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개인상담을 할 때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는 한 번도 안 해봤죠?’

 

? 다른데서 사주보면 연애 많이 하는 사주라던데요.’

 

아니.. 다른데서 뭐라는 게 뭐가 중요해요. 연애한건 본인이 가장 잘 알 텐데... 그럼 연애 많이 해봤어요?’

 

.. 아니요. 전혀요. 전 다른데서 연애 많이 하는 사주라는데, 전 한 번도 안 해봐서 제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ㅎㅎ. 그게 무슨 말이 예요. 본인이 연애 안 해봤는데 연애 많이 하는 사주라고 말했음.. 말한 사람이 틀린 거지.’

 

가는데 마다 그러니깐.. 전 제가 잘못된 거라...’

 

그럼, 다른데서 그걸 개선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연애 많이 하는 사주인데 연애를 많이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면 많이 할 수 있다던가?’

 

아니요,’

 

본인 사주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명리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너무 바빠요. 를 강하게 쓰는 거죠. 일하다보면 남자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는 거예요.’

 

. 맞아요. 일이 너무 바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때문에 너무 게을러요. 남자한테 연락와도 답하기 너무 귀찮은 거죠.’

 

.. 맞아요. 너무 필요할 것 같은데 막상 소개팅하거나 썸탄다 싶으면 너무 귀찮아요.’

 

근데 본인사주와 정말 비슷한데 정말 연애를 많이 하거나 한번 만나면 오래가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어요.’

 

그래요?’

 

그런 사람들은 전제조건이 필요해요. 일단 남자가 많은 학교를 나오고, 또 그런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그리고 친구들이 다들 연애하고 있어야 해요.’

 

.. 전 전혀 아니네요.’

 

그렇죠. 여대 나오고 현재 직장도 여성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고, 그러니 친구들도 비슷한 친구들만 있을 것이고..’

 

맞아요. 제 친구들도 다 모쏠...’

 

똑같은 사주인데 전혀 다르게 사는 이유는 환경에 있다. 필자는 이분이 이대 나온 여자에 패션회사를 다닌다는 걸 듣고 바로 연애 경험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분이 공대를 나와서 정유회사를 다녔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도 똑같은 사주인데 그런 케이스의 사례를 가지고 있고, 그땐 연애는 수도 없이 했겠네요? 라고 물었었다.

 

바쁨과 귀찮음이 공존하는 사주.. 인간의 바쁨은 주로 돈 벌 때와 봉사할 때 나온다. 그러니 일할 때와 사람 챙길 때 나오는 것이다. 근데 일한다고 바쁘면 다른 건 다 귀찮게 된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서 드러누워 있을 때.. 이 분 같은 사주는 남자에게 연락 오면 피곤해서 안 된다고 하고는 회사에서 연락 오면 바로 일하러 튀어나간다.

 

그러니.. 지금까지 사주 보러 이상한데만 가신 거예요.’

 

사주명리학이란 학문은 분명하나이다. 그런데 영어처럼 사주를 가르치거나 활용하는 방법은 무한할 수 있다. 문제는 영어의 경우.. 영어를 쓰는 원어민과 대화를 잘하거나 토익, 토플 문제를 잘 풀면 잘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사주는 그렇지 않다. 철학관이라고 간판은 달고 장사는 하는데, 그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하나 걸려들어서 맞추기라도 한 걸 경험하면 맹신해서 한참을 자주 들락거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주를 제대로 보는 지 아는 방법은 단순하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을 사주로 알아내느냐를 보는 것이다. 현실은 다를 수도 있다. 불교를 좋아하지만 교회 다닐 수도 있고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지만 매일 스테이크만 먹고 살 수도 있다. 사주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를 말하는 걸 듣고 본인이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사주를 봐주는 사람이다. 본인은 자신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물론 100% 자신에 대해 착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봐주는 사람 입장에선 그런 사람 한명 즈음은 사주 안 봐줘도 상관없다. 실제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돌려보낸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 부분을 사주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사주를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공부가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사람은 사주대로 산다. 그러니 당신이 어떻게 살아도 사주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사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을 읽는 방식은 어떤 사주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판단을 하며 살고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이다..란 과정이 따르고 그 과정이 맞다면 그 미래는 이럴 것이다..란 예측이 가능해 진다.

