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부족하니 집에 나무를 들이세요.”
“목이 부족하니 나무로 만든 묵주나 악세사리를 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조언한다면, 사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제법 자연스럽게 들릴 것이다. 목은 나무라고 배웠으니 나무를 가까이하면 목이 채워질 것 같다. 금이 부족하면 금속 장신구를, 수가 부족하면 물과 관련된 물건을 떠올리게 된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주가 물건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말 앞에서 겨울나무를 생각한다. 잎을 떨군 나무 곁에 화분 하나를 더 놓는다고 봄이 오는가? 나무를 한 그루 더 갖는 일과, 나무가 자랄 조건을 갖추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무엇을 사기 전에,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오행이 무엇인지부터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목은 나무, 화는 불, 토는 흙, 금은 금속, 수는 물. 이 설명은 기억하기 쉽다. 글자의 뜻과도 맞아떨어진다. 어려운 개념을 배우는 첫걸음으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첫 설명이 마지막 설명으로 굳을 때 생긴다. 비유를 통해 이해해야 할 개념이 비유에 등장하는 물건과 같아지고, 마침내 그 물건의 소유가 운명의 보완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설명은 사라진다.
궁통보감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사라진 설명이다. 이 책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연결하여 읽는 명리학의 고전이다. 계절과 기후를 세밀하게 살피고, 같은 기운도 놓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작용함을 설명한다. 필자는 그 관찰과 해석을 따라가며, 오행의 이름 뒤에 있는 자연의 질서를 읽고 싶다.
오행을 설명하는 첫 문장부터 그 방향은 분명하다.
五行者,本乎天地之間而不窮者也,故謂之行。
오행은 본래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다함없이 이어지는 것이므로, 이를 행이라 부른다.[1]
이어지는 서술은 냉기와 열기, 바람과 건조함을 말한다. 오행의 이름 안에는 사물의 모습과 함께, 사물을 둘러싼 조건과 변화가 들어 있다. ‘행’이라는 글자를 읽으며 필자는 그 변화를 생각한다. 멈춰 있는 물건의 목록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자연의 움직임이다.
나무는 이 생각을 이해하기 좋은 출발점이다. 우리는 나무를 하나의 대상으로 부르지만, 실제로 만나는 나무는 언제나 어떤 계절 속에 있다. 봄에 새순을 내는 나무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선 나무, 낙엽이 지는 나무와 겨울을 견디는 나무는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상태를 살아간다. 필요한 것을 알려면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햇빛과 기온, 수분과 땅의 상태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삼춘갑목총론」은 초봄의 남은 추위와 늦봄의 마름을 구별한다. 같은 봄의 목이라도 온기와 수분의 필요를 다르게 살피는 것이다. 그 설명을 맺는 구절은 짧지만, 오행을 읽는 중요한 기준을 담고 있다.
是以水火二物,要得時相濟爲美。
그러므로 수와 화는 때에 맞게 서로 도와야 좋다.[2]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때에 맞게’다. 수와 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때에 어떻게 작용하는가까지 읽어야 한다. 물건을 곁에 두는 일만으로는 이 문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사주를 읽는 질문도 달라진다. 목이 몇 개인가를 세는 것만 중요하면, 그 목이 놓인 계절과 다른 기운의 작용을 놓친다. 적게 있다는 사실과 필요한 상태라는 판단은 구별해야 한다. 무엇이 부족한지를 말하려면 먼저 무엇에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수를 세는 일에서 관계를 읽는 일로 나아갈 때, 보충이라는 말도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를 얻는다.
이처럼 차고 따뜻함, 마르고 습함을 살피는 관점이 조후다. 궁통보감의 계절 서술을 따라가려면 이 한난조습의 감각이 필요하다. 같은 기운도 어느 때에,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작용이 달라진다. 오행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의 글자 뜻을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질문을 따라가면 오행은 다섯 개의 물건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읽히지 않는다. 목을 생각할 때 필자는 봄의 생장을 떠올린다. 겨울 동안 닫혀 있던 것이 열리고, 땅속에 있던 것이 바깥으로 나오는 시간이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가지 끝에 잎이 돋는 모습을 통해, 목의 이름 뒤에 있는 뻗어나감의 감각을 이해해 본다. 나무의 형상이 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에서는 여름의 열기와 왕성한 활동을 떠올린다. 해가 길어지고 생명이 무성해지는 계절, 무엇인가가 힘을 얻고 밖으로 드러나는 시간이다. 그러나 왕성함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뜨거움은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지치게도 한다. 열기를 이해하려면 그 열기를 받는 대상의 상태까지 살펴야 한다. 이때 불의 이미지는 출발점이 되고, 생각은 온도와 관계로 넓어진다.
금은 가을의 수렴을 생각하게 한다. 자라던 것이 결실을 맺고, 뻗어가던 것이 경계를 얻는 시간이다. 거두는 일에는 끝맺음이 포함된다. 모든 가지를 계속 뻗게 할 수 없듯, 모든 일을 끝없이 늘려갈 수도 없다. 단절이라는 말을 여기에 놓는다면, 무엇을 끊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맺고 남기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필자는 그 물음을 가을의 풍경에서 배운다.
수에서는 겨울의 냉기와 깊이를 떠올린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이 줄어들고, 다음의 시간을 위해 안쪽에 머무는 계절이다. 조용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겨울의 나무 안에도 다음 봄을 향한 시간이 있다. 다만 순환을 수 하나의 뜻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전체의 흐름 속에서 겨울의 자리를 읽을 수 있다.
