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대하는 자세

대표님 저서 2026. 7. 19. 09:23 Posted by 인컨설팅

다음 주부터 동양과 서양의 고전이 출판되기 시작할 예정이다.

 

단순 번역서부터

직역하고 해석하는 강해서와

직역하고 의역하고 해설하는 주해서의 방식으로

내용과 필요성에 따라 쓰여졌다.

 

30대에 다양한 책 관련 강의를 했을 때 

강의를 위해 써여진 교안이 책으로 출판된다고 보시는 될 듯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같은 강의를 두번한 적은 없어서

교안을 만든다고 바빴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지금의 원고 초안이 될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유는 책을 좀 많이 읽어본 경험으로

고전이 그렇게 읽어야 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이 들어서다.

그래서 필자는 고전을 풀로 다 읽을 게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읽을 것을 권한 적도 있었다.

굳이 왜, 그걸 다.. 읽기도 힘든 것을..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드는 생각은

그런 생각은 많이 읽은 자의 오만이었다.

오만권은 아니고 2만권을 읽은 필자가 느끼기에

고전 아니라도 최근에 출판된 책이 충분하거나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느낀 건

이미 고전이라는 베이스가 있어서였던 거다.

그리고 고전이 가지는 아우라는 가볍거나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필수적이 핵심적인 것들이 그런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분명한 역할을 한다.

현대어로 어떻게 살지마라라고 말하면 또 그 소리..라며 지겨워 할텐데,

고전에서 어떻게 살지마라는... 그러다가 골로 간다. 이 책이 쓰여지기 이전부터..가 되니깐

똑같이 지겹더라도 그건 진리가 되어 버리니 안 따르기가 너무 찝찝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말을 책에서 읽어도 고전이 주는 무게가 훨씬 강하니 흡입과 실천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래 글은 1740년대 영국의 고위관료였던 체스터필드 백작이 여행 중인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서 출판된 책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다. 영국에서는 기초 교양서로 불리는 유명한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고전에 대한 자세와 처세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다양한 동서양의 고전을 전해드리려는 필자의 자세도 이와 같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전한다. 

 

 

LETTER 30


BATH, October 9, O. S. 1746

사랑하는 아들에게.

모든 탁월함과 모든 미덕에는 그와 이웃한 악덕이나 약점이 있어서,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그중 하나로 가라앉고 만다. 관대함은 흔히 낭비로 흐르고, 검약은 인색으로, 용기는 만용으로, 신중함은 소심함으로 흐른다. 그러니 나는 우리의 악덕과 반대되는 것을 피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우리의 미덕을 제대로 다스리는 데 더 큰 분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악덕은 제 참모습으로 보면 너무나 흉해서 첫눈에 우리를 놀라게 하며, 처음부터 어떤 미덕의 가면을 쓰지 않았다면 결코 우리를 유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덕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첫눈에 우리를 매혹하고, 알아갈수록 점점 더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다른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이 지나칠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 훌륭한 원인이 낳는 결과를 조절하고 인도할 분별이 필요해진다. 지금 나는 이 논리를 어떤 특정한 미덕이 아니라, 분별의 부족으로 인해 흔히 우스꽝스럽고 비난받을 결과의 원인이 되는 어떤 탁월함에 적용하고자 한다. 바로 큰 학식이다. 이는 건전한 분별을 동반하지 않으면 흔히 우리를 오류와 오만, 현학으로 이끈다. 나는 네가 이 탁월함을 최대한으로 갖추면서도 그 흔한 결점은 없기를 바라니, 내 경험이 줄 수 있는 힌트가 아마 네게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학식 있는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며 오직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만 말하고, 항소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다. 그 결과는, 그 모욕에 격분하고 그 억압에 상처 입은 인류가 반발하여, 그 폭정을 떨쳐내기 위해 정당한 권위마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겸손이야말로 네 허영심을 채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확신이 있을 때조차 오히려 의심스러운 듯이 보여라. 진술하되 단언하지 마라. 남을 설득하고 싶다면, 너 자신도 설득에 열려 있는 듯이 보여라.