 

사주가 안맞는 것 같아서 쇼핑하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주쇼핑하지 말고 위와 같이 읽는 사람을 찾아라.

그러면 여러분의 방황은 끝이 나고

여러분의 삶이 시작될 것이다.

 

 

인컨설팅    이 동 헌

 

 

공자의 제자가 서당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과 언쟁이 붙었다. 계절이 몇개냐고 물어서 네개라고 말하니 '틀렸다. 계절은 세개다.'라고 말하면서 공자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제자는 때마침 문을 나서든 공자에게 자신있게 '계절이 몇개입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는 제자와 같이 서 있던 사람을 쓱 보고는 '계절은 세개다. 3계절이다.'라고 답했다. 황당했던 제자는 나중에 공자에게 다시 물었다. '왜 사계절을 삼계절이라고 하셨습니까?'하고.. 그러자 공자가 답했다. '너와 같이 서 있던 사람은 베짱이였다. 온몸이 녹색인... 베짱이는 봄에 태어나 가을에 죽는다. 겨울을 겪어볼 수 없단 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 사람에계 계절은 삼계절 뿐이다. 겨울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겨울도 있다하고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리석고 시간낭비라고 공자는 말한다. 이거 맞는 말 아닌가? 이번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아프리카 선수 중엔 눈을 처음 본 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눈을 처음 본 모습을 찍은 사진에는 정말 경의로움을 맞이하면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에만 평생 살아 눈이란게 있다는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늘에서 얼음송이 같은 눈이 내린다고 말해주면..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주에 관이 없는 사람에게 관에 대해서 설명하면 황당해 한다. 재가 없는 사람에게 재의 행동을 설명해도 마찬가지고, 식상이 없는 사람에게 창작창조에 대해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인성이 없는 사람에게 참을성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게 사주에 없는 인자에 대한 설명이다. 사주팔자에 목화토금수가 골고루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루두루 평범하게 살아간다. 강한 인자가 있어 치우칠 수는 있지만 상식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오행이 빠져 있다면 그 없는 인자에 의한 결핍을 채우거나 무시하며 살아가게 된다. 대운에서 들어와 경험을 통해서 알기도 하지만 팔자에 없는건 없는 것이므로 그 없음을 읽어야 그 사람의 인생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 재상담이나 누군가의 소개로 예약하는 분을 주로 상담을 해드리는데.. 그런 까닭에 소개하신 분은 어떤 이야길 해줬다는데.. 왜 자신은 안해주냐는 분들이 계시다. 팔자에 없는 건 말씀드릴게 없는 것이다. 간혹 팔자에 있어도 살아오시는 과정에서 시기를 지나거나 놓치는 분들도 있다. 말씀 안드리는 이유를 설명드려도 또 다른 말로 묻는다. 또 설명해도 또 묻고.. 반복...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겨울이 없으니 1년이 3계절이라고 아는 것처럼...

 

여기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큰 문제점 하나가 돌출된다. 옛날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쓸 정보도 시간도 없었다. 겨우 장터나 나가야 누가 어떻다더라는 정보를 하나 얻어서 5일을 갖고 놀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다르다.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의 그 나라 사람도 가본적이 없는 곳까지 여행가는 세상이다. 흔히 상관성이나 강한 식신을 가진 사람이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주에 특정인자가 없는 사람도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한다. 결핍이 낳은 기적 같은거다. 이런건 순작용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인자나 사용하지 않는 인자를 가지고 왜 나는 그게 안될까? 그게 없을까? 그렇게 못살까?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특히나 부모가 자식을 보는 관점이 이렇다면 부모는 부모대로 애가타고 자식은 자식대로 미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평생 계절은 3계절이다 4계절이다..로 다툰다고 생각해봐라... 근데 그런 집안이 아주 많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 중 필수는 남을 인정하는 자세다.

'넌 그렇구나!'

이거 하나면 삶이 편해진다. 그리고... 또 하나 필요한 자세는...

'난 우물안 개구리구나!'