토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사이의 시간을 생각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앞선 계절의 기운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아 있는 것과 새로 오는 것이 함께 작용한다. 이 전환을 읽으려면 건조함과 습함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오행의 성질을 설명하는 원문은 토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土無常性,視四時所乘。
토에는 일정하게 고정된 성질이 없으니, 사계절에 따라 받는 기운을 살핀다.[3]
실제로 「논토」의 여름과 겨울 서술도 다르다.[4] 건조함은 토의 중요한 상태가 될 수 있지만, 토의 모든 성질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계절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점까지 읽어야 토의 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
목화토금수를 계절과 움직임으로 풀어보면, 오행이 자연의 변화를 읽는 언어라는 점이 드러난다. 물론 봄에는 봄만의 기운이 있고 겨울에는 겨울만의 기운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계절 속에서도 여러 기운이 함께 작용한다. 그 작용을 구별하고 관계를 살피는 일이 명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이다.
궁통보감이 나무와 불, 흙과 금속, 물의 모습을 빌려 설명하는 것도 이러한 이해를 돕는다. 구체적인 형상은 기운의 성질과 관계를 눈앞에 그려준다. 그런데 그 형상만 떼어내면 설명의 방향이 달라진다. 사주 안의 작용을 이해하도록 돕던 비유가, 생활 속에서 특정 재료를 소유하라는 처방으로 바뀐다. 그 전환에는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 근거를 묻지 않으면 설명은 너무 쉽게 상품이 된다. “금은 금속에 비유된다”는 말 다음에 “그러니 이 장신구를 사면 운명이 좋아진다”는 말이 붙는다. 이 과정에는 세 번의 판단이 필요하다. 사주에 금이 적다는 판단, 그 사주에 금이 필요하다는 판단, 그 필요를 금속 장신구로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앞의 판단이 뒤의 판단을 자동으로 보증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판단은 물건이 사주에서 필요한 작용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설명해야 성립한다. 고전의 이름만으로 그 설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물건을 좋아하는 일에는 문제가 없다. 마음에 드는 팔찌를 차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고, 식물을 돌보며 생활에 리듬이 생길 수도 있다. 소중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위안을 얻는 경험도 존중할 수 있다. 다만 그 경험과 특정 오행이 보충되어 운명이 바뀐다는 주장은 각각 설명되어야 한다. 위안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판매자가 약속한 효능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족하다는 말은 사람을 오래 붙잡는다. 이미 불안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갖추지 못했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 있다. 그 부족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설명까지 더해지면, 물건을 사는 행위는 취향의 선택에서 벗어난다. 구매하지 않는 것이 두려워지는 순간, 우리는 그 조언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
고전을 인용하는 사람에게도 설명의 책임이 있다. 어느 문장에서 어떤 해석을 얻었는지, 그 해석이 어떻게 상품의 효능으로 이어지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명이 어려울수록 권위를 더 높이는 방식은 독자의 이해를 돕지 못한다. 궁통보감을 존중한다면, 책의 복잡한 사유를 한 번의 구매로 해결되는 이야기로 줄여버리는 일부터 경계해야 한다.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러한 구별을 익히는 일이다. 계절을 보고, 기운의 상태를 살피고, 다른 기운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을 판단하는 일이다. 그 판단을 건너뛰고 곧바로 물건을 권하면, 궁통보감이 세밀하게 구별한 조건들은 모두 지워진다. 초봄과 늦봄을 다르게 읽었던 문장이 어느새 같은 상품을 권하는 말로 바뀌는 것이다.
자연을 읽는 데에는 관찰이 필요하다. 같은 비라도 언제 내리는지, 어떤 땅에 내리는지, 그 전에 얼마나 메말랐는지에 따라 작용이 달라진다. 사람을 읽는 데에도 그만한 세심함이 필요하다. 오행 하나의 이름으로 사람의 상태를 다 설명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관계를 놓칠 수 있다.
겨울나무 곁에 다시 서 본다. 가지는 비어 있고 바람은 차다. 그 나무를 이해하려면 먼저 겨울을 읽어야 한다. 잎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부족을 선언하거나, 곁에 나무를 더 놓는 것으로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름과 개수 뒤에 있는 상태를 살펴야 한다.
궁통보감이 가르치는 세밀함은 여기에 있다. 오행을 말할 때 계절을 함께 보고, 부족을 말할 때 필요한 작용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다. 그 읽기를 생략한 채 물건만 권하는 처방 앞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놓인 조건을 읽은 설명인가, 아니면 오행의 이름을 붙인 판매인가.
오행의 이름 뒤에는 계절이 있다. 궁통보감을 읽는 일은 그 계절을 되찾는 일이다.
인컨설팅 이 동 헌
※ 참고문헌: 『궁통보감 - 이동헌 완역 해설서』, 여춘태 원저, 이동헌 완역·해설, 션북스,
[1] 「오행에 대하여」, 11쪽.
[2] 「삼춘갑목총론」, 33쪽. 해당 대목의 주해는 33~34쪽.
[3] 「오행의 성질」, 13쪽. 토에 관한 문장의 앞부분을 발췌했다.
[4] 「하월지토」, 200쪽, 「동월지토」,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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