다른 이들은 자기 학식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흔히 학교 교육에서 그런 것 말고는 들은 것이 없다는 편견에서, 언제나 고대인들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근대인들을 그보다 못한 존재로 이야기한다. 이들은 늘 주머니에 고전 한두 권을 넣고 다니며, 옛사람들의 훌륭한 분별을 고수하고, 근대의 하찮은 것들은 결코 읽지 않으며, 지난 천칠백 년 동안 어떤 예술이나 학문에서도 진보가 없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 나는 결코 네가 고대인들과의 친분을 부인하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과의 배타적인 친밀함을 자랑하기를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근대인들에 대해서는 경멸 없이, 고대인들에 대해서는 우상화 없이 말하라. 그들 모두를 그 시대가 아니라 그 가치로 판단하라. 그리고 혹시 엘제비르판 고전을 주머니에 지니고 있더라도 그것을 보여주지도, 언급하지도 마라.

일부 위대한 학자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공적이든 사적이든 삶의 모든 격언을 이른바 고대 저자들 속의 "유사한 사례"에서 이끌어낸다. 첫째로 천지창조 이래로 정확히 똑같은 두 사례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 둘째로 어떤 역사가도 그 모든 정황을 낱낱이 알고 서술한 사례란 결코 없었다는 것... 그러나 추론의 근거로 삼으려면 바로 그 모든 정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사례 자체와 그에 딸린 여러 정황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라. 다만 고대 시인이나 역사가의 권위를 근거로 삼지는 마라. 원한다면 겉보기에 유사해 보이는 사례들을 고려해도 좋으나, 그것을 오직 도움으로만 삼을 뿐 안내자로 삼지는 마라. 우리는 실로 우리의 교육에 의해 너무나 편견에 사로잡혀서, 고대인들이 자신들의 영웅을 신격화했듯이 우리는 그들의 광인들을 신격화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고대에 대한 모든 마땅한 존중을 담아, 레오니다스와 쿠르티우스야말로 두드러진 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느 견실한 현학자는 파운드당 이 펜스짜리 세금에 관한 의회 연설에서, 우리가 조국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고 견뎌야 할 일의 본보기로 이 두 영웅을 인용할 것이다. 나는 무분별한 학식을 지닌 이들이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것을 보아왔기에, 만약 갈리아인들과 전쟁 중일 때 그들 중 누군가가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어떤 거위들 덕분에 로마가 "유사한 사례"에서 무한한 이득을 보았다는 이유로 탑에 거위 몇 마리를 길러야 한다고 제안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추론과 이런 식의 화법은 언제나 형편없는 정치가와 유치한 웅변가를 만들어낼 뿐이다.

또 다른 종류의 학식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덜 독단적이고 덜 거만하지만 그렇다고 덜 주제넘지도 않다. 이들은 여성들과의 대화조차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절묘한 인용으로 꾸미는, 이른바 수다스럽고 화려한 현학자들이다. 이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저자들과 어찌나 친밀해졌는지, 마치 친분을 나타내는 별명이나 애칭으로 그들을 부른다. "늙은" 호메로스라거나, "교활한 녀석" 호라티우스라거나, 베르길리우스 대신 "마로"라거나, 오비디우스 대신 "나소"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것들은 전혀 학식이 없는 멋쟁이들에게도 흔히 모방되는데, 이들은 몇몇 이름과 고대 저자의 몇몇 토막글을 외워서 학자로 통하기를 바라며 아무 자리에서나 부적절하고 주제넘게 늘어놓는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현학이라는 비난을,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하다는 의심을 피하고 싶다면 학식을 과시하는 것을 삼가라. 함께 있는 자리의 언어로 말하되, 순수하게, 다른 것으로 억지로 꾸미지 말고 말하라. 함께 있는 이들보다 결코 더 지혜롭거나 더 유식해 보이려 하지 마라. 네 학식을 마치 회중시계처럼 은밀한 주머니에 간직하라. 그것을 꺼내 시간을 알리며 그저 시계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지 마라. 몇 시냐고 물으면 알려주되, 야경꾼처럼 묻지도 않았는데 매시간 알리지는 마라.