내가 아는게 다가 아니고, 내가 생각한게 처음이 아니고, 내가 한일이 새로운게 아니란 걸 항상 생각하고 확인한다면... 사는게 겸손해지고 편해진다.

그게 팔자대로 사는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도 그리산다. 만사를 신기해 하면서.. 처음 만날 때 신인류를 보는 것 처럼..ㅎ

 

 

인컨설팅 연구소   이동헌 

웬만해서는 은행에 가지 않는다. 통장도 모두 전자통장이다. 가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비효율적이라서 2000년대 초반부터 폰뱅킹, 모바일뱅킹, 인터넷뱅킹만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은행은 24시간 하는 곳도 많다. 어떻게 그게 되는지 배워오면 은행도 대박칠텐데... 어쨌든 1년에 한번 정도는 은행에 갈 일이 꼭 생긴다. 그래서 최대한 기다리는 시간이 없을 때나 안기다려도 되는 주거래 은행만 간다. 근데 최근에 다른 은행에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오래 기다린 끝에 좀 복잡한 업무를 맡겨야 되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은행창구에 앉았다. 은행원이 관상이 참 좋다. 복사하고 묻고하느라 서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체상의 격도 높다. 이마, 귀, 눈썹 등등 나무랄 때가 없다. 근데 대충 봐도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사람들보다 직급이 낮아 보인다. 이상하다. 왜 그렇지? 관상과 사주는 거의 같이 흐른다. 그러니 상이 저 정도면 사주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에 비해 직급이 낮다는 말은 사회적인 선택 상황에서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방황을 한 시절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뭐지? 왜지? 하는 의문의 시간이 잠시 흐른 후 이유를 찾았다.

 

필자는 성인의 이름은 개명해야 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말씀드린다. 실제로 평범한 사회인의 경우 이름을 개명한다고 운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정말 자신이 자기 이름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유명인의 이름이나 흉악범의 이름과 같아서 놀림 받는게 아니면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은행원은 정말 이름이 인생의 가로막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름을 바꾸면 인생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여성의 이름에 남성의 심볼을 뜻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이름은 처음 이름을 지을 때부터 잘못 지은 이름이다. 아마도 돌림자나 획수에 집착하는 사람이 지었거나 아무 생각없는 무능자가 지은 이름일거다. 이 사람은 이력서만 보는 서류전형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오해받거나 놀림받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지면 자신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경쟁대상에서 제외 당할 수 있는게 이름이다. 그래서 앞으로라도 잘 풀릴려면 이름을 바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는다. 남의 인생에 참견하는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런 참견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대놓고 이름을 바꾸라고 하면 사실 비웃기 밖에 더 하겠는가? 그래서 이런 분들은 자신이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때가 되지 않아서 운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을 위해 필자의 능력을 설명하고 바꾸라고 설명하는게 맞지 않냐고? 내가 날 뭐라고 설명해야 한번에 딱 알아듣겠나? 잘못 말했다간 딱 욕듣기 좋은 상황이 될거라 비디오처럼 그림이 펼처진다.^^

 

친한 지인 중에 자기 좀 잘살게 해달라고 볼 때마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시시 때때로 같이 밥먹고 술 마시면서 입이 아플만큼 말을 해준 것 같은데... 그래도 항상 자기한테만 신경 안쓴다고 불평을 말한다. 하긴 필자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 중에 재정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이유는 본인의 액션에 있다. 이 사람은 필자가 나서서 투자꺼리도 찾아주고, 안하려고 할 땐 억지로 투자도 하게하고 사업꺼리도 찾아서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도 주고 일도 시켜 달라고 말하지만... 필자가 그렇게 한다고 이 사람이 그걸 따르고 또 돈을 더 잘벌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돈을 벌든 못벌든 필자만 헛힘쓰고 또 딴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것 역시 남의 운명에 간섭하는 헛짓인 거다.

