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의 가장 큰 전제는 태어나는 그 순간, 이미 그 사람이 살아갈 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람은 사주 생긴 그 모양대로 살아간다는 말이고,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4000년이상 반복되는 시간동안 동일한 사주로 살았던 사람들 삶의 형태를 통계함으로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 사주명리학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그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노력해서 변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나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선행, 즉 덕(德)을 쌓아 바꿀 수 있는 후천운 같은 건 없냐는 의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선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니, 봉사나 기부같은 것도 모두 헛짓이냐고 반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주엔 사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지금까지 다 정해져 있다고 했으면서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사주를 보러 오면 필자가 해드리는 말은 크게 네가지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다. 사주팔자와 대운의 흐름이 좋지 않다. 사주팔자는 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나쁘다. 사주팔자는 안좋은데 대운의 흐름은 좋다. 필자는 '사주명리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분들에게...1'에서 사주 여덟자 원국을 요트에 비유했고, 대운을 항로에 비유했다. 태어나는 순간 내 요트의 크기와 항로가 정해져 있는건 분명하지만, 아직 운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하철은 매일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구간을 운행하지만 타는 손님도 변하고 거기에 따른 이벤트적 요소들도 달리 나타난다. 기본 조건인 시작이 같다고 끝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그건 행동, 액션이라는 남과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가속도라는 요소다. 

 

같은 자연과학이라고 해도 수학, 화학과 다르게 물리학을 현실적인 학문이라고 하고, 같은 비즈니스 학문이라고 해도 경영학, 회계학과 달리 경제학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이유는 가속도를 다루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의 두뇌는 사고하면서 신체적 숙달과 메모리를 동시에 수행한다. 동일한 조건과 상태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순간순간의 판단과 움직임이 달라지면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오게 되는데, 그 결과만 다른 것이 아니라 두뇌에 누적되는 몸의 숙달과 메모리 양 역시 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몸의 숙달과 뇌에 메모리된 경험치는 다음에 같은 일을 반복할 때의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한번 해본 일을 다시하면 더 빨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간이 가지는 가속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가속도가 달라진다.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50명 정도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50명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삶을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학교성적도 다를 것이고, 전공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를 것이다. 낳는 아이의 성별이나 수도 다를 것이다. 사는 집의 가격도 다르고 위치도 다를 것이다. 같은 사주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 삶의 가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선택과 액션의 강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선택과 액션의 강도는 아동청소년기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고, 청장년기엔 직업과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순간순간 느끼는 만족도는 동일하다. 필자는 PC통신 모임이 활발하던 시절 같은 띠모임을 통해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들의 팀을 100여팀 만나본 적이 있다. 2명에서 9명까지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확신한 내용은 그 사람들이 가진 현실적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느끼는 만족도는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4명이 같은 시간 대에 태어난 팀이 있었는데, 금속을 다루는 스킬이 있는 일을 업으로 삼을 사주였다. 그 4명 하나하나의 직업은 치과의사, 샷시기술자, 새마을금고, 경리직원이었다. 치과의사와 샷시기술자는 금속을 다른다는 점에서, 새마을금고와 경리직원은 금속을 돈으로 바뀌 다룬다는 점에서 사주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4명 모두 직업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는 차는 벤츠, 그랜저, 매그너스, 마티즈였다. 버는 돈도 당연히 차이가 나고 타는 차도 차이가 나고 사는 집의 크기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물었을 때 이들은 거의 동일한 삶의 만족도를 가지고 살고 있었다. 본인의 행동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가속도 때문에 삶의 모양은 달라지지만 삶의 만족도는 같은 것이다.

 

그럼 그런 더 잘살기 위한 노력말고 좋은 일을 많이해서 덕을 쌓으려는 노력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는 노력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또 종교생활을 독실하게 하는 것 역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주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으로 바꾸어 주는 건 없다고 말씀드려야 겠다. 그게 팩트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함으로서 본인의 삶의 자세가 바뀌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삶의 자세가 바뀌면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본인 삶을 좀 더 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내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속시키고 그 가속된 결과로 좋은 일을 더 많이하게 될거란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로 봉사와 기부는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봉사와 기부를 활발하게 하는 분들과 대화하면 그게 즐겁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봉사와 기부를 통해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신다. 이런 걸 평정심이라고 한다. 평정심...평정심이란 단어는 자기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다. 인간은 평정심을 가져야 제대로 판단도 하고, 제대로 공부도 할 수 있으며,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평정심을 얻기위해 다양한 교육도 받고 수련의 과정을 거친다. 종교인들이 하는 수련의 과정도 모두 이 평정심을 갖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봉사와 기부 같은 개인의 덕을 쌓는 행동 평정심을 준다. 이 말은 필자가 위에서 말한 봉사와 기부가 평정심을 갖기위한 별도의 수련과정이 없이도 본인의 삶을 더 발전시키게 될 것이란 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수 많은 행동은 무의미한 행동과 유의미한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무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키지 못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많고, 유의미한 행동은 인생을 가속시킬 행동일 가능성이 많다. 인생의 격을 높이고 싶다면 유의미한 행동에 집중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다면 무의미한 행동에 집중하면 된다. 막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고 잘살아도 사주대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던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란 얘기다. 그렇게 살아놓고는 내 팔자가 왜 이러냐는 얘기만 안하면 제대로 살다가는 것이다. 다 자기 선택이고 자기 탓이란 얘기다. 신세한탄은 지 얼굴에 침뱉기란 말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   동   헌

 

 

 

 

내정법, 정말 이런게 있긴 한걸까?