전체적으로 기억해다오. 학식(내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학문이다)은 갖추지 못하면 부끄러운, 매우 유용하고 필요한 장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언급한 이 오류와 남용 - 너무나 흔히 그것에 따라붙는 - 은 극히 조심스럽게 피해라. 또한 기억하라, 위대한 근대의 지식이야말로 고대의 지식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을. 유럽의 옛 상태보다 지금의 상태를 완벽히 아는 편이 더 낫다. 물론 나는 네가 둘 다 잘 알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방금 신력 17일자 네 편지를 받았다. 지금 네 생활 방식에 큰 다양함이 없다고 고백하기는 하나, 편지 쓸 소재가 부족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매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읽을 테니, 그것에 대한 간략한 서술과 네 자신의 생각을 곁들이면 훌륭한 편지가 될 것이다. 다만 네가 주제를 원한다니, 독일의 루터파 체제, 그들의 교리, 교회 정치, 성직자의 생계와 권위와 직함에 대해 알려다오.

『비토리오 시리』 전집은 이곳에서 매우 희귀하고 매우 비싼 책이지만 나는 필요 없다. 만약 네 서고가 너무 방대해지면, 라이프치히를 떠날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을 떠날 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모든 책을 함부르크를 거쳐 영국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만.

어떤 사주로 어떤 일은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건 틀린 말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식신 상관의 일, 편재 정재의 일, 편관 정관의 일, 편인 정인의  일로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사주팔자가 한 인자에 종從한다고 해도 대운의  흐름이나 세운의 흐름에서 다른 일자의 일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종 하지  않는다면 팔자 내에 강한 인자의 일을 먼저 하다가 운과 팔자 각 인자 간 합충형의  작용에 따라 일의 방식을 바꾸거나 전혀 다른  일을 된다. 그래서 사주에서 강한 한 가지 그 일만 할 것인가? 내 사주와 내 운의  흐름에 맞는 일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어떤 분야에든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란 의미와 굳이 하던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보단 하던 일에서 나에게  더 잘 맞는 분야를 찾으란 의미가 그것이다. 한 분야를 파고 들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 분야의 전반을 다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 분야 하나를 잘하면 다른 일들도 다 잘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요령이 생기니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맞다는 말이다. 요령이 생기는 이유도 사주에 맞아서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주라도 못할 일은 없다고 하면서.. 자기가 10여 년 고시를 공부했는데 합격하지 못한 걸 사주만 보고 알면서는.. 당신은 절대 합격이 안 되는 사주다..라고 말한 걸 들은 분들이 꽤 되기 때문이다. 못할 일이 없다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필자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일까? 아니다. 공부.. 특히 고시공부는 일이 아니다. 돈 버는 일과 직장생활은 재관財官의 문제이고 공부, 고시공부는  인印의 문제이다. 이걸 생각해보면 필자가 한 말은 어떤 사주라도 그 사주의 방식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지 어떤 공부든 해서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재財와 관官은 돈과 명예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주는 인자다. 그러므로 사주구성과 상관없이 재관은 누구나 무엇이나 추구할 수 있지만 어떤 사주가 어떤 공부를 할 수 있다  없다는 인의 문제는 사주구성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기에 안 되는 공부는 아무리 붙잡고 있어봐야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반문을 할 수 있다. 그 공부가 관官을 추구하거나 재財를 추구하는 건데? 그럼 이  공부도 인印이 아니고 재財, 관官인 거 아냐? 하는... 이제는  없어진 사법고시를 예로 들면... 열심히 몇 년을 공부해서 합격을 한다 해도.. 최소 몇 년은 실제 판검사든 변호사를 위한 실무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합격 후에 하는 공부는 재財, 관官일 수 있지만.. 사법고시는 자체는 인印인 것이다. 대입 수능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아무리 배워봐야 대학 가면 새로  배우고 사회에 나가면 또 새로 배운다. 사회 나가서 수학공식 쓸 일이 거의 없지 않나? 그러니 그 공부는 재財, 관官이 아닌 그냥 인印인 것이다.   

