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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가 서당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언쟁이 붙었다. 계절이 몇개냐고 물어서 네개라고 말하니 '틀렸다. 계절은 세개다.'라고 말하면서 공자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제자는 때마침 문을 나서든 공자에게 자신있게 '계절이 몇개입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는 제자와 같이 서 있던 사람을 쓱 보고는 '계절은 세개다. 3계절이다.'라고 답했다. 황당했던 제자는 나중에 공자에게 다시 물었다. '왜 사계절을 삼계절이라고 하셨습니까?'하고.. 그러자 공자가 답했다. '너와 같이 서 있던 사람은 베짱이였다. 온몸이 녹색인... 베짱이는 봄에 태어나 가을에 죽는다. 겨울을 겪어볼 수 없단 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 사람에계 계절은 삼계절 뿐이다. 겨울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겨울도 있다하고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리석고 시간낭비라고 공자는 말한다. 이거 맞는 말 아닌가? 이번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아프리카 선수 중엔 눈을 처음 본 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눈을 처음 본 모습을 찍은 사진에는 정말 경의로움을 맞이하면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에만 평생 살아 눈이란게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늘에서 얼음송이 같은 눈이 내린다고 말해주면..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주에 관이 없는 사람에게 관에 대해서 설명하면 황당해 한다. 재가 없는 사람에게 재의 행동을 설명해도 마찬가지고, 식상이 없는 사람에게 창작창조에 대해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인성이 없는 사람에게 참을성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게 사주에 없는 인자에 대한 설명이다. 사주팔자에 목화토금수가 골고루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루두루 평범하게 살아간다. 강한 인자가 있어 치우칠 수는 있지만 상식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오행이 빠져 있다면 그 없는 인자에 의한 결핍을 채우거나 무시하며 살아가게 된다. 대운에서 들어와 경험을 통해서 알기도 하지만 팔자에 없는건 없는 것이므로 그 없음을 읽어야 그 사람의 인생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 재상담이나 누군가의 소개로 예약하는 분을 주로 상담을 해드리는데.. 그런 까닭에 소개하신 분은 어떤 이야길 해줬다는데.. 왜 자신은 안해주냐는 분들이 계시다. 팔자에 없는 건 말씀드릴게 없는 것이다. 간혹 팔자에 있어도 살아오시는 과정에서 시기를 지나거나 놓치는 분들도 있다. 말씀 안드리는 이유를 설명드려도 또 다른 말로 묻는다. 또 설명해도 또 묻고.. 반복...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겨울이 없으니 1년이 3계절이라고 아는 것처럼...

 

여기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큰 문제점 하나가 돌출된다. 옛날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쓸 정보도 시간도 없었다. 겨우 장터나 나가야 누가 어떻다더라는 정보를 하나 얻어서 5일을 갖고 놀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다르다.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의 그 나라 사람도 가본적이 없는 곳까지 여행가는 세상이다. 흔히 상관성이나 강한 식신을 가진 사람이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주에 특정인자가 없는 사람도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한다. 결핍이 낳은 기적 같은거다. 이런건 순작용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인자나 사용하지 않는 인자를 가지고 왜 나는 그게 안될까? 그게 없을까? 그렇게 못살까?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특히나 부모가 자식을 보는 관점이 이렇다면 부모는 부모대로 애가타고 자식은 자식대로 미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평생 계절은 3계절이다 4계절이다..로 다툰다고 생각해봐라... 근데 그런 집안이 아주 많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 중 필수는 남을 인정하는 자세다.

'넌 그렇구나!'

이거 하나면 삶이 편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필요한 자세는...

'난 우물안 개구리구나!'

내가 아는게 다가 아니고, 내가 생각한게 처음이 아니고, 내가 한일이 새로운게 아니란 걸 항상 생각하고 확인한다면... 사는게 겸손해지고 편해진다.

