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이란 게 태어나지 않음과 죽음을 빼면 확실한 게 없게 된다. 그러니 필자가 아무리 사주명리학을 가지고 당신 사주는 이러니 이렇게 살면 좋다.. 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게 되고 그 결과로 찾아오는 자기 운을 가게 된다. 또 이걸 사주대로 사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 보니 필자가 조언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특히나 사람이 사람을 선택할 때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나는 바람 피는 남자가 정말 싫어요..라고 말하는 여자분이 바람둥이에게 꽂히면 내가 그 남자의 마지막 바람이 되겠다..라고 외치며 결혼을 하게 된다. 아무리 말려도.. 자기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해야겠다고, 안 하면 후회될 것 같다고 하면서 결혼을 한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순간부터 후회가 싹트기 시작하고 그 싹은 나중엔 거목이 되어 자신의 가슴 한편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경우 재상담을 해보면 대부분의 이유는 '이제 질림'이다. 인간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걸 보고 동서고금의 셀 수 없이 많은 격언에서 '인간이 간사하다'라고 하거나 '인간의 마음이 갈대'라고 하거나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등의 말을 한다. 과연 사실일까?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들이나 마케팅을 공부하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이 격언들이 하는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인간은 직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좀처럼 변하기 힘들다는 게 심리학이나 마케팅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공략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견이 갈린다. 인간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이 의문을 풀려면 다시 주역이 말하는 역학의 원리를 알려드려야 한다. 필자도 다시 말씀드릴 때마다 좀 더 쉽게 설명이 되는 것 같으니 주저하지 않겠다.ㅎ 주역은 세 가지 역학의 원리를 말한다. 불역, 변역, 간역이 그것인데.. 


불역은 변하지 않는 틀, 요소를 말한다. 1년이 365일 인 것, 지구가 1년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 지구가 기울어져 있는 것, 그래서 지구 상에서는 1년에 4계절이 있는 것 등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변하지 않는 불역의 법칙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일양 일음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일양 일음의 미래 흐름은 한 번이 양이면 다음은 음이란 말이고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의미이며, 일양 일음의 과거는 양 이전에 음이 이미 있었다는 의미이다. 불역을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자연현상이다. 자연의 변화가 모두 이 불역의 변화인 것이다.


변역은 불역의 틀이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틀과 법칙 안에서만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역이 공간의 의미라면 변역은 시간의 의미이다. 우주만물이 특정 공간 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만 보면 영원할 것 같지만 변역이라는 시간에 대비해 보면 늙고 낡고 신생新生하는 것이다. 변역을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 바로 변역인 것이다.


간역은 인간의 인식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의 혼란을 기억한다. 세상의 흐름에 뒤쳐질까 봐 못 배워서 안달인 사람부터 '그런 거 필요 없어' 하면서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까지.. 어쨌든 배워야 하는데 완전히 처음 보는 새로운 기기이다 보니 폰맹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이 문자메시지를 대체하고 카카오 게임이 뜨면서 대화면의 스마트폰은 누구나가 가져야 하는 남녀노소의 필수품이 됐다. 카카오는 이런 점에서 인터넷 시대를 다음 메일과 카페가 이끌어 낸 것처럼 한국 IT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두 회사의 합병 이유도 이와 같다고 본다. 컴맹이란 단어는 아직 존재하지만 폰맹이라는 단어는 생소할 만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본인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간역을 이해하려면 IT기기로 이해하면 쉽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그렇게 어려워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요즘은 쉽게 사용한다. 세상 만물의 모든 이치는 모를 땐 어려워도 알고 나면 간단한 것이다. 이 이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 직접 액션 해 보는 것인데 스마트폰을 늘상 다루어서 익숙해지고 몸에 익으니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나 인간이 자신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땐 더 빨리 익히게 된다. 원래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한 행동은 배우지 않아도 한다. 새끼들이 젖과 먹이를 찾아 온몸이 반응하는 것이 그 증거 아니겠는가?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컴퓨터를 자신 삶의 도구로 마음대로 활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높지 않지만 스마트폰은 보급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필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컴퓨터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기기인 스마트폰이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며 간역의 증거인 것이다. 다른 간역의 증거로는 인류 역사만큼의 개발과 발견의 역사를 지닌 자연과학과 공학의 지식을 가지고 30년도 살지 않은 연구자들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그 지식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들에서 들 수 있다. 원리를 알아내는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원리를 학습하는 건 순간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원리를 찾아내는 건 더 빨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여자분은 바람둥이 남편의 무엇에 질린 것일까? 그런 남자라도 결혼을 선택한 사람이 질렸다는 건 사실 질린 게 아니고 아닌 걸 알았다고 보는 게 맞다. 남편은 실은 바람둥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남편이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질릴 게 아니라 더 흥미로워야 한다. 아직 변역의 시간이 흐르진 않았기 때문에 이 여자분의 변역의 작용력이 계속되어야 하는데 그 변역이 멈췄다는 건 위와 같이 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둥이 같이 보였던 남자가 실제 아주 가까이서 접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마음이 변해서 질린 게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금세 싫증 나고 질려버린 것이다. 