 

필자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위의 두 경우와는 좀 다르다. 일단 자신의 운명을 순방향으로 이끌 의지가 있는 분들이 부담되는 지출을 감수하고, 부담되는 거리지만 본인의 없는 시간을 할애 하면서까지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할 자세를 가지고 오신 분들에겐 가감없이 행동의 방향만 알려주면 되니 남의 운명에 간섭하는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간혹 움직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나 무당의 신점에 길들여진 분들이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서 필자를 찾는 경우가 있다. 이거 하라면 싫다. 저거 하라면 못한다. 또 다른건 어떠냐고 물으면 더 다른건 없나?... 말을 끌고 물가로 갈 순 있지만 물을 먹일 순 없다는 말이 있다. 때론 필자가 물을 먹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때가 있다. 조금만 잘 알아듣게 설명해주면 물을 먹을 것 같을 때이다. 그런데 그게 착각인 경우도 있다. 그런 분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필자는 그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싶었던 것이고 말이다.

 

필자도 이러한데... 여러분은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자. 물어보면 답은 해줘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해야 한다. 그 이후는 모두 헛짓이기 때문이다.

 

 

 

인컨설팅연구소    이동헌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심리학에서도 아무 생각없이 무의식 중에 한 행동도 그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는 행동의 패턴을 사주명리학적인 관점에서 읽음으로서 미래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를 예측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실제 나타난 현상을 관찰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맞아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사주를 업으로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아이의 사주를 보고는 '이 아이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다.'라고 예측을 하는 논리의 근거는 과거 그렇게 생긴 사주를 가진 사람이 그러한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이 아이도 그럴 것이다라는 경험론에 의하는 것이다. 최근엔 이런 걸 빅데이터이론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 경험론의 레어데이터인 과거의 직업과 현대의 직업은 종류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또 동종업종 내에서도 하는 일이 엄청나게 분화되어 있다. 사라진 직업도 많고 새로운 직업도 많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사주를 봐주는 사람이나 사주책이 그 경험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틀릴 가능성을 너무 높다.

 

먼저 직업을 분석해야 한다. 그 직업은 현대에 어떠한 일을 하며, 그 직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어떠한 능력이 필요하며, 어떤 선천적인 부분이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지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공부의 수준이나 방법, 과정 등과 가져야할 마음가짐, 시험, 경쟁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그러한 백데이터를 가진 후에 비로소 사주팔자 분석에 들어가야한다. 그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이 하는 생각, 행동, 성향, 이면 등등을 고려하고, 그 사람이 향후 그 사주팔자대로 살아가면 어떠한 직업이 가능할지, 무얼 고치거나 개선하면 또 다른 직업이 가능할지를 예측한 후에 분석된 직업들과 매칭을 해보고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주를 역으로 분석해서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비슷한 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하겠지만 완전히 반대라고 여겨지는 사주를 가진 사람이 같은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게 가능한 이유까지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명리학자가 제대로 직업을 봐줄려면 실제 사주를 보는 시간은 상담하는 잠깐이지만 그 백데이터와 정보는 평상시에 각종 언론과 학술지를 통해서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야 하여 다양한 인맥을 통해 실제 종사자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있어야 한다. 

 

사주명리학이론 이외에도 인문학을 통해 사주명리학의 해석을 완성시키는 것을 추명학이라고 하는데, 명리학자란 직업의 첫번째 필수조건은 박학다식과 유연성이며, 거기에 사주음양학이론과 사주명리학이론이 제대로 가미된다면 최고의 명리학자라 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에는 다음과 같은 기본이론이 있다. '남자는 재운에 결혼을 하고 여자는 관운에 결혼을 한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재운이 아닌 관운에 결혼을 했다면 대부분이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시켜서거나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즉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하게 흐르는 경우가 많다. 여자분 역시 관운에 결혼을 하는게 정상적인데 식신운에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놓기 위한 결혼이었으므로 육아에만 집중하고 남편과는 큰 인연없이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것이 기본이론이라면 언제라도 맞아야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럴까? 그것 역시 시대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 기본이론이 맞았을 때는 지금보다 결혼나이도 훨씬 빨랐고 평균연령도 낮았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 평균수명이었던 40대의 나이에 초혼을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경험의 동물인 인간은 처음 재운을 접했을 때, 처음 관운을 접했을 때와 두번째, 세번째 그 운을 접했을 때 분명히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 사주명리학의 기본이론은 현재로 보면 청소년기에 이미 적용되었어야 하는 이론이고, 현재 그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나 행동을 고려해서 다시 그 운을 접했을 때 나타날 미래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이런 수명연장으로 인한 현실이 사주명리학을 떠나서 인간 자체에게는 좋을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좋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필자는 상담을 할 때 조선시대라면 이 사주를 가진 사람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말을 듣는 분들의 나이는 대부분 40대 이후의 분들로 실제로 필자의 말을 듣고는 자신도 죽지못해 살았었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안좋은 운을 지난 사람에게는 이젠 좋은 운만 남아 있는 것을 자신도 필자도 알기에 웃으면서 그러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얼마 전 사법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밤새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소식을 들었고, 축하와 위로가 이어졌다. 필자가 해줬던 합격과 불합격의 예측이 다 맞아서 소식을 전해오고 축하와 위로를 해준건 아니다. 분명 틀리기도 했지만 그 틀린이유가 필자가 해준 말과 같았기에 그러함이 가능한 것이다. 합격한 이에겐 사법연수원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 조언해주었고, 불합격한 이에겐 내년에 한번 남은 시험까지 응시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에 대한 의견을 주었다. 판단은 본인들이 하지만 그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타고난 자신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아울러 생각할 수 있도록 반복되고 있는 자신의 틀을 알려준 것이다.