 

필자가 사주를 보다 보면  특정 직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주로 그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이 분들은 때로는 독보적인 일처리로 그 분야에서 1인자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기존의 특정 사주 인자들이 그 일을 하는 방식으로는 일을 배우기  힘들어서 자신의 사주에 맞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낸 분들이다. 그래서 이 분들이 일하는 걸 보면 그 방법이 더 효율적이고 더 나은 것 같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들은 그 방식으로는 그 일을 하지 못한다. 실예로 이런 분이 달인이나 장인으로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는데 일반인들은 그걸 보는 것 자체로는 신기하고 즐겁지만 막상 한번 해보라고 하면 보면서도 따라 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주에 할 수 있는 일이 나와 있다는 건 인류가 탄생하고 사회가 구성된 후에 생겨난 직업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주 구성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에 대한 통계의 결과이다. 하지만 그 일에 맞지 않는 사주 구성을 가진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면 자기 사주구성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게 기존의 방식보다 빠르고 정확할 때  달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고, 그게 기존의 방식보다 못하면 그냥 일 잘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내용은 외국의 심리학 이론이나 두뇌과학 이론에서 필자의 설명에서 '사주구성'이란 말을 '더 발달한 뇌'란 말로 바꾸면 거의 100% 맞아 들어간다. 의사는 MRI 찍어야 보이고 심리학자는 일정시간이상 상담과 관찰을 해야 보이고 명리학자는 생년월일시만 알면 보인다.. 이 말이 맞는 것이다.       

 

 

 

인컨설팅     이동헌     

사주명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세계는 동일한 패턴과 흐름 속에서 점차 변화해 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19세기에서 20세기는 지배, 피지배의 시대에서 평등의 시대가 온 것을 들 수 있고, 20세기에서 21세기는 명예의 시대에서 물질의 시대로 변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사주명리학에서 명예의 인자인 관官과 인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직업을 재財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빼앗기는 현상은 현대의 가장 큰 사회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 각종 통계결과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의사다. 그리고, 안정적인 신분이 보장된 직업들이 몇몇 있다. 봉사하면서 명예롭게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공무원과 군인, 경찰 등을 들 수 있고, 희생정신의 대명사인 교사나 간호사라는 직업도 있다. 실제로 이런 직업들은 명예를 추구하거나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할 직업으로, 그러한 사주를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런데 물질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최근 간호사들이 일이 힘들어서 퇴직 러시를 이룬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그 기사의 맥락은 정말 일이 너무 힘들어서 퇴직을 하려는 간호사들이 넘쳐나므로 근무여건을 개선하자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점을 예언한 적이 있다. 재財를 추구하는 사람이 의사가 되면 돈이 되는 전공에만 몰릴 것이고, 그런 사람이 간호사가 되면 희생적인 일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아니므로 견디지 못해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애초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인 간호사를 선택한 사람들은 아예 일을 하지 않거나, 좀더 편한 간호사관련직 공무원이 되려하거나, 일부는 더 공부해서 의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어찌어찌 견뎌내 간호사로 남아서 간부급이 된다해도 문제다. 남은 이들 대부분은 권위의 관官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아랫사람을 강하게 짓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명예의 상징 군인이라는 직업은 어떨까? 전세계에서 무기 수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쓰면서 맨날 북한에게 이기지 못한다는 어불성설을 쏟아내는 군장성들이 한 짓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군수비리다. 나라를 지켜야할 군인들 역시 명예와 봉사인자인 관官을 가진 사람이 아닌 재財를 강하게 쓰는 사람들이 점령함으로서 중국같았으면 바로 사형을 당할 군수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뻔뻔스럽게 생계형이라는 안하무인의 핑게를 대는 것이다.