만약 진짜 바람둥이가 맞는데 남편이 싫어진다면 그건 잡지 못함 또는 소외감에서 오는 포기일 것이다. 남편이 결혼을 한 후에 자신에게 소홀히 하다면.. 그건 밖에서 다른 여자와  해결하고 들어오는 것이기에.. 자신으로선 어쩔  없다는 포기상태가 되는 것이다. 


위의  경우 모두 사람은 그대로이지만 감정의 상태 또는 판단이 변한 것이다. 남편도 바람둥이든 아니든 그대로이고 아내도 바람둥이를 싫어하는  그대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태어난 날짜로 정해진 사주를 바꿀  없듯이.. 하지만 살아가는 환경과 살아온 경험과 지나가는 상황 속에서 판단은 변할  있다. 


팔자 좋은 의사 얘길 하나 해드리겠다.  사람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의사인 의사 집안에 태어나서 누나 둘과 연년생 동생이 의사여서 자신도 자연스럽게 의대를 가서 의사가  케이스다. 성적이  나와서 부담 없이 의대에 진학했고 어렵지 않게 의대 공부도 마쳤다고 한다. 문제는 레지던트가 되면서 시작됐다. 정말 의사가 싫더란다. 인턴 때까지만 해도 그냥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깐 크게 몰랐는데 레지던트가 되면서 환자와 환자가족을 직접 만나면서 너무 스트레스가 커서 필자를 찾아오게 됐단다. 짧지만 평생 의사가 되는 공부만 해서 사회 물정을 전혀 모르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어서였다. 이미 부모님께 의사를 도저히 못하겠다는 말을 해서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얼마의 유산과 부동산을 주시겠다는 말까지 듣고 와서 자신이 있는 모든 것을 내놓고는   있는 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필자의 대답은... 연구의가 되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사주를 봐도 의사 사주였다. 그리고 의대 공부도 아주  해왔고 동료들과도  지낸다. 단지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게 너무 싫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일이 아니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해왔던 일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안 만나도 되는 곳에 근무하면 된다. 굳이 해보지 않았던 일을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새로이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좋은 점은 특정 사주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공식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옛날에는 의사 사주하면 의원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간병인 등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의사 사주인데 재가 강한 사람은 생명과 상관없이  많이 전공을 택하면 되고, 관이 강한 사람은 대학병원에 남아서 교수를 하면서 원장을 노리면 된다. 봉사 인자가 강한 사람은 국경 없는 의사회를 하면 되고, 편관이 강한 사람은 군의관을 해도 된다. 분석이나 수사능력이 강한 사주라면 법의학 전문의를 하면 되고, 경쟁  활동성 인자가 강한 사람이라면 재활의학이나 스포츠의학을 전공해서 팀 닥터를 하다가 자기 병원을 개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젠 사주에 맞지 않다고 완전히 인생을 바꿀 필요가 없는 시대가  것이다. 물론 자신이 정말  일을 하기 싫다면 몰라도 말이다.  요즘은 노는 사주를 가진 사람이 정말 하기 싫은 일도 돈만 보고 하면서 취미 생활을  강력하게 하며 자신의 사주와 운을 풀어내기도 한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부분을 가지고 사람과  사람의 사주를 이해하는 노력을 하면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가가 보이게 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도...



