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일을 시작하다 보니 그 당시 같이 일하시던 분들이 노환으로 돌아가시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긴 아버지 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셨으니... 올해는 신기하게 여겨지는 일도 마무리 지었다. 부산 최초의 컴퓨터 상가가 있던 터가 필자가 중고등학교 프로그래머를 할 때 주 활동무대였는데.. 그 건물을 허물고 들어서는 아파트 짓는 일에 미약한 도움을 줘서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소리를 들어서다. 시작과 끝..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한 느낌... 참고로 위에서 말한 필자의 일이란 건 소프트웨어 개발과 경영컨설팅이다. 아직 돗자리를 안 깔았는데 그때부터 깔았었는지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30년이나 이 일을 해오고 있음에도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분들은 거의가 20대 때 만난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같이 일하는 분들 중 와이프보다 늦게 안 사람은 두 분뿐이다. 동고동락을 해서 같이 일을 하다가 각자의 일을 하다가 또다시 같이 일을 하는 비즈니스 동맹이 되어 있다. 물론 필자가 패밀리라고 칭하는 이 분들 외에도 필자와 같이 일한 인연이나 경영컨설팅을 해드린 분들이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분들 얘기를 엮어서 해보려 한다.
90년 대 후반을 대부분의 분들은 인터넷 산업이 주도했다고 인식하고 계시지만 실제로 IMF 이후의 한국 경제를 살려낸 건 무역업이었다. 특히나 소비재나 기호품의 수출은 지금도 그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인터넷이었다. 전자 카탈로그라고 불렸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했던 상품 카탈로그 정보가 한국 무역업의 일대 전환기를 가져온 게 그때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무역회사의 주요 업무는 대기업 상사급 회사가 아닌 이상 자사가 판매할 제품의 카탈로그를 해외 업체에게 팩스로 보내는 것이었다. 무역회사 사무실에 가보면 직원들이 하루 종일 계속해서 팩스만 보내고 있었다. 그 팩스 비용은 아무리 작은 사무실이라도 300만 원 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인터넷에다 카탈로그를 올려놓고 한 장짜리 팩스에 홈페이지 주소와 이메일 주소를 적어서 팩스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팩스 비용만 세이브해도 수출단가나 옵션이 아주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월 팩스 비용 300만 원 때문에 억대 수출비용이 유연성을 가진다고?라고 반문하실 것 같지만... 팩스 보내는 직원들의 인건비를 더하면 월 천만 원 이상이 세이브된 것이다. 그리고 그 직원들이 하루에 몇 통 못 보내던 팩스를 이후 이메일로는 수백 통을 보낼 수 있었고, 고객의 요구에 즉시 대응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도입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가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렸고, 오퍼상이 제조업체를 인수하는 케이스가 생기기까지 했다.
필자는 파트너사에게 인터넷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그 아이디어들을 경영자가 '아!'하고 받아들이면 일의 스피드가 빨라지고 일의 규모가 커진다. 물론 '그거.. 남들도 다 하는 것 아냐?!'하고 무시하면 필자의 컨설팅은 거기서 끝나게 되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회사들은 남들이 다 하는 걸 하지 않아서 망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 망한 회사들은 남들이 다 하는 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만의 것도 그만둬버리고는 '왜 이렇게 일이 없나? 안되나?'하면서 문 닫을 준비를 해가더라. '그러면 망할 걸 알았겠네?'란 생각을 하실 것이다. 그렇다. 알았지만 귀가 막힌 경영자와 회사 구성원들을 필자가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 예전엔 그런 회사들을 많이 컨설팅 했었다. 회사가 돈 많이 벌었다고 컨설팅하는 필자에게 돈을 더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회사가 위험해 보이면 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경영자, 주축 멤버의 사주와 운에 따른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주고 움직임과 멈춤을 독려했었다. 