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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14:53 장자가 말하는 앎이란?

장자가 말하는 앎이란?

대표님 저서 2026. 7. 23. 17:14 Posted by 인컨설팅

천수를 다하고 중도에 요절하지 않는 앎

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是知之盛也。
종기천년, 이부중도요자, 시지지성야.
그 천수를 다하고 길 중간에서 요절하지 않는 것, 
이것이 앎의 성대함이다.

 

장자는 앎의 성대함을 아주 독특하게 말한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다. 

이름난 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終其天年', 자기에게 주어진 천수를 다하는 것. 

'不中道夭', 길 중간에서 요절하지 않는 것. 

이것이 앎의 성대함이다.


여기서 요절은 단순히 젊어서 죽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명의 길이 중간에서 끊기는 모든 방식이다. 

몸을 함부로 써서 망가뜨리는 것, 

감정으로 자기를 태우는 것, 

욕망 때문에 삶의 리듬을 잃는 것, 

지식과 명예를 좇다 정기를 소모하는 것, 

하늘의 일을 억지로 바꾸려다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 

이것이 모두 중도에 꺾이는 일이다.

 

장자에게 앎은 양생과 분리되지 않는다. 

진짜 앎은 몸을 살린다. 

삶의 결을 보게 하고, 무리하지 않게 하며, 

해칠 것을 피하게 하고, 때를 알게 한다. 

 

반대로 가짜 앎은 사람을 소모시킨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따지고 더 많이 이기지만,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이 점에서 대종사는 양생주와 깊이 이어진다. 

포정은 칼을 오래 보전했다. 

그는 소의 결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종사의 사람은 자기 천수를 보전한다. 

그는 하늘과 사람의 결을 알기 때문이다. 

결을 모르면 칼이 상하고, 

결을 모르면 몸이 상한다.


'知之盛', 앎의 성대함은 생명을 보전하는 데 있다. 

이 말은 현대 지식 사회에 매우 날카롭다. 

우리는 앎을 성과, 논문, 말솜씨, 콘텐츠, 정보량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장자는 묻는다. 

그 앎이 너를 살리는가? 

그 앎이 네 천수를 다하게 하는가? 

아니면 네 정신을 밖으로 내몰고 정기를 수고롭게 하는가?

 

덕충부 마지막의 혜자를 떠올려 보자. 

그는 견백으로 울었다. 

지식은 있었지만, 그 지식이 몸을 보전하지 못했다. 

 

대종사는 그 다음 편으로서 말한다. 

진짜 앎은 생명을 중도에 꺾지 않는다.


여기서 장자는 앎의 기준을 바꾼다. 

앎이 참된가를 판단하려면 

그 앎이 사람을 살리는지 보아야 한다. 

그 앎이 몸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몸의 때를 알게 하는가? 

그 앎이 관계를 더 날카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관계의 결을 보게 하는가?

그 앎이 나를 더 오만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모르는 것 앞에서 더 조심하게 만드는가?


천수를 다한다는 말도 단순한 장수를 뜻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길을 중간에서 스스로 꺾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망으로 꺾지 않고, 

분노로 꺾지 않고, 

과로로 꺾지 않고, 

이름을 좇는 조급함으로 꺾지 않는다. 

앎이 깊으면 삶은 더 오래 버틴다. 

꼭 생물학적 수명만이 아니라, 

마음의 지속력과 관계의 지속력과 일의 지속력이 길어진다.

 

 

이동헌 대표님의 근간 <장자 강의 2>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