 

재財를 추구하는 의사들이 돈되는 전공에만 몰리거나 환자가 많은 도심에만 몰려서 지역의료기반이 무너지는 건 그래도 양반인 상황이다. 이 모든게 물질이 가장 중요한 현시대에 일어 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인 것이다. 위의 현실을 보면 과연 현시대에 자신의 사주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현대사회가 물질 중심적으로 변해버려서 돈이 되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게 되었고, 돈이 되지 않는 직업은 천시를 받으며, 돈이 되는 직업은 서로 갖기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므로 해서,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미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자식이 돈이 되는 직업을 갖게되는 현상인 '부의 세습'이 직업적인 부분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처럼 임금수준이 OECD 최저인 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아니면 혼자 벌어서 공부해 직업을 갖기엔 역부족이므로, 부모의 재산이 자식의 사회적 계급을 세습하는 나라로 급격하게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느끼는게 있을 것이다. 방법은 없다! ... 아니다 방법이 있다. 개인 상담을 하다보면 머리가 깨어 있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난다. '대학이 뭐 필요해!'를 외치는 부모님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수능공부대신 9급 공무원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도 계시고, 배우고 싶다는 분야를 학교공부와 상관없이 시키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학이라는 게 부족했을 때 대학생이란 말을 듣고 싶었던 베이비부머 부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대학을 우후죽순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대학은 고등학교교육 만큼 의무교육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학이 부족했을 때보다 대학이 많아진 지금이 명문대를 향한 열망은 더 강해졌고, 듣보잡, 지잡대라는 대학서열화는 더 심해져 버렸다. 그런 현실에서 어차피 누구나 가는 대학이라면 가지 않고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군사정권은 전 국민이 한가지 색 옷을 입기를 원하고, 한가지 생각만 갖기를 원하고, 정부가 거짓말을 해도 다 믿고 따르기를 원했다. 그래서 대학 많이 만들테니 다 가라고 했을 때, 아 무조건 가야하는가 보다 한 것이다. 이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방법은 자신의 아이가 원하는게 있으면 그걸 하도록 밀어주어, 의미없는 경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미 그 방법을 선택해 성공자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게 눈에 보인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을 다녀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의 공통점이 하나있다. 어떤 공통점이냐 하면,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게 있고 목표가 확실한 아이들은 이미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청소년기부터 그것을 하고 있다. 외국처럼 우리 정부나 사회가 그렇게 변하기를 기다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무모하다. 그냥 자신이 변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우물 안에서 그렇게 세뇌된 개구리들이랑 동그란 하늘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았음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아이를 이 대입 레이스에서 이탈하게 한다면, 그 아이들은 수 많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사주는 한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원하는 그 목표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돈을 벌 수 있고, 지속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역할이다.

 

사람들이 와서는 무조건 묻는 게 있다. 돈을 벌겠는지, 얼마나 벌겠는지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못벌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왜 묻겠는가? 그런데 그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선 돈을 원하는 만큼 버는게 대부분 불가능하다. 자신은 더 달리고 싶으나, 돈을 더 벌고 싶어나 모든 사람이 달리는 레이스 속에 끼여서 달리는 지라 여러 명을 추월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레이스를 밀려서 달릴 만큼의 돈만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변하세요. 그 레이스에서 빠져 나오세요. 그럼 버실 겁니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사주로 대학가기, 가능할까?