인컨설팅    이동헌

 

 

 

어떤 사주로 어떤 일은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건 틀린 말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식신 상관의 일, 편재 정재의 일, 편관 정관의 일, 편인 정인의  일로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사주팔자가 한 인자에 종從한다고 해도 대운의  흐름이나 세운의 흐름에서 다른 일자의 일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종 하지  않는다면 팔자 내에 강한 인자의 일을 먼저 하다가 운과 팔자 각 인자 간 합충형의  작용에 따라 일의 방식을 바꾸거나 전혀 다른  일을 된다. 그래서 사주에서 강한 한 가지 그 일만 할 것인가? 내 사주와 내 운의  흐름에 맞는 일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어떤 분야에든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란 의미와 굳이 하던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보단 하던 일에서 나에게  더 잘 맞는 분야를 찾으란 의미가 그것이다. 한 분야를 파고 들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 분야의 전반을 다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 분야 하나를 잘하면 다른 일들도 다 잘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요령이 생기니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맞다는 말이다. 요령이 생기는 이유도 사주에 맞아서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주라도 못할 일은 없다고 하면서.. 자기가 10여 년 고시를 공부했는데 합격하지 못한 걸 사주만 보고 알면서는.. 당신은 절대 합격이 안 되는 사주다..라고 말한 걸 들은 분들이 꽤 되기 때문이다. 못할 일이 없다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필자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공부.. 특히 고시공부는 일이 아니다. 돈 버는 일과 직장생활은 재관財官의 문제이고 공부, 고시공부는  인印의 문제이다. 이걸 생각해보면 필자가 한 말은 어떤 사주라도 그 사주의 방식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지 어떤 공부든 해서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재財와 관官은 돈과 명예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주는 인자다. 그러므로 사주구성과 상관없이 재관은 누구나 무엇이나 추구할 수 있지만 어떤 사주가 어떤 공부를 할 수 있다  없다는 인의 문제는 사주구성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기에 안 되는 공부는 아무리 붙잡고 있어봐야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그 공부가 관官을 추구하거나 재財를 추구하는 건데? 그럼 이  공부도 인印이 아니고 재財, 관官인 거 아냐? 하는... 이제는  없어진 사법고시를 예로 들면... 열심히 몇 년을 공부해서 합격을 한다 해도.. 최소 몇 년은 실제 판검사든 변호사를 위한 실무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합격 후에 하는 공부는 재財, 관官일 수 있지만.. 사법고시는 자체는 인印인 것이다. 대입 수능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아무리 배워봐야 대학 가면 새로  배우고 사회에 나가면 또 새로 배운다. 사회 나가서 수학공식 쓸 일이 거의 없지 않나? 그러니 그 공부는 재財, 관官이 아닌 그냥 인印인 것이다.   

 

필자가 사주를 보다 보면  특정 직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주로 그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이 분들은 때로는 독보적인 일처리로 그 분야에서 1인자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기존의 특정 사주 인자들이 그 일을 하는 방식으로는 일을 배우기  힘들어서 자신의 사주에 맞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낸 분들이다. 그래서 이 분들이 일하는 걸 보면 그 방법이 더 효율적이고 더 나은 것 같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들은 그 방식으로는 그 일을 하지 못한다. 실예로 이런 분이 달인이나 장인으로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는데 일반인들은 그걸 보는 것 자체로는 신기하고 즐겁지만 막상 한번 해보라고 하면 보면서도 따라 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주에 할 수 있는 일이 나와 있다는 건 인류가 탄생하고 사회가 구성된 후에 생겨난 직업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주 구성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에 대한 통계의 결과이다. 하지만 그 일에 맞지 않는 사주 구성을 가진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면 자기 사주구성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게 기존의 방식보다 빠르고 정확할 때  달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고, 그게 기존의 방식보다 못하면 그냥 일 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내용은 외국의 심리학 이론이나 두뇌과학 이론에서 필자의 설명에서 '사주구성'이란 말을 '더 발달한 뇌'란 말로 바꾸면 거의 100% 맞아 들어간다. 의사는 MRI 찍어야 보이고 심리학자는 일정시간이상 상담과 관찰을 해야 보이고 명리학자는 생년월일시만 알면 보인다.. 이 말이 맞는 것이다.       