그게 팔자대로 사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도 그리산다. 만사를 신기해 하면서.. 처음 만날 때 신인류를 보는 것 처럼..ㅎ

 

 

인컨설팅 연구소   이동헌 

필자에게 사주를 보러 오는 분들 대부분 하는 말이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엔 참 어폐가 있다. 그 있는 그대로 란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현재 아닌가? 맞추어 보란 얘긴가? 그게 아니면 그들이 말해달라는 건 미래를 말하는 것인데, 살아보지도 못한 미래를 어떻게 말해달란건가? 내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갔다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 여자분이 상담을 하러 왔다. 사주를 보니 따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편 사주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의 사주를 보고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질문은 주말부부를 하느냐, 남편이나 아내분이 출장이 잦느냐, 애들 교육 때문에 떨어져 사느냐... 정도의 말 뿐이다. 사실 필자가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두 분 이혼했느냐? 이혼 할거냐? 부부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느냐? 등의 질문이지만 말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하면 그때부터 할 말이 없어진다. 잘 살고 있는 부부에게 이혼할거라고 할 수도 없고, 설령 다음달에 이혼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져서 헤어질게 뻔한데 잘산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부부가 같이 상담을 오면 더 그렇다. 이런 경우 나의 입막음 차원에서 둘 중하나는 따라 왔을 때도 사실 많다. 바람을 피고 있거나 사고를 쳐 놓았거나 하는 것의 입막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럴 수 있다 정도로 밖에 말해줄 수 없다. 물론 빨리 정리하란 뉘앙스를 섞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사실 양반이다. 그래도 이 둘은 결혼은 해봤으니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결혼할 사람 사주를 들고 와서 묻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문제가 불거질 것 같은, 그 문제란게 폭력성이 있거나, 사기성이 있거나 하는 사람일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이 때리거나 사기를 칠지 모르니깐 헤어져라고 해줘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특히나 사랑에 빠져 결혼할 꿈에 부풀어 웬만한 결함은 안고 가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건 아무리 막 다 말해주는 나라도 참 망설여질 때가 많다.

 

엄마와 딸이 상담을 올 때도 머리아픈 경우가 많다. 부모라도 다 큰 자식의 삶을 모두 아는게 아니고 자식도 부모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도 서로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부분이 상담을 하다보면 튀어 나온다. 그때의 난감한 분위기란 참...

 

이런 문제도 있다. 좋은 말만 해줬다고 생각할 때다. 분명 안좋은 점, 그걸 극복하는 방법, 극복하지 못할 때 추락할 가능성 등을 말해줬음에도 좋은 말만 해주신 것 같아서 고맙다고 할 때 막막해진다. 이 사람이 과연 필자가 시킨 대로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시간이 길어진다.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 실천할 의지는 있는지가 염려되서다.

 

이것 때문에 실력이 형편없다거나 속았다고 욕을 들을 때도 있다. 지금까진 괜찮은 운을 살아왔는데 앞으로의 운이 하락할 가능성이 아주 큰 사람에게 계속해서 나쁘다고 말하면 계속 최악의 선택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나쁘지만 이렇게 조정하고 저렇게 행동하고 하면 그래도 괜찮게 갈 것이다라고 하다보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 들리기도 하고 논리가 상실된 형태의 통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고 포기할게 뻔한 사람이라면 내가 욕듣고 만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다 말해드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본 당신들 미래가 실제는 달라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다름은 훨씬 좋아질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순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물어물어 나한테까지 찾아오신 노력은 나의 조언을 따를 준비가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은 자신과 같은 시간에 태어나 똑같은 사주를 가진 다른 50명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고, 같은 운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항상 최악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런 부분만 골라서 보인다. 그래서 그 최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뭔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순환이고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진 않지만 헤메이게는 만든다. 그 헤메이는 과정을 줄이기 위해 생각도 해야하고, 독서도 해야하고, 사회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공부도 해야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질 못하다. 필자는 사주보다는 이러한 인생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그리고 필자가 한 이러한 공부의 결실을 여러분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사주를 봐드린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헤쳐가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