 

자신의 사주에 없는 일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은 그 경험을 평생 수치로 생각하거나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산다. 대부분 그러한 경험은 주로 가족, 배우자, 베프, 은사, 직장상사 등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낚였다는 말이 생겨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에서 평소 같았으면 작동하지 않았을 본인의 대운이나 세운이 동해버리기까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정말 지나면 내 일이 아니게 여겨지고 기억에서도 잊혀진다. 그래서 자신의 미래에 어떠한 작용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낚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냥 자신이 삶으로 돌아오시면 된다.

 

자신의 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사주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그건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정도다. 그 세부적인 움직임과 결과는 현상적으로도 다르고 느낌적으로도 다르다. 그러니 한번 살아보자.

 

 

인컨설팅역학연구소   이동헌

 

 

사주명리학의 가장 큰 전제는 태어나는 그 순간, 이미 그 사람이 살아갈 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람은 사주 생긴 그 모양대로 살아간다는 말이고,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4000년이상 반복되는 시간동안 동일한 사주로 살았던 사람들 삶의 형태를 통계함으로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 사주명리학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그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노력해서 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나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선행, 즉 덕(德)을 쌓아 바꿀 수 있는 후천운 같은 건 없냐는 의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니, 봉사나 기부같은 것도 모두 헛짓이냐고 반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주엔 사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금까지 다 정해져 있다고 했으면서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사주를 보러 오면 필자가 해드리는 말은 크게 네가지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지 않다. 사주팔자는 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나쁘다. 사주팔자는 안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좋다. 필자는 '사주명리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분들에게...1'에서 사주 여덟자 원국을 요트에 비유했고, 대운을 항로에 비유했다. 태어나는 순간 내 요트의 크기와 항로가 정해져 있는건 분명하지만, 아직 운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하철은 매일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구간을 운행하지만 타는 손님도 변하고 거기에 따른 이벤트적 요소들도 달리 나타난다. 기본 조건인 시작이 같다고 끝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그건 행동, 액션이라는 남과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가속도라는 요소다. 

 