컨설팅사례보고 2014. 11. 20. 09:09 Posted by 인컨설팅

수시가 활발하지 않았던 예전엔 수능을 치고 나면 전화통에 불이 났었다. 어떤 대학, 어떤 과를 지망해야 할지? 아니면 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사주에 제일 잘맞는 대학과 과는 무엇인지를 묻기 위해서 였다. 필자가 예전엔 일반 철학관처럼 개인고객을 받은적은 없지만 거래처 임원의 자녀나 지인의 자녀들이 입시생인 경우가 많아 연례행사처럼 대학과 학과를 파악하곤 했었다. 요즘은 수시란게 생기고 정시모집만큼 수시모집에 지원하는 비율도 높아서 1년 내내 이런 의뢰가 들어온다. 그리고 아예 고등학교 입학예정인 중학생의 진로에 대해서도 많이들 물어온다.

 

이렇게 자기들이 물어오면서도 그들의 대부분이 가지는 의문이 몇가지 있다. 과연 학생의 사주를 봐서 그 학생이 갈 대학이나 과를 택할 수 있을까? 가고 싶은 과와 실제 가는 과가 다른 것도 사주적인 이유가 있는가? 성적이 모자란데도 사주를 통해 입학이 가능할까? 등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모두 Yes 다.

 

과연 학생의 사주를 봐서 그 학생이 갈 대학이나 과를 택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부터 해나가보자. 다른 글에서도 많이 말했지만 사주는 말그대로 그 사람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고 나타내주는 인생의 지표이다. 자기 팔자대로 산다는 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누구 입에서나 튀어나올만큼 경험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증명된 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전공하는 과와 가는 대학은 사주팔자 여덟자 중 년(年)과 월(月)에 속하는 네 글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 네 글자 플러스 일(日)과 시(時)의 네글자를 조합해서 사회생활 즉 돈벌어 먹고 사는 행태를 결정 짓게 된다. 그러므로 년월과 일시가 전혀 다른 글자의 구성(오행, 五行)이라면 공부한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먹고 살게 되고 비슷하다면 전공과 비슷한 일을 하고 먹고 살게 된다.

 

다음 의문은 가고 싶은 과와 실제 가는 과가 다른 것도 사주적인 이유가 있는가? 이다. 이건 년월 네자의 구성 중 천간이라 불리는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10 글자와 지지라 불리우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12 글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천간은 주로 생각과 이상을 나타내고 지지는 현실 생활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가고 싶은 과는 천간의 글자가 지배하고 실제 가게 되는 과는 지지의 글자가 지배하는데 천간의 글자와 지지의 글자가 전혀 다른 오행에 속할 경우나 상극을 이룰 경우(괴롭히는 글자가 올 경우)에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은데 직업환경은 권위적이라 만족을 못한다든지 그 반대의 경우 일 때 취업 후 오래 붙어 있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권위적인 환경을 너무 동경해 엉뚱하게도 폭력집단이나 그와 비슷한 정치집단에 들어가서 말종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바로 이 의문인데, 성적이 모자란데도 사주를 통해 입학이 가능할까? 가 그것이다. 사주구성 중 특히 지지구성에서 골치아픈 몇가지 구성이 있다. 사주용어로 격각과 원진, 파, 해라는 것이 그것인데. 격각은 일이 아주 골치아픈 과정을 거치면서 겨우겨우 해결되거나 파토나는 것이고 원진은 꼭 누군가 방해하는 것처럼 일이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파와 해란 것은 방해인자로 일의 진행을 삐끗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골치아픈 구성들이 사주 내에 있다면 살아가면서 평생 그 영향을 받고 살게 된다. 자기 삶에 풍파가 많다고 여겨지면 이 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맞다. 그리고 이 인자들은 10년을 지배하는 대운이나 매년 돌아오는 년운에서 와도 영향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주에 이러한 방해인자가 없어도 인생이 삐걱거리는 이유는 운에서도 오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사주 구성 내에 극하는 인자로 인해 비슷한 과정을 겪기도 하는데 이렇게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떠남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다.

