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들 전화가 몰려왔다.

Eastlaw Bizstory 2019. 8. 12. 18:20 Posted by Eastlaw

사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깍쟁이다. 자기 필요하면 연락 오고 아니면 연락 안 온다. 자리 잡은 회사 회장들은 필자가 그들에게 필요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보다 격조하다. 그런데 모회사 회장이 유튜브 하나 잘못 보여줬다 사표내고 나서 몇 통의 전화가 몰려왔다. 고속도로 장거리 운전 중이라 나중에 연락 준다고 하고 끊었는데.. 이 아자씨들이.. 뭐가 또 필요해서들 또 이러나? 전쟁이라도 났나 싶었다. 도착지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확인하니 문자까지 열 분 정도 된다. 문자 내용을 보니.. 고맙다는 내용이다. 갑자기 이들은 필자에게 뭐가 고마웠을까?


여러분은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밴드, 카페 등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계시나? 사실 이 차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서 그게 맞거나 맞게 활용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유는 이름이 다른 저런 것들이 항상 서로의 영역을 넘보는 경쟁 중이기 때문이다.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줄임말이고 소셜 네트워크란 가볍고 약한 구속력을 가진 모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이 아닌 그냥 비슷한 관심사, 비슷한 근무지, 비슷한 출생지, 비슷한 해외 등 무언가 연관될 수 있는 사람이 그 연관분야나 연관이 되었다는 자체만으로 알고 지내는 것으로.. 굳이 현실에서 만나지 않아도 무관하게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일종의 모임이나 만남, 스치는 인연 정도를 뜻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셜 네트워크의 개념을 설명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럼 필자가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일 타는 버스를 생각해보라. 같은 시간대에 타거나 그 버스를 1년 정도 타면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 얼굴 정도는 낯이 익게 된다. 인사를 주고 받든 말든... 그리고 같은 시간 대에 계속 타다 보면 같은 시간 대에 계속 타는 사람도 낯익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열심히 듣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자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교복을 입은 사람, 유니폼을 입은 사람, 화구 가방을 든 사람, 배드민턴 가방을 든 사람, 각가지의 책을 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저런 걸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기분이 나쁘게 보이면 오늘 기분 나쁘구나,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하는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무얼 떨어뜨리면 떨어졌다고 말해주거나 주워줄 것이고, 가방이 열렸다면 그것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물어보면 시간을 알려줄 수도 있고 평소 내리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느라 그 지역을 잘 모르면 물어보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많이 봐서 친근하기에 큰 도움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보단 편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따뜻한 도움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소셜 네트워크다. 이런 안면만 있는 커뮤니티를 온라인상으로 옮겨온 게 소셜 네트워크란 말이다. 그 시작은 트위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트위터는 초기 140자.. 한글로는 70글자 이내의 글만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더 말하고 싶으면 여러 번 올리면 되고, 사진이나 동영상, 신문기사를 보여주고 싶으면 그 링크 주소를 올리면 되며, 더 긴 할 얘기가 있다면 자신이 쓴 글이 있는 블로그나 유튜브, 게시판의 링크 주소를 올리면 된다. 140자 이내라고 하지만 링크 주소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얘기를 빠르고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이 아주 느리거나 전화회선을 사용하는 곳에서도 트위터는 사용할 수 있다. 트럼프가 트위터만 사용하는 데는 이런 내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어디서라도 자신의 트윗을 읽어라.. 는... 트위터가 텍스트라면 페이스북은 사진이 기반이고 출발 역시 사진이다.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보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시작이 특정 대학의 학생들의 사진을 올려서 가입시키고 정보를 공유시키는데서 출발했다. 여기에 글, 동영상의 링크도 가능하고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와 협업과 메신저 기능도 별도 가능하게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페이스북에서는 SNS의 모든 기능의 구현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이 너무 다양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놓친 사진이란 부분에 집중하는 서비스다. 사진도 정사각형 사진을 찍어서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이나 설명을 붙이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마치 사진 액자와  사진에 대한 설명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그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고 즐기고 나눈다. 한국에서는 과거 싸이월드가 이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서비스였다. 이 이전의 사람들은 주로 블로그에 사진을 올려서 긴 이야기를 전했는데.. 말하기 싫은 사람도 있지 않나? 그냥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현재 심정을 전달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의 심리를 깨 뚫은 서비스다. 페이스북도 사진인데 왜 인스타? 말씀드리지 않았나? 페이스북은 너무 많은 서비스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간단하게 사진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선택한다.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보고 싶은 사람의 게시물을 보기 위해서 '팔로우'를 한다. 상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 '팔로우'를 하지 않아도 볼 수 있지만 찾아보기 귀찮으므로 '팔로우'를 해서 앱만 열면 보이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팔로우'하면 누가 팔로우를 했는지를 '팔로잉'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 그 '팔로잉'에 있는 사람을 자신도 팔로우하는 걸 한국말로 맞팔로우 또는 맞팔이라고 부른다. 이건 예의란 사람도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자신이 팔로우 한 사람이라도 글이 보기 싫어지면 팔로우를 취소할 수 있다. 이걸 언팔이라고 부른다. 페이스북은 팔로우를 친구 신청이라 부르고 친구가 되기를 조금 강요하는 느낌이다. 역시나 비즈니스 성격의 차이라  수 있다.