같은 자연과학이라고 해도 수학, 화학과 다르게 물리학을 현실적인 학문이라고 하고, 같은 비즈니스 학문이라고 해도 경영학, 회계학과 달리 경제학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이유는 가속도를 다루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의 두뇌는 사고하면서 신체적 숙달과 메모리를 동시에 수행한다. 동일한 조건과 상태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순간순간의 판단과 움직임이 달라지면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오게 되는데, 그 결과만 다른 것이 아니라 두뇌에 누적되는 몸의 숙달과 메모리 양 역시 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몸의 숙달과 뇌에 메모리된 경험치는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할 때의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한번 해본 일을 다시하면 더 빨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간이 가지는 가속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가속도가 달라진다.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50명 정도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50명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삶을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학교성적도 다를 것이고, 전공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를 것이다. 낳는 아이의 성별이나 수도 다를 것이다. 사는 집의 가격도 다르고 위치도 다를 것이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 삶의 가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선택과 액션의 강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선택과 액션의 강도는 아동청소년기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고, 청장년기엔 직업과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만족도는 동일하다. 필자는 PC통신 모임이 활발하던 시절 같은 띠모임을 통해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들의 팀을 100여팀 만나본 적이 있다. 2명에서 9명까지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확신한 내용은 그 사람들이 가진 현실적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느끼는 만족도는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4명이 같은 시간 대에 태어난 팀이 있었는데, 금속을 다루는 스킬이 있는 일을 업으로 삼을 사주였다. 그 4명 하나하나의 직업은 치과의사, 샷시기술자, 새마을금고, 경리직원이었다. 치과의사와 샷시기술자는 금속을 다른다는 점에서, 새마을금고와 경리직원은 금속을 돈으로 바뀌 다룬다는 점에서 사주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4명 모두 직업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는 차는 벤츠, 그랜저, 매그너스, 마티즈였다. 버는 돈도 당연히 차이가 나고 타는 차도 차이가 나고 사는 집의 크기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물었을 때 이들은 거의 동일한 삶의 만족도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본인의 행동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가속도 때문에 삶의 모양은 달라지지만 삶의 만족도는 같은 것이다.

 

그럼 그런 더 잘살기 위한 노력말고 좋은 일을 많이해서 덕을 쌓으려는 노력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는 노력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또 종교생활을 독실하게 하는 것 역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주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으로 바꾸어 주는 건 없다고 말씀드려야 겠다. 그게 팩트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함으로서 본인의 삶의 자세가 바뀌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삶의 자세가 바뀌면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본인 삶을 좀 더 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내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속시키고 그 가속된 결과로 좋은 일을 더 많이하게 될거란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로 봉사와 기부는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봉사와 기부를 활발하게 하는 분들과 대화하면 그게 즐겁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봉사와 기부를 통해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신다. 이런 걸 평정심이라고 한다. 평정심...평정심이란 단어는 자기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다. 인간은 평정심을 가져야 제대로 판단도 하고, 제대로 공부도 할 수 있으며,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평정심을 얻기위해 다양한 교육도 받고 수련의 과정을 거친다. 종교인들이 하는 수련의 과정도 모두 이 평정심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봉사와 기부 같은 개인의 덕을 쌓는 행동 평정심을 준다. 이 말은 필자가 위에서 말한 봉사와 기부가 평정심을 갖기위한 별도의 수련과정이 없이도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될 것이란 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수 많은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과 유의미한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무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키지 못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많고, 유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킬 행동일 가능성이 많다. 인생의 격을 높이고 싶다면 유의미한 행동에 집중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다면 무의미한 행동에 집중하면 된다. 막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고 잘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던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란 얘기다. 그렇게 살아놓고는 내 팔자가 왜 이러냐는 얘기만 안하면 제대로 살다가는 것이다. 다 자기 선택이고 자기 탓이란 얘기다. 신세한탄은 지 얼굴에 침뱉기란 말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   동   헌

 

 

 

 

여자에게 관이란?

