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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6.06.29 같은 일을 두고 왜 기억이 서로 다른가

헤어질 결심

컨설팅사례보고 2026. 7. 10. 17:40 Posted by 인컨설팅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도,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는 의외로 드물다. 

 

다들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날지는 고민하면서, 
어떻게 나쁜 관계를 끝낼지는 잘 배우지 못한다. 

 

그런데 필자가 상담을 하며 절감한 건, 
사람을 가장 망가뜨리는 게 잘못된 만남보다 
'끝내야 할 관계를 못 끝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끝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관계에 질질 끌려다닌다. 
왜 그럴까? 끝내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쏟은 것이 아까워서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 참았는데", 
"들인 시간이 얼만데" 하며 못 떠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이미 쏟아부은 시간과 마음은 
떠나든 안 떠나든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돌아오지 않을 과거가 아까워서, 
돌아올 수도 있는 미래까지 같은 관계에 갈아 넣는다. 
밑 빠진 독에 이미 부은 물이 아까워서, 
남은 물까지 계속 붓는 격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지금 결정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쏟았나'가 아니라 
'지금부터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떨까'여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익숙함이다. 

 

사람은 익숙한 고통을 낯선 평온보다 편하게 느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아무리 힘든 관계라도 익숙해지면, 
그걸 끝내고 혼자가 되는 낯선 상태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람만 한 사람도 없다",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하며 또 주저앉는다. 

 

특히 앞에서 말한 혼자 있는 능력이 약한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잘 빠진다. 
혼자가 무서워서,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라도 붙잡고 있는 거다. 

 

그러니 헤어질 결심은 사실 
혼자서도 괜찮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나를 해치는 관계를 끊어 낼 수 있다.

 

그럼 어떤 관계를 끝내야 하나?
필자가 사람들을 보며 세운 기준은 단순하다.

 

첫째, 나를 위험하게 하는 관계. 몸이든 마음이든, 
폭력이 있는 관계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끝내야 한다. 
"변하겠다"는 말은 앞에서도 말했듯 말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행동으로 확인할 일이지, 매번 믿어 줄 일이 아니다. 

 

둘째, 함께 있을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고 망가지는 관계. 
좋은 관계는 함께할수록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나쁜 관계는 함께할수록 내가 자꾸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그 방향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다.

 

끝내는 일에도 태도가 있다. 
잘 헤어지는 것도 능력이다. 
미워하며 헤어지면 그 미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니 가능하면, 
상대를 악마로 만들지 않고 헤어지는 게 좋다.
"저 사람은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결론 내려야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미움을 연료로 떠나면 
그 미움이 다음 관계까지 오염시킨다.
"이 사람과 나는 여기까지였다, 서로 안 맞았을 뿐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건강한 마무리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잘 끝낸 사람이 다음을 잘 시작한다. 

 

그러니 끝내야 할 관계라면, 너무 늦지 않게, 
그러나 너무 모질지 않게 끝내는 법을 배워 두자.

 

 

이동헌이 전하는 대인관계에서  손해보지 않는 궁극의 처세 에세이

<적당한 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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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부부나 연인이 싸울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그때 네가 분명히 그랬잖아!"
"내가 언제? 네가 그랬지!"


분명히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이 겪은 일인데,
두 사람의 기억은 마치 서로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처럼 
어긋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필자가 단언컨대, 대개는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둘 다 진심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기억이 
애초에 서로 다르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여기서 '만들어졌다'는 표현을 잘 봐야 한다. 
사람들은 기억을 녹화 테이프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해 둔 영상을 
그대로 꺼내 본다고 믿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새로 조립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어떤 일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을 그 자리에서 
다시 짜 맞추는 작업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짜 맞추는 과정에 지금의 감정, 
그동안 쌓인 해석, 듣고 싶은 결론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러니 같은 대화를 두고도, 
서운했던 사람은 상대의 날 선 말투를 중심으로 기억을 짜고,
억울했던 사람은 자기가 참았던 순간을 중심으로 
기억을 짠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점점 더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기억은 처음부터 빈틈투성이다.
우리는 겪은 일을 다 담아 두지 못한다.
띄엄띄엄 남은 조각들 사이의 빈 곳을 
나중에 그럴듯한 내용으로 메운다. 

 

이 메우는 작업이 워낙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우리는 실제로 겪은 부분과 
나중에 채워 넣은 부분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는 강한 확신은 
기억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아니게 된다. 

 

오히려 거꾸로일 때가 많다. 
여러 번 곱씹은 기억일수록 그만큼 
여러 번 다시 조립됐다는 뜻이니, 
강하게 확신하는 기억일수록 
원본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거다. 

 

이걸 알면 등골이 좀 서늘해진다.
우리가 그렇게 굳게 믿는 "그때 그랬잖아"가 사실은 
내가 여러 번 고쳐 쓴 이야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 나온다.

 

관계의 다툼에서 "누가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는가"를 
끝까지 가리는 일은 대개 의미가 없다는 거다. 
두 사람 다 자기 기억을 진실로 믿고 있고, 
그 믿음은 거짓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본래 성질에서 나온 거다. 

 

그러니 과거의 사실을 놓고 끝까지 다투는 건, 
서로 다른 카메라로 찍힌 두 영상을 들고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이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이건 누구나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영원히 결론이 안 나는 과거 어떤 장면의 이유다. 
그러니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고 끝장을 보려고 할수록 
둘 다 지치기만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권한다.
"그때 정확히 어땠는가"를 두고 다투지 말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로 
대화의 무게를 옮기라고 말이다. 

 

과거의 사실은 합의가 안 돼도, 지금의 감정은 나눌 수 있다.
"그때 네가 틀렸어"는 끝없는 싸움을 부르지만, 
"그 일로 나는 많이 서운했어, 
오해를 없었다면 달랐을 텐데.."는 대화의 시작이 된다. 

 

같은 자리를 다른 카메라로 찍었다는 걸 
둘 다 인정하는 순간, 
두 개의 어긋난 기억은 싸움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바뀐다. 

 

기억은 못 맞춰도 마음은 맞출 수 있다는 것, 
이걸 아는 부부는 늙어서도 사이가 좋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적당한 거리> 는 2026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