유튜브가 광풍이다. 유튜브에 회원가입을 해서 동영상을 올리는 서비스다. 유튜브를 설명하기 전에 블로그를 먼저 아셔야 하는데.. 블로그는 텍스트, 그림, 동영상을 모두 올릴 수 있는 서비스고 개인 언론, 개인신문이라고 불릴 만큼 자신의 무언가를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서 전달하는 서비스다. 블로그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달리 인터넷에 오픈된 서비스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계정을 가지지 않아도 검색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동영상만 올릴 수 있는 서비스가 유튜브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루한 글을 읽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보는 게 더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지금 대세가 되었다. 블로그와 유튜브는 아무나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누가 보는지는 모른 채, 조회수로만 그 인기를 짐작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블로거와 유투버들이 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 보더라도 다시 방문할 건지, 게시물이 좋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좋아요'와 '구독'을 꼭 누르라고 하는 거다. 이걸로 광고비 정산도 받고 말이다. 유튜브 외에도 아프리카 TV, 네이버 TV 등의 동영상 서비스가 있다. 


현재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는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실제 1대 1로 텍스트로 대화할 때는 동일하다. 다만 카카오톡은 여러 명이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이라 불리는 단톡방이 있고, 이 단톡방은 회사부터 모임, 가족, 친구들의 의사소통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단체들 간의 불법적인 비밀대화가 외부로 공개돼서 지탄을 받거나 형사처벌까지 받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다양하고 넓고 깊게 사회 전반에 사용되고 있다. 카카오톡과 비슷한 게 네이버에서 서비스하는 라인이고 중국은 위쳇, 미국은 페이스북 메신저와 MSN 메신저, 스카이프(원래는 화상전화 기반으로 출발)를 많이 사용한다. 이들 메신저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전화통화, 화상통화를 지원하며.. 이들의 서비스 품질이 좋아지면서 국제전화 업계는 망해가고 있다. 필자도 해외에서는 거의 카카오톡의 무료통화 서비스인 보이스톡을 사용한다.