컨설팅사례보고 2015. 8. 4. 10:55 Posted by Eastlaw

조선시대는 유독 여자에게 혹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거지약이 있었고, 시집가서 3무라는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 살이를 9년 해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며느리 수칙도 있었다. 이런 제도나 말들은 지금에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요즘에도 이런 말을 하면서 딸이나 며느리를 교육시키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말이다. 실제로 조선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칠거지약을 따르는 여성은 사대부 양반 중에서도 정실이라 불리는 처음 결혼한 관계에서 태어난 여성 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30대 재벌 집안의 본처가 낳은 딸들 정도만이 칠거지약을 지키는 대상이었다고 보면 된다. 다르게 말하면 돈많고 관직까지 가진 집안끼리 시집장가 보낼 때 자기들끼리 지키는 규약이 칠거지약이었단 말이다. 그랬던 칠거지약이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사회진출이 어려워지자 여자의 사회진출을 막아 남자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엔 아들을 가진 시엄마들의 동참도 큰 몫을 했다. 실제로 한반도는 고조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자유연애사회였고 남녀평등 사회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의 풍습은 모두 일부 양반들만의 풍습이었다. 문자를 소유하고 사용하던 계층이 그들이었고, 문자화된 것들만 남아 있다보니 모든 사람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오역하게 된 것이다. 그 속에는 일제시대 어용역사학자것들이 식민통제수단으로서의 역사왜곡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방서원이나 개인에게 남겨진 옛 문헌들을 보면 조선시대 여성의 사회지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고 사회진출 또한 활발했다는 사례를 수 없이 접할 수 있다. 실 예로 조선시대엔 남편이 죽으면 평생수절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재혼을 했다. 그래서 재혼을 하지않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나라에서는 극히 보기드문 그러한 사례를 기념하기 위해 열녀문이란 것까지 만들어서 하사했다. 열녀가 흔했다면  왜 그걸 기념하고 포상했겠는가? 필자는 현대의 가장 고통스런 일제의 잔재는 여성통제라고 생각한다. 남녀 양쪽을 모두 통제하는 것보다 한쪽을 내부의 적으로 만들어 통제하는 괴략이 아직도 우리나라엔 여성에게 관을 강조하는 형태의 사회잔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주얘기를 하는 곳에 갑자기 웬 조선시대 얘기인가 할 것이다. 여성의 관官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사주에서 관官은 제약을 말한다. '하면 안되는 것, 눈치봐야 하는 것, 일 시키는 것, 그래서 피곤한 것, 자유가 없는 것, 고달픈 것'을 말한다. 물론 직장도 되고 관직도 되고 관청도 되고 국가도 되고 공무원도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키고 따르는게 포함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자에겐 관이 남편도 되고 애인도 된다.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였다. 많이 모여 살아도 가족 정도만 같이 거주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사회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관습이 생기게 됐고, 사회가 커지면서 법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또 관은 오지랖이다.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인자로 간섭인자다.

 

여자분들에게 이러한 관인자가 많으면 어떻게 될까?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관을 좋아한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서 관이 남자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여자는 음이기에 직접 움직이지 않고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런 이유로 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관을 더 잘 따르게 된다. 여자아이들이 말도 잘듣고 규칙도 잘지키고 유니폼도 좋아하고 하는 것들이 모두 관을 잘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은 성인이 되면 이제 피곤함이 되고 제약이 되고 제한이 된다. 관이 여자에게 남자라고 했지만 관이 많으면 아예 남자와 담을 쌓고 살게 된다. 그런 여성을 보면 집안에서 아버지나 오빠가 남자를 만나는 꼴을 못본다. 자기 또래보다 나이많은 사람들과 더 편해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만 비슷한 나이대와는 친하지 못하다. 남자들과는 잘 지내는데 같은 여자들과는 잘 못지내는 여자분들도 관이 많은 경우가 많다.

 