 

 

 

인컨설팅     이동헌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길 원한다. 고리타분하게 한자 얘길 잠시 해보자. 학습學習, 배울 학, 익힐 습..해서 학습이라고 한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공부란 말은 한자가 있긴 하지만 학습이란 말의 우리말 표현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학습이 공부의 한자어라고 보는게 맞다. 그러니 공부의 진정한 뜻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현대화는 우리에게 슈퍼맨과 박학다식만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과도하게 사회를 시스템화 하려했고, 그 시스템 속에서 부품화될 인간을 생산해 내는 게 공교육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교육받은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 교육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뭔가 갈증이 생긴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내 자식이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에서 오는 갈증이다. 그 갈증 해소를 위해 부모는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은 걸 경험하게 하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경험하고 보여주러 그런 곳에 데려가면 이미 아이들이 엄청 많이 와 있다. 이미 부모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은 모두가 아는 것이 되어 있고, 모두가 꼭 봐야하는게 되어 있다. 처음엔 더 알게해주고픈 마음이었지만 뒤엔 그걸 모르면 내 아이가 뒤쳐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안해도 뒤쳐지고, 해도 뒤쳐지는 이상한 상황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경험, 관람, 볼거리들은 하나 안하나 똑같은 것이다. 상술에 놀아난 것일 뿐...

 

이제 사주명리학적인 관점에서 육아를 바라보자.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걸 보여주면 자신의 아이가 그것을 보고 스펀지처럼 쭉쭉 받아들일거라 생각한다. 키자니아라는 직업체험 테마파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직업이 있는 걸 알면 아이가 그걸 잠깐이나마 경험해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적성을 찾아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야구장에 많이 간다고 야구선수가 되고 축구장에 많이 간다고 축구선수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실 아이들은 습習할 시간이 필요하다. 뭐든 익히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럴 땐 되도록이면 혼자 두어야 한다. 명리학에서 이 습의 인자로 보는 것이 인성이고 그 중에서도 편인이다. 정인이든 편인이든 인성이 있는 사람은 좀 게으른 느낌이 든다.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보단 앉아서 지금 눈 앞에 있는 걸 계속 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책을 쥐어주면 책을 읽을 것이요, 고시공부를 하라면 고시공부를 할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선 재가 인을 극한다고 보았다. 그러니 재 즉 재물이나 신기한 물건, 놀꺼리가 인을 방해한다. 그래서 공부할 시기에 재운이 들면 공부는 하지 않고 밖으로 돌게 된다. 근데 요즘은 재가 없는 아이들도 부모에 의해서 밖으로 돌려진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밖으로 돌리는게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공부를 못하게 되는 환경을 부모가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량이 적은 초등학교 땐 이런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중학교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바로 나타난다. 습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성적이 급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성적 급락은 대부분 부모 탓이다. 노자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不見可欲(불견가욕)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 욕심이 날 것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을 것이다란 말이다. 제대로 집중하고 공부를 하게 하려면 되도록이면 공부이외의 것을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재해석이 가능하다.

 

천재들의 사주를 보면 대부분 인성이 많다. 그리고 천재들의 어린시절은 심심했다. 심심하니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니 알고 싶은게 생기고 알고 싶은게 생기니 공부를 하고 그 공부 효과는 다른 아이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래 니 아이는 많이 놀아서 천재냐고 묻는 모자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심심하게 키우니 심심하단 말은 입에 달고 살지만 이젠 혼자서도 잘논다. 책도 많이 읽는다. 그걸로 만족한다. 나머진 지가 커서 알아서 할 일이다. 부모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냐고 물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옛날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사회생활을 했던데 비해 지금은 30대가 넘어야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아마도 앞으로 점점 늦춰져서 지금 초등생들은 4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부모들이 그것을 조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70살이 넘어서도 자식을 챙겨야할지도 모르는 시대에서 그냥 빨리 놔주는게 자식에게나 본인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현대 사회는 인간의 교육을 컨베이어 밸트에 올려 놓았다. 그래서 애가 천재든 둔재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게 만들어 뒀다. 아주 일부 그것을 뛰어넘는 아이가 있긴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대상으로 취급받는다. 같은 제조공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1등이 무슨 의미가 있고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 시점에서 부모들이 갈망하는 돈 많이 벌고 잘나가는 사람들 중 학교 다닐 때 1등한 사람이 몇 있는가?

 

현대의 천재들은 모두 자신만의 리그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스스로 개척해서 그 분야에 집중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할 때 시장조사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냥 자신이 관심있는 그 분야를 자신의 의중대로 밀어 붙였더니 자신이 하는 일을 남들이 따라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가 키우고 싶은 우리 아이의 모습은 이런게 아니었나?