카페는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인터넷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다. 여기에 밴드는 모바일 부분을 강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의 내용이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SNS 서비스들의 대부분이다. 이 SNS 서비스들은 잘만 사용되면 정말 인간에게 유익할 수밖에 없는 고독 제거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잘못 사용되면 가짜 뉴스와 심리적, 정신적 고립을 자초하게 만든다. 어떤 70세 회장 한분이 전 직원 앞에서 유명 유튜버의 동영상을 재생한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냥 보면.. 그 회장이 보수꼴통에 사상이 원래 그래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필자가 아는 의사 한 명이 요즘 맨날 반정부 시위를 하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가 속한 의사단체는 친박근혜 쪽 단체로 태극기 부대나 엄마부대와 같은 의견을 가진다. 아니 의사가? 그것도 개업한 의사가?? 일당 받으려고 대모 하는 사람들과 같은 짓을 하고 다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존재한다. 친하다는 친구와 지인과 단톡방을 개설하고 있고.. 단톡방에 올라오는 가짜 뉴스에 기반한 각종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계속해서 보고 있단 점이다. 그런 단톡방만 보는 어떤 택시기사가 필자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문재인 치매라던데 검진을 거부한다면서요? 예? 어디서 들었습니까? 뉴스에 나왔어요?라고 대답하며 거치대에 꺼져있던 폰을 켜고 단톡방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 하나를 자랑스럽게 틀어준다. 요즘 젊은 사람들보다 잘하죠..라고 자랑하면서 말이다. 예전엔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었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자신이 다니는 교회 단톡방에 올라오는 저런 동영상만 보고 듣는단다. 뉴스에 나온 그 물러난 회장처럼 이 택시기사도 나라 걱정과 국민, 여성들 걱정을 엄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택시기사는 전 국민이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보고 있다고 알고 있고 거기에 나오는 꼴통 유튜브가 JTBC 뉴스 앵커보다 더 신뢰성 있는 인물이라 믿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니깐 역시 꼴통 언론사나 꼴통 정치인, 목사들이 추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돈이 많든 적든, 직위가 높든 낮든,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인간은 그 시대의 시류를 같이 경험하고 싶어 한다.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이 부분을 이용하고자.. 유튜브가 대세이면 유튜브를 이용하고, SNS가 대세이면 SNS를 이용해서 그 시류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흘린다. 필자가 트위터가 뜰 때 올린 트위터 교육 영상으로 꼴통 단체들이 트위터를 배웠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실제로 그쪽 메인 강사가 필자에게 수차례 트위터 사용법과 활용법을 물어왔었고.. 필자는 아무 뜻 없이 알려줬었다. 그들이 댓글부대로 뛰었고 지금은 어딘가에 조금 달라 보이는 모습으로 암약해서 활동하고 있다. 저런 짓도 그들이 하는 짓이라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IT 여론전에서 밀린 게 그들에게는 큰 한으로 남아있고 그 후 댓글부대로 주도권을 잡았다. 지금은 댓글부대의 업그레이드로 유튜브를 이용해 단톡방에 뿌리고 있고 말이다. 


회장님들이 전화 와서 하시는 말씀은 대체로 이렇다. 이 대표가 안 알려줬으면 자기도 그게 다인 줄 알고 살았을 거란다. 이분들은 컴퓨터 부팅하고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부터 필자한테 배운 분들이다. 모르면 나이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돈을 들여서라도 배우는 분들이다. 사람이 늙으니 의지할 때는 학교 동창이나 친구들밖에 없는데.. 그런 친목 단톡방에는 의례 저런 유튜브 동영상들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걸 계속해서 본 친구들은 정말 그게 여론이고 사실이라고 믿는단다. 그런데 자신도 이런 최선의 것을 한다고 자랑하고 싶으면 저짝이 나는 거란다. 젊은 직원들 모아놓고 뭔가 말은 해야 되겠고.. 그냥 말하면 늙은이 소리나 들을 것이고.. 그러니 나도 유튜브 보는 사람이고 유튜브의 여론은 이러니.. 어떡하자.. 고 말하고 싶을 거라는 거다. 사실 사업 잘하는 사람은 보수고 진보고 꼴통이고 없다. 그냥 자기가 목표한 일을 이루는 게 최우선이고 수단과 방법은 상관하지 않는다. 또.. 늙으면 그런것도 없다. 늙어서 시대와 안 맞다, 늙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싫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옹호하는 거냐고? 아니.. 전혀다. 잘못된 게 있다면 불매 운동해서 시민의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어설픈 척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필자가 실제 이 회장님들에게 해준 말은 여러분께 늘 드린 당부와 같은 거였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힘은 돈이나 권력이 아닌 인기다. 그러니 인기의 역풍을 맞지 않으려면 내 의견과 달라도 인기에 영합한 발언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교언영색인 게 밝혀지면 더 큰 구설이 있을 수 있으니.. 행하기 전에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익혀서 제대로 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발언과 행동을 해야 한다. 이 시대는 분명 돈의 시대이지만 변함없이 인간은 돈보다는 결국엔 관.. 즉 명예가 더 중요하다. 돈과 명예,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면.. 인기를 좌지우지하고 싶다면.. 배우고 알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한 거다.