사주에서는 특정인자가 많으면 치우친 삶을 살게 된다. 관이 많은 사람은 말그대로 일이 많다. 항상 피곤하고 일에 찌들어 산다. 관 많은 여자분들이 남편과 같이 일을 하게 되면 말 그대로 하녀가 되어 버린다. 회사의 거의 모든 일처리를 도맡아서 하면서 종 취급을 받고 산다. 실제로 소규모 공단에 있는 공장들이나 개인병원들을 보면 사장이나 의사의 와이프가 사무나 경리 업무를 맡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의사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공장사장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잠시 결제하는 시간만 빼면 놀러다니느라 바쁜데 그들의 와이프들은 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다. 그게 관이 많은 여자들의 삶이다. 그래도 사장 와이프라고 겉은 있어 보이는 관의 모습을 취하지만 실상은 하녀취급받는 무급의 일많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관을 일로 쓰지않고 남자로만 쓰는 여자들도 있다. 이들의 삶은 항상 수많은 남자들과 함께 한다. 술집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남자들이 많이 찾는 분야에서 일하는 것도 많이 볼 수 있다. 기업의 비서나 은행의 VIP담당 여직원이 있다면 대부분 관이 많은 사람들이고 골프장 같은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똑같은 관이지만 누구에게 어떤 구조로 많으냐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고 천차만별의 삶을 산다. 당신의 사주에도 관이 많은가? 당신의 삶은 어느 쪽이었나?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든 관이 많은 분들은 자기의 삶보단 남의 삶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관이 많은 분들을 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삶을 즐기고 사시라는...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필자에게 사주를 보러 오는 분들 대부분 하는 말이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엔 참 어폐가 있다. 그 있는 그대로 란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현재 아닌가? 맞추어 보란 얘긴가? 그게 아니면 그들이 말해달라는 건 미래를 말하는 것인데, 살아보지도 못한 미래를 어떻게 말해달란건가? 내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갔다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 여자분이 상담을 하러 왔다. 사주를 보니 따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편 사주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의 사주를 보고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질문은 주말부부를 하느냐, 남편이나 아내분이 출장이 잦느냐, 애들 교육 때문에 떨어져 사느냐... 정도의 말 뿐이다. 사실 필자가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두 분 이혼했느냐? 이혼 할거냐? 부부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느냐? 등의 질문이지만 말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하면 그때부터 할 말이 없어진다. 잘 살고 있는 부부에게 이혼할거라고 할 수도 없고, 설령 다음달에 이혼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져서 헤어질게 뻔한데 잘산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부부가 같이 상담을 오면 더 그렇다. 이런 경우 나의 입막음 차원에서 둘 중하나는 따라 왔을 때도 사실 많다. 바람을 피고 있거나 사고를 쳐 놓았거나 하는 것의 입막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럴 수 있다 정도로 밖에 말해줄 수 없다. 물론 빨리 정리하란 뉘앙스를 섞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사실 양반이다. 그래도 이 둘은 결혼은 해봤으니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결혼할 사람 사주를 들고 와서 묻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문제가 불거질 것 같은, 그 문제란게 폭력성이 있거나, 사기성이 있거나 하는 사람일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이 때리거나 사기를 칠지 모르니깐 헤어져라고 해줘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특히나 사랑에 빠져 결혼할 꿈에 부풀어 웬만한 결함은 안고 가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건 아무리 막 다 말해주는 나라도 참 망설여질 때가 많다.

 

엄마와 딸이 상담을 올 때도 머리아픈 경우가 많다. 부모라도 다 큰 자식의 삶을 모두 아는게 아니고 자식도 부모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도 서로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게 마련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부분이 상담을 하다보면 튀어 나온다. 그때의 난감한 분위기란 참...

 

이런 문제도 있다. 좋은 말만 해줬다고 생각할 때다. 분명 안좋은 점, 그걸 극복하는 방법, 극복하지 못할 때 추락할 가능성 등을 말해줬음에도 좋은 말만 해주신 것 같아서 고맙다고 할 때 막막해진다. 이 사람이 과연 필자가 시킨 대로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시간이 길어진다.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 실천할 의지는 있는지가 염려되서다.

 

이것 때문에 실력이 형편없다거나 속았다고 욕을 들을 때도 있다. 지금까진 괜찮은 운을 살아왔는데 앞으로의 운이 하락할 가능성이 아주 큰 사람에게 계속해서 나쁘다고 말하면 계속 최악의 선택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나쁘지만 이렇게 조정하고 저렇게 행동하고 하면 그래도 괜찮게 갈 것이다라고 하다보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 들리기도 하고 논리가 상실된 형태의 통변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고 포기할게 뻔한 사람이라면 내가 욕듣고 만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다 말해드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본 당신들 미래가 실제는 달라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다름은 훨씬 좋아질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순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물어물어 나한테까지 찾아오신 노력은 나의 조언을 따를 준비가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은 자신과 같은 시간에 태어나 똑같은 사주를 가진 다른 50명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고, 같은 운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항상 최악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런 부분만 골라서 보인다. 그래서 그 최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뭔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순환이고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진 않지만 헤메이게는 만든다. 그 헤메이는 과정을 줄이기 위해 생각도 해야하고, 독서도 해야하고, 사회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공부도 해야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질 못하다. 필자는 사주보다는 이러한 인생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그리고 필자가 한 이러한 공부의 결실을 여러분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사주를 봐드린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헤쳐가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