 

지금 사회는 가만 있으면 뒤쳐질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상은 계속 순환하고 있다. 인간이 산다는 건 정말 별게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다가 지치면 이제 과거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그 말은 가만히 내 일만 하고 있으면 사회가 알아서 내가 하는 일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식들이 해야할 일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가 할 일을 정한다. 그런데 그건 이미 과거에 성공적인 직업이었을 뿐이다. 아이를 과거에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자신의 아이가 미래지향적인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일을 아이가 하려 할 때 응원해줘야 한다. 그리고 집중할 수 있도록 관심을 끊어줘야 한다.

 

글을 써놓고 보니 참... 이 시대엔 무의미한 글이 되어 버렸다. 가장 현실적인 학문이라는 명리학도 철학이니 가끔 이렇게 구름 위에 농사도 지어야 하지 않겠나?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방금 전 상담을 하나 마치고 답답한 마음에 글을 쏟아내 본다.

 

아이의 학교를 정할 때 나름 유명하다고 이름난 철학관에서 사주를 봤다고 한다. 아이의 사주로 식당이 천직이고 돈도 벌거라고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조리학과를 추천해 줬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라서 다시 철학관 투어를 시작하신 분이었다.

 

내가 봐도 이 아이가 식당을 하면 돈이 될 사주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식신 대운이 들어오는 중년이후다. 아이의 사주는 식신이 하나도 없는 비겁만 가득한 사주에 인성이 년과 시에 떠있고 가라앉아 있다. 에이!! 사회경험 없는 사주보는 것들아... 니들은 학교에서 조리수업 듣고 큰 식당이나 호텔 레스토랑 취직하면 바로 요리사가 되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냐? 이 친구는 아마도 학교에서는 나름 재미있게 요리를 배우고 자기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취업을 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몸이 고된 건 기본이고 수많은 동년배들의 비겁에 의한 시기와 질투가 있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 남을만한 경쟁력이 있어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또 소위말하는 주방군기란것도 있다. 군대군기보다 더 무섭다는 주방군기 말이다. 선배의 명령에 복종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겁만 가진 사주를 그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조리를 전공해 한 10년 경험쌓고 식당하면 좋다고 말했다는건 사주를 봐준게 아니고 불구덩이에 집어 넣은 것이다. 10년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사주인지 없는 사주인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사주 봐주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봐준다고 해도 부모님들의 자세만 제대로 되어 있어도 저런 실수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공과 직업은 관련이 거의 없다. 10대의 공부와 대학전공은 그냥 관심사이거나 바램이 투영된다. 하지만 실제 직업은 타고난 (사주에 드러나 있는)천성이나 대운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의 사주를 보러가서는 꼭 두 가지를 물어야 한다. 전공은 뭘하면 좋을지와 나중에 뭘 해먹고 살수 있을지... 급하고 편한게 좋다는 마음에 직업이 뭐가 좋으니깐 아이가 싫다고해도 뭘 전공시키면 좋을거라고 생각하는건 부모의 이기심이다. 그 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게 둬라.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원하는 전공을 엄마가 원하는 전공으로 세뇌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런 것 역시 부모의 이기심이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은 없다는게 동서고금의 결론 아닌가? 자기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한 아이는 나중에 자기가 원하는 직업도 잘 선택하고 그걸 돈과도 잘 연결시키는 힘을 기르게 된다. 반면 시키는대로만 한 아이는 마흔살이 넘어도 부모가 밥숟가락을 들고 따라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소파 방정환선생님은 어린이를 나보다 몇 십년 빠른 사람이라고 하셨다. 아이와 부모를 비교해보면 부모는 이미 출고된지 3~40년 된 중고자동차이고 아이는 이제 갓 출고되서 길들이기 시작한 최신형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중고자동차가 앞에서 달리면 최신형 자동차는 답답하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데 막혀서 못가고 있을수도 있다는 말이다. 부모는 자기가 아이를 돌봐야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아이들이 살 시대는 부모가 살았던 시대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의 제대로된 역할은 자기가 가본 길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 정도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가려고 하는 길이 자기가 가본 길이 아니라면 제대로된 그 길의 전문가를 같이 찾아서 그 길을 같이 물어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당연히 사주봐주는 사람의 역할도 이런 길, 저런 길에 대한 소개에 그쳐야 한다.

 

나도 부모라서 아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좋은 부모운을 주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