 

인컨설팅   이동헌




SNS를 보면 아주 헌신적인 남의 남자를 부러워하는 여자분들이 많다. 가령 이런거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 고향이 경남인데 친구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내려가야하는데 남친이 한밤중까지 야근을 했음에도 운전을 해서 경남까지 데려다 주고 서울로 다시 올라갔다는.. 피곤을 무릅쓰고 운전 8시간이상을 했단 말을 듣고는 너무 부럽다는 것이다. 정말 부러운가? 여자가 아무리 감성이 앞서고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지만.. 이건 남친과 친구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졸음운전은 교통사고 중에서도 가장 큰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범죄행위 중 하나임을 망각한 부러움이다. 실제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터널입구마다 플랭카드를 붙여놓고 있다. 졸음운전하지 말라는... 그리고 보통 남자가 여자친구를 위해 이 정도를 하면 본인이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기대심리 내지는 아주 강한 소유욕이 생긴다. 기대심리는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너도 어느 정도를 나한테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고, 소유욕은 내가 이 정도를 했으니 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소유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걸 보는 친구들도 니 남친이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말로 여자친구의 자유의지에 족쇄를 걸어버린다. 어찌보면 이러한 과도한 행동은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의 전조현상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고 반복의 동물이다. 몇년 후 둘은 결혼을 했고 이번에도 장모가 아파서 내려가야할 상황이 왔다. 남편이 일이나 피곤을 이유로 잘갔다와하는 말 한마디 하고말면 아내는 이유와 내용은 다 알지만 섭섭하다. 동시에 '변했다'라고 느낀다. 사랑이 변한다는 말도 있고 안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내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르겠고.. 필자가 아는 건 상황은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감정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지만.. 현실은 상황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변한 상황에 따라 행동을 했음에도 변했다라고 상대방이 느낀다면 둘 사이의 파국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남녀가 사랑하는 건 당연히 좋은 것이고 권장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과한 액션을 기대하면 나중엔 꼭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데이트 폭력의 많은 커플들이 죽고 못살았던 사이였거나 일방이 너무 집착했었던 걸로 알려지는 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위의 저런 남친을 자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미쳤네, 사고나서 죽으면 어쩔려고'하는 생각을 가지는게 맞다. 아니라고? 그래도 부럽다고? 하긴 평생 그런 사랑 한번이라도 해보고 죽는게 소원이라면야...뭐... 할말없다.

 

사주명리학에서 위의 남자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은 비겁의 몰림이나 인성과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성과다의 경우 목화의 양인성에서만 주로 드러나서 그 확률이 아주 낮지만 비겁이 많은 경우는 확률이 높아 흔하게 볼 수 있다. 양인성 과다의 경우 그냥 그 당시 그래야 되나보다 하고 하기 때문에 뒤에 남는게 없는 편이지만, 비겁과다는 한만큼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너무 바라면 나중에 곤란해질 일이 생긴다.

 

방금 말해드린 비겁과다나 양인성의 경우는 그러한 사람이 상대를 안가리고 모든 사람에게 과하게 행하는 특성이라 상대성이 아닌 보편적인 것인데, 실제 사주상의 문제는 저 두가지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궁합과 생극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는 정말 머리 아프다. 궁합은 익히들어서 아실테고,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에게는 퍼주기만 하고 또 어떤 사람한테는 받기만 하는 관계가 생극에 의한 관계이다. 이런 걸 설명하기 위해서 명리학자들은 아주 다양한 사주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12신살의 띠를 통해 찾아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다 다양해서 그러한 인위적인 이론이나 신살로는 설명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그러한 딱보고 아는 확률낮은 이론보다는 궁합을 보고 두 사람이 사주에서 강하게 사용하는 인자를 질문을 통하거나 둘이 행동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통해 두 사람의 이후의 문제를 알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인간의 삶이란게 100%는 없기 때문에 실력없단 소리를 듣더라고 제대로 말해주고 싶어서다.