이 말을 처음엔 듣는다.. 왜냐.. 지금까지는 들어 왔었기에 그만큼 큰 회사가 됐으니깐..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 필자만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가 되면 봐라.. 해도 안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기 시작한다. 회사가 망하면 같이 망할 사람들이 말이다. 그래도 필자는 하자고 했었다. 그럼에도 나쁜 결과가 나오면.. 당신 때문에 망한 거다. 그때 그냥 다 포기하고 매각하거나 정리해서 현금이라도 좀 건졌어야 하는데.. 란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이런 사람들이 진짜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자기들이 만드는 제품도 제대로 못 팔면서.. 망해가는 게 뻔히 보이는 회사를 어떻게 팔겠나? 자기 돈과 자기 땅과 자기 기술과 자기 공장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면 정리하는 순간 빚더미에 앉는다. 손절매는 내가 투자한 돈 이하라도 팔아서 손해를 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대출로 시작한 벤처에게 손절매란 단어는 사치의 극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요즘엔.. 기술, 자본, 마케팅, 판로 중 둘 이상은 자기 것을 갖춘 업체에게만 위와 같은 오지랖 컨설팅을 해준다. 개인 컨설팅도 마찬가지다. 뭔가 갖추고 있는 상태라야 필자가 컨설팅을 해줘서 도입비용 절감시키고, 이것을 강점으로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간섭해줘야 하고.. 그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책임 떠넘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개천에서 용이 못나오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을 받아들이진 않지만.. 정말 자신이 개천에서 난 용이 되려면 이름하여 금수저들이 그냥 가지고 태어난 것 몇 가지는 자기 힘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그들과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 제대로 몸고생하는 시절이 필요하단 말이다. 사주는 좋은데 현실은 아닌 분들에게 예로 드는 말이 있다.
'사주 팔자가 새로 치면 가장 용맹하다는 흰머리 독수리로 뭘해도 잘될 사주입니다.'
'제 사주가 그렇게 좋나요?'
'예. 정말 좋습니다. 근데 지금 동굴 안에 갖혀 있어요. 지금까지 대화를 종합해 보면...'
'동굴요?'
'예. 그러니 날지를 못하는 거죠. 빨리 동굴을 빠져 나가서 날개를 단련하고 근육을 붙여서 짧은 거리부터 나는 연습을 시작하세요. 그러면 사주대로 제대로된 흰머리 독수리처럼 멀리 날 수 있을 거예요.'
필자가 상위 0.03% 이내의 사주라고 말씀드린 분들 중 자기 사업이 가능해 사업을 해보라고 해서 시작한 분들의 실패 확률은 제로다. 공직이나 직장생활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몸에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치고 소위말하는 스카이나 IVY리그 나온 사람이 잘 없다. 학교 다닐 땐 공부 안해도 뭐라도 될 줄 알고 살았었고.. 그러다 보니 좋은 학교 못가서 기가 좀 죽었는데.. 자존심이 상하고 경쟁심이 발동해서 조금 열심히 일 했더니 초대박을 쳐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운의 부침을 겪는다. 그러다 필자도 찾게되고 또 컨설팅을 통해 운을 뛰어 넘는 노하우도 익혀 가는 것이다. 근데 이런 분들이 항상 하시는 말이 있다. 대학이라도, 대학원이라도, 유학이라도.. 스팩을 더 쌓아야 할지 묻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분들 중엔 서울대 나와서도 스팩이 모자란 것 같아서 하버드 유학하시는 분들이 꽤 된다.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일이 아무리 잘 풀려도 부족하다 느끼는 것이고 더 할 수 있으니 더 하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 필자가 하는 말이 있다.
'그거 하지말고 돈이나 버세요. 다 팔자에 원하는 돈이 안채워지니 관인을 쳐다보는 겁니다.'
정말 하위 0.001%이하의 사주를 가지고 놀랄 만한 부를 이룬 분을 뵌적이 있다. 겸손하셨다. 또 검소하셨고 같이 있는 내내 필자는 웃었던 기억이다. 알아서 낮추고 맞춰주고 살아오신 것이다. 이 분이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10대 후반에 굶는게 싫어서 집에서 도망나와 배달일 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너무 능력이 없어서 굶어죽을 것 같더란다.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단다.