 

필자의 경우를 간단한 예로 들자면 필자는 중학교 3학년 때 요즈음 과학고 같은 특수고등학교에 진학을 권유 받았다. 과학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여러 과학경시대회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기우는 사정으로 일반계 고교에 진학하게 됐다. 대학입시 땐 서울 쪽 학교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엔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신 바람에 부산에 있는 대학을 지원했다. 그 후에도 벤처기업 운영 중 아주 큰 계약건이 있을 때, 아주 고가의 프리미엄을 가진 국제라이센스 시험을 칠 때, 요즈음은 뭔가 큰 사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아버지가 아프시거나 사고를 당하신다. 내가 하려는 일을 끝내 해내긴 했지만 제대로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그 시일이 늦어졌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아마 미래에도 그럴거라고 본다. 내 사주에는 해라고 부르는 일종의 방해인자가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적시적때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다른 어떤 이유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거나 원망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40년 넘게 이런 패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항상 아버지를 먼저 살피게 되거나 내가 달려가지 않아도 일이 해결될만한 정신적 인적 여건을 만들어 두고 일에 임하게 됐다. 그 준비도 항상 부족했지만 말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항상 막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람을 수 없이 봐 왔고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작용의 원인을 바로 그 사람의 사주에서 찾는다. 이 말은 문제가 내 안에 있는거지 그 가족에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어떤 자식은 나처럼 아버지에게 먼저 달려가지 않고 일 처리를 마친 뒤에 달려가기도 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행동한 나이지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다.

 

필자는 성적이 모라란데 가고 싶은 과가 있다고 말하면 단호하게 멀리서라도 찾아 그 과에 보내라고 말한다. 사주를 볼 필요도 없이 그렇게 답한다. 그건 부모가 자식을 멀리 때어놓고 싶지 않거나 다른 과를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일종의 집착인데, 그 집착이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대학생이면 이미 성인인데도 옆에 끼고 있고 싶다는 생각에 근처 대학에서만 자식이 원하는 전공을 찾고 성적이 안되거나 없으면 다른 전공을 선택하라고 하는 건 자식을 원해서라고 말하지만, 그건 집착일 뿐 자식 입장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방해 받는 것 이상은 아닌 것이다. 진짜 자식을 원하고 같이 살고 싶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자식이 갈 그 곳으로 이사가면 되는데 그렇게 할 생각은 없으면서 자식에게만 바꿀 것을 요구하는 건 자식을 위하는게 아닌 자신 만을 위하는 것이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성적이 모자란데도 사주를 통해 입학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사주 내의 간섭인자를 물리치고 멀리서라도 찾으면 대부분 있게 마련이고 의대처럼 성적자체가 안되는데 그래도 가고 싶다면 제3국으로 유학을 가면 된다. 사주에서 멀리 떠난다는 말의 뜻은 간섭인자를 뿌리친다는 뜻이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은 원래 독립된 존재이고 외로운 존재이다. 그 존재가 가족, 친인척, 학교, 지역, 공동체 등을 통해 엮이어 살아가며 사회적 동물이 된 것이다. 사주명리학은 그 사회적 동물이 된 인간을 생년월일시로 구분해 관찰한 통계학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 관계가 없는 먼곳이나 외국으로 간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다. 외국으로 이민가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주에선 그들의 삶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고들 말한다. 맞다. 필자는 이들 졸업생의 사주로 그들을 인생 끝까지를 예측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한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사주대로 살면 편할수도 있고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덕에 위로 받으면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좋고 나쁨의 등락이 있어 올라갈 땐 좋지만 내려올 땐 너무 고통스러워진다. 타에 의한 기쁨과 타에 의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사주대로 살지 않으면 고통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오고 기쁨또한 마찬가지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식을 포함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자.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가족을 포함한 남의 뜻을 위해 허비하지도 말자는 말이다.

 

이 말 역시 간섭으로 여겨져 미안해진다.

 

 

인컨설팅연구소   이  동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