 

솔로들은 커플이 부럽고, 커플들은 솔로가 부럽다. 물론 아닌 사람도 부러운 사람만큼 존재할 것이다. 이 모든게 음양이론이다. 음이면 양이 필요해지고 양이 과해지면 다시 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순환원리인 것이다. 여기서 솔로를 탈출할 수 있는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솔로는 양을 취해야 커플이 될 수 있는데, 양을 이미 취하고 있는 솔로는 그 양을 버려야 이성의 양이 온다. 그 양은 살(체중), 생각(움직이지 않음), 편견(자기애), 시간(워크홀릭) 등이다. 이 양을 버리면 이성이 자기 삶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음양은 항상 조화를 이룰려고 노력하기에 그러하다.

 

 

인컨설팅연구소    이동헌

 

 

 

부산이란 지역이 사주명리학계의 명사들이 많다는 건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필자도 부산사람이고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도 주소지를 부산에 두고 있다. 그래서 부산에 대한 사정이 밝아서 이런 세세한 얘기를 해드릴 수 있지 싶다.

 

필자가 듣기로 6.25 한국전쟁 이전 부산에는 사주명리학을 하는 사람 중 이름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에 부산이 바닷가인 까닭에 포구마다 큰무당이 있었고, 산 중에는 유명한 사찰들이 있어 운명에 대한 부분을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함경도와 평안도의 사주명리학자들이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에서 피난 온 사주명리학자들이 부산에서 돗자리를 깔게 되었다. 여러분들이 궁금한 점은 어느 동네에 있는 철학관들이 용했냐 일 것 같다. 그건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발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산은 원래 포구가 발달한 지역이라 처음엔 철학관을 차린다고해도 장사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다만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 처음엔 철학관 장사가 잘 될 가능성이 많은 지역이었다. 부산의 피난촌은 중구와 동구, 영도가 주를 이뤘다. 국제시장부터 부산역, 범일동의 조방앞, 영도 영선동 등이 그 지역이다. 그 후 여기에서 시작한 분들 중 부산의 원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래, 대신동으로 옮기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진짜 부자들, 그러니깐 기업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하는 사주를 보는 분들은 60년대와 70년대 부산의 모든 기능이 모여 있었던 조방앞 특히 은행을 비롯한 사채, 금융권이 밀집한 부산 진시장 부근으로 옮겨오셨다. 이곳에서 개업을 하신 분들은 일반인 손님은 받지않고 기업, 금융, 정치, 사법계의 고객만 받아서 대중적으로는 유명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하루종일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며칠을 사랑채에서 기다리다 사주를 보고 올라가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나 조흥은행, 제일은행, 기업은행, 부산은행 등을 사이에 둔 부산진시장 옆 철도건널목을 철까치라고 불렀는데, 철까치 근처에 개업하신 분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도사들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다. '철까치'라는 말은 북한말로 철로옆, 철길근처라는 뜻이다. 아쉬운 점은 이곳에 계시던 분들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손님들이 문 밖을 메운 까닭에 대부분의 철학관하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사이드잡으로 하던 교육이나 문하생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철학관들은 서기를 둔다. 손님을 받아서 생년월일시를 들어 사주팔자를 뽑게하고 그것의 반복과 교육을 통해 문하생을 키운다. 흔히 고수가 수제자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밥은 줄테니 알아서 배우라는 일종의 도재식 교육으로 제자를 키운 것이다.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상담능력이 낮은 철학관은 손님이 적을 것이므로 교육생을 받아 교육비를 받으면서 교육을 해주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의 경우 큰 돈이 오가기 때문에 거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접수를 맡긴다. 그래서 아들이 없는 경우엔 거의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어제 아쉬은 얘기를 들었다. 이 철까치 철학관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명세철학관이 문을 닫은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런 얘길 캐나다에서 들으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 했다. 전통사주명리학을 하시는 분 답게 사주에 나와 있는 미래를 그냥 읽어만 주는 방식의 사주를 봐주시는 분이었다고 들었다. 이 철학관의 선생님은 기업보다는 주로 개인사주를 보시는 분으로, 그래서인지 조방앞에선 많이 떨어져 있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부산진역과 가까워서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최근까지도 성황을 이루었고, 아무래도 개인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작명에 더 집중을 하시는 편이라 작명으로 더 유명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전하신 분을 얼마전 20년만에 만났다. 손자의 이름을 짓기위해 가셨다가 발걸음을 돌렸다는 말씀과 함께... 필자가 제자는 아니기에 모셨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철까치 주변의 도사님 중 넘버원이셨던 정도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자긴 이제 다됐으니 필자를 찾아가란 말씀을 듣고 제대하는 날에 맞춰 나를 찾아오셨던 분이다. 한때 대한민국 신발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장님이셨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해 진짜 그만 둬야 되냐고 몇 번을 물어오셨고, 제가 보기엔 그렇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있다. 