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해 둔 영상을
그대로 꺼내 본다고 믿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새로 조립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어떤 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을 그 자리에서
다시 짜 맞추는 작업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짜 맞추는 과정에 지금의 감정,
그동안 쌓인 해석, 듣고 싶은 결론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러니 같은 대화를 두고도,
서운했던 사람은 상대의 날 선 말투를 중심으로 기억을 짜고,
억울했던 사람은 자기가 참았던 순간을 중심으로
기억을 짠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점점 더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기억은 처음부터 빈틈투성이다.
우리는 겪은 일을 다 담아 두지 못한다.
띄엄띄엄 남은 조각들 사이의 빈 곳을
나중에 그럴듯한 내용으로 메운다.
이 메우는 작업이 워낙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우리는 실제로 겪은 부분과
나중에 채워 넣은 부분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는 강한 확신은
기억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아니게 된다.
오히려 거꾸로일 때가 많다.
여러 번 곱씹은 기억일수록 그만큼
여러 번 다시 조립됐다는 뜻이니,
강하게 확신하는 기억일수록
원본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거다.
이걸 알면 등골이 좀 서늘해진다.
우리가 그렇게 굳게 믿는 "그때 그랬잖아"가 사실은
내가 여러 번 고쳐 쓴 이야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 나온다.
관계의 다툼에서 "누가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는가"를
끝까지 가리는 일은 대개 의미가 없다는 거다.
두 사람 다 자기 기억을 진실로 믿고 있고,
그 믿음은 거짓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본래 성질에서 나온 거다.
그러니 과거의 사실을 놓고 끝까지 다투는 건,
서로 다른 카메라로 찍힌 두 영상을 들고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이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이건 누구나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영원히 결론이 안 나는 과거 어떤 장면의 이유다.
그러니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고 끝장을 보려고 할수록
둘 다 지치기만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권한다.
"그때 정확히 어땠는가"를 두고 다투지 말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로
대화의 무게를 옮기라고 말이다.
과거의 사실은 합의가 안 돼도, 지금의 감정은 나눌 수 있다.
"그때 네가 틀렸어"는 끝없는 싸움을 부르지만,
"그 일로 나는 많이 서운했어,
오해를 없었다면 달랐을 텐데.."는 대화의 시작이 된다.
같은 자리를 다른 카메라로 찍었다는 걸
둘 다 인정하는 순간,
두 개의 어긋난 기억은 싸움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바뀐다.
기억은 못 맞춰도 마음은 맞출 수 있다는 것,
이걸 아는 부부는 늙어서도 사이가 좋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컨설팅사례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얼굴로 사람을 읽는다는 것 (0) | 2026.06.26 |
|---|---|
| 첫인상은 왜 그렇게 안 바뀌는가? (0) | 2026.06.24 |
|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많이 오해하는 이유 (0) | 2026.06.22 |
| 절대 벗방 아니예요! 그 말을 믿는다면... (0) | 2026.06.08 |
| 지금까지 다 맞았는데, 이번엔 안 맞았어요 (0) | 2026.06.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