'지금부터 하루 세끼 먹는데만 집중하자!'
그러다 보니 30대가 되었을 땐 살 집과 밥 걱정은 없게 되더란다. 너무 성실하니 배달 일하던 밥집 할머니가 일하는 나머지 할머니 네분 책임지고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란 말을 남기며 가게 열쇠와 주변 땅을 전부 받았다고 한다. 이후 20년 동안 이 할머니들과 밥집을 했고 마지막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즈음 밥집이 있던 시장이 재개발 되면서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분을 만난게 이분 나이 5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도 자신의 건물에서 임대 내준 식당들의 배달을 하고 주차관리를 하고 계셨다. 40년 전엔 밥 배달가면 늦게 왔다, 뭐가 빠졌다며 오만 욕과 잔잔한 폭행을 당했었는데 지금은 밥 배달가면 자기들이 일어나서 신문지 깔고 셋팅하고 인사하고 난리란다. 당신네 동네 최고 갑부가 땀 뻘뻘 흘리며 4천원짜리 정식 배달왔다고 생각해보라. 이 분은 사실 필자의 히든카드였다. 사주가 이런데도 잘산다고 말할.. 근데 사주가 안좋으니 역시나 명도 짧으셨다. 평생 결혼도 안하고 사시다 가셨는데.. 주변에 다 나눠주고 가셨다고 한다. 이 분을 만난건 이 분 건물에 입주해 있던 필자의 클라이언트의 요청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을 좀 돕고 싶은데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이 분이 원한건 자기가 가진 돈은 모두 할머니들이 준것이니 자신도 할머니들에게 다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왕 드릴거 제대로 드리자 해서.. 몇 가지 아이템을 말씀 드렸고 아울러 정부지원을 받아서 좀 더 쉽게 일에 접근하는 방법도 알려드렸다. 자긴 그냥 다주고 쉬고 싶어서 필자를 만나자 한건데, 일을 더 하게 만들어 드린 것이다. 언젠가 이 분의 전화를 받았다. '이실장 때문에 나 망했어!' 쉴려고 했는데 더 바빠지셨단 얘기다. 그렇게 주시다 가신 것이다.
요즘도 '대표님 때매 이번 생은 망했어요..'하는 메시지가 한번씩 온다. 진짜 망했단 소린 당연히 아니다. 진짜 망했는데 그리 다정하게 말하겠나?ㅎ 의도와 다르게 바빠져서 원래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고 싶은 건 못하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말 듣고 진짜 망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런 분이 연락 온 적은 거의 없다. 몇몇의 연락이 왔을 때... 왜 망했는지 같이 한번 분석해보자고 하면 연락이 없어진다. 해야할 걸 안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서 망한 것을 자신도 알아서 그런거라 생각한다. 하지 말아야 할건.. 주로 도박, 주식(도박이나 투기에 가까운), 과음, 마약 등 한번 발 들이면 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네 가지를 하면서 사업을 하는건 어불성설이다.
어떤 컨설팅도 결과를 예측하거나 무조건이라는 전제를 달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컨설팅이 아니고 명령이다. 지피지기를 하게 하고 경우의 수를 알려주고 그 경우의 수에 따라 자기 사주에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있게 알려주는 것이 컨설팅이다. 그러니 사업이나 장사가 컨설팅을 잘못받아서 망하긴 일반적으로 힘들다. 결국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기에 그렇다. 필자의 컨설팅이 아닌 다른 컨설팅도 마찬가지다. 망한 결과로 컨설팅한 사람들이 이익을 취하는 사기 행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글을 업로드 하려다 보니 모레 일요일은 피트, 약학전문대학입문시험이 있는 날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한해에 열분 전후로 시험을 보라고 제안하는 것 같다. 보통 그 중에서 두세분이 용기를 내신다. 이번에 용기를 내신 분들.. 시험칠 때 필자가 알려드린 방법을 총 동원해서 잘 치시길 기원한다.^^
인컨설팅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