그 후는 사실 필자의 기억에서 지워진 일이지만 1년에 걸처 회사를 매각했고 사업을 필자 말대로 접었다고 한다. 사실 접고나선 후회를 엄청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회도 잠시 매각하고 불과 몇 개월 후에 IMF가 터졌고, 다른 공장들이 문닫을 때 자기는 이미 확보된 현금으로 금융과 부동산으로 돈을 더 번 후에 신발사업으로 인연이 있었던 스케쳐스 사장의 도움으로 미국에 이민 가셔서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 당시 같이 필자를 찾아오셨던 LA기어란 추억의 브랜드를 자신보다 더 크게 하셨던 최사장님이란 분은 업을 계속하시다가 IMF이후 부도가 나면서 연락이 끊어졌다고 믿고 안믿고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신뢰가 갔다는 말씀에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필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한눈에 알아봤다고 하신다. 얼마전 머리카락을 짧게 쳤더니 제대했을 때 모습이 보이셨나 보다. 워낙 노안이어서 나이들면 오히려 안늙는다는 소릴 많이 들었지만 그 덕에 오랜 인연이 한번에 알아봐주니 반가웠다. 이 분이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당시 필자도 이 분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 즈음 필자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의사 진단이 사망할 것이라고 나오는 바람에 피해자일수 밖에 없었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가해자로 둔갑해 그당시 고급차였던 그랜저와 프린스 수리비 및 말도 안되는 각종 병원비까지 물 처지에 몰렸다.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사장님의 인맥 덕분에 쌍방과실로 겨우 낮출 수 있었다. 다만 진실을 밝히기엔 자신의 인맥도 무리라고 했다. 그 후 그에 역인 것들은 필자의 능력으로 다 죄값을 치르게 했지만 이 분의 도움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었던 필자의 20대 후반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얼굴을 지구 반대편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위해 나타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같은 비행기를 탄 것도 아니고 미국시민권자는 외국여권소지자와는 다르게 캐나다에서는 자국민 대접을 받기 때문에 밴쿠버국제공항이란 메이저급 공항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마주친 것이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운동화 끈이 풀어진 걸 발견하고는 카트를 통로 벽으로 붙어 끈을 고쳐 매는데 종이 한장이 필자의 발 앞에 떨어졌다. 노인 한분의 메신저백에서 빠진 듯 보였다. 일어서서 그분을 부르려던 순간 한무리의 여행객들이 그 분의 뒷모습과 나 사이를 갈랐다. 내가 카트를 밀고 출국장 밖으로 나갔을 땐 그 분이 누구였는지 잠시 본 뒷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마중 나온 와이프와 인사한 후 그 종이가 무언지 자세히 보게됐다. 한장 짜리였지만 대충 봐도 계약서 같아 보였다. 와이프와 같이 나온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건 일종의 차용증 같은 것이라고 했다. 금액이 컸다. 분명 없어진걸 알면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살피는 노인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앞서가던 그분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익스큐즈미 하며 혹시 찾는게 있느냐고 물었고, 계약서라고 하셔서 내가 주은 종이를 전했다. 그 때 서로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그 사장님이었다. 잠시간의 인사를 끝내고 내 한국과 캐나다, 미국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어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자신이 꼭 매입하고 싶었던 건물을 자신이 소유한 땅과 교환하는 거래가 있었는데, 내 덕분에 원만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달 필자의 고객이 가진 땅 몇 필지를 팔면 그걸 산다는 분의 사주로 봐서 땅 전체의 가치를 올려줄 것이라고 컨설팅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매수자가 바로 이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어준 계약서는 그 거래와 관련된 계약서였다고 했다. 그 건으로 필자에게 비지니스적인 좋은 제안을 해오셨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가 있고,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이가 있다. 사주명리학적으로 보면 그건 혈연이나 친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걸 필자는 일궁합 또는 궁합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주 구조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일궁합이 맞는 사주의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어슬프게 그런 걸 경험한 사람들은 인맥관리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많은 사람을 알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런 경우 오히려 많은 피해를 입는 구조의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분명한건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보단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고 파악하고 판단하는 노력이 당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사람을 찾아나서 보자.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알아두고 가까이 있으면 그냥 도움이 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지 모르니 일단 많이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도구로 필자는 SNS를 추천한다. 느슨한 친분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자 현대의 인맥교류방법이다. 필자는 실제로 SNS를 통해 교류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주고 있다.

 

지리산의 어느 암자에 간적이 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으나 그치지 않아 하루밤을 묵어야할 처지였다. 스님은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날 밤 등산복 차림의 노인 한분이 암자를 찾았다. 스님은 엄청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옛날 얘기를 주고 받으셨다. 필자는 정말 친한 사이인가 생각하면서 두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오신 노인분이 20여년전 필자처럼 비를 피하러 오셨던 적이 있었단다.가 너무 많이 내려서 3일을 묶고 가셨다는 얘기였다. 그게 다였다. 무료한 산 생활에서 절을 찾는 보살을 빼면 그런 식으로 3일 씩이나 묶고 가는 사람은 20여년 동안 이 분 한분이셨던 것이다. 그동안 한번도 안부를 전한 적도 마주친 적도 없었지만 '아직 여기 계셨네요. 아, 어..' 하다가 그 3일의 얘기를 쏟아내시는 거였다. 인간의 인연이란 원래 이런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사회란 타이트한 구조 속에서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놓고는 서로 고통스럽게 참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이 절대고독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말은 스스로 혼자있는 시간을 갈구하고 있다는 말의 반증인거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각각이 떨어져서 독립생활을 했을 것이고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 모였을 것이다. 현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의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만 불과 100여년 전 산업혁명 전에는 인간이 모일 일은 전쟁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산업혁명의 집단주의적 생산과 소비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SNS 같은 인간에게 느슨함과 자유를 주는 도구가 생겨나고 점차 확산되면서 사회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을 맞대고 어울려야 인간미가 있다는 건 전쟁터의 전우애나 노동착취를 당하던 시절 좁은 방안에 온가족이 엉켜살던 시대의 깝깝함을 미화하고 싶어한 사람들에게 세뇌당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주명리학으로 본 인간은 모두 독립체이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편하기 위해 참거나 편하기 위해 휘두른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그것 뿐인 것이다. 하지만 휘두르는 사람보단 참는 사람이 많다. 아니 휘두르는 사람은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없어 못보는 것 뿐이다.

 

'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지금 OO해서 죽고 싶을 것 같은데?'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부모님이랑...'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회사는...'

  ......

 

편하게 살자. 편하게... 이기적으로 살자. 사실은 그게 남을 돕는 거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