난 역학, 넌 미신 2015. 10. 27. 09:44 Posted by 인컨설팅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 중 실제로 고수라고 불릴만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돗자리를 펴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런 분들 중 스님들도 꽤 계시고 계속 혼자서 공부를 파고 계신 분들도 많다. 이 분들에게 왜 철학관을 차리지 않느냐고 물으면 하시는 말씀이 비슷하다. 자기는 내정법이 안되서 개업을 못한다는 얘기다. 내정법? 도대체 내정법이 뭐길래 고수들의 기를 꺽어버린 걸까?

 

내정법은 내점, 즉 손님이 오는 게 정해져 있다는 말로, 손님이 철학관에 방문한 이유를 미리 알고 '이것 때문에 왔습니까?'하고 알아 맞추는 방법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손님이 일단 그 철학관을 신뢰하게 되고 나머지 상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뭐 그런 이 업계에서 필수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중 서점에 보면 일반 사주책의 가격은 얼마하지 않지만 내정법을 다뤘다고 하면 가격 대가 다르다. 전문가용이면 무엇이듯 비싸듯, 그만큼 업계에 계신 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우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필자가 개인 사주를 보다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하루에 2~3팀을 보다보면 직업이나 직종 또는 성별, 연령대가 같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분명 예약받는 직원이 그런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예약을 받았음에도 의사가 오는 날은 의사만 오고, 유통업 쪽에서 오는 날은 유통업만 오고, 연예계가 오는 날은 연예계만, 운동선수가 오는 날은 운동선수만 온다. 지역의 공통점도 있는데 미국/일본에서만 오거나, 중국/아시아에서만 오거나, 서울경기만 오거나, 대구경북만 오거나, 전라도나 충청도에서만 오거나 한다. 오시는 분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고 예약을 받는 구조상 그런 사전조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런 현상이 있다는 말이다. 창업이나 사업을 묻는 사람도 같은 날 몰리고, 결혼이나 재혼을 묻는 사람도 같은 날 몰린다. 진학을 묻는 사람이 몰리는 건 원서 쓰는 시기가 비슷해서 특이하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로스쿨, 의전, 대입, 고입이 같은 날 몰리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분명 같은 날 같은 목적을 가지거나 공통의 분모를 가진 사람이 방문하는 건 맞다.

 

이렇게 봤을 때 '내정법이 정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정법을 말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이론을 보면 그날 오는 사람의 사주와 그날의 갑자를 가지고 유추한다고 하는데 그런건 구지 내정법이란 특정한 이론을 모른다고 해도 그 사람의 대운과 세운, 월운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현재 어떤 생각과 어떤 상태에 있으며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주명리학과 역학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자기만이 가진 이론 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이론을 포장해 무언가 새로운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기초와 기본이론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 비법은 중요한게 아니고, 그런 비법이란건 특정한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써먹을 일이 거의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특수상대성이론하면 무언가 특수하고 특별한 것 같아서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론 정말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일반상대성이론이 더 유용하고 위대한 이론이다. 마찬가지로 무언가 이름이 특이하고 있을 것 같은 사주명리학이론은 대부분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는 이론이라 쓸모가 없다. 대부분 명리학 하시는 분들이 연세가 지긋하고 건망증이 있으셔서 그런 특수한 경우가 와도 그냥 지나치는 걸 많이 봤다. 실큰 돈들여 공부해봐야 그런 특수한 경우에 못 써먹는 것이다.

 

내정법을 알고 싶다면 그냥 대운과 세운, 월운의 작용력에 관해서 끊임없이 관찰을 하면 된다. 그게 진짜 내정법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람이 같은 날 오는 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같은 직업이나 직종을 가진 사람 또는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인자와 그날의 갑자가 반응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냥 그것 뿐인 것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예전에 올린 포스팅 중 사주명리학을 설명한 글이 있는데 써놓고 보니 많이 모자란 것 같아서 더 자세한 설명의 글을 올린다고 해놓고는 그동안 바빠서 설명을 못드리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그 글을 올린 후부터 개인사주 예약을 받기 시작해서 정말 정신없는 몇달을 보내고 있는데,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내가 사주명리학을 대하는 자세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사주명리학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설명드리기 보다는 명리학자 이동헌이 사주명리학, 아니 사주를 보는 방법을 설명드리는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현직에서 철학관이나 점집을 운영하는 분들이나 사주명리학을 공부는 분들도 꼭 좀 읽으셨으면 한다. 이유는 찾아와서들 사주명리학의 기초이론으로 필자를 너무 괴롭히시기 때문이다.

 

사주명리학은 자연에서 나온 학문이다. 자연만물은 있음과 없음, 어두움과 밝음, 차가움과 뜨거움, 덜함과 더함, 즉 음과 양으로 이루어 진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자연론, 음양론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을 음양론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사주를 보러온 사람에게 '당신은 음이요! 끝, 당신은 양이요! 끝.'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말해줄 꺼리가 많은 것들에 대한 공부에 치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행, 삼합, 방합, 이합, 천간합, 지장간합, 천간충, 지지충, 삼형, 형, 파, 해, 격, 용신, 희신, 기신, 신살, 공망, 생극 등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것을 두고 이게 이뤄지니 안이뤄지니를 가지고 사주명리학 학파들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싸운다. 성립되니 안되니를 겨우 사주여덟자를 놓고 대립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 하면 그 쟁점으로 대립하는 사주팔자를 생년월일로 환산해서 그 생년월일시에 태어난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면 된다. 요새처럼 SNS시대라면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태어나신 분 찾아요!'하고 올리면 자기가 그 시간에 안 태어났어도 그날에 태어난 친구나 지인을 찾아줄 네티즌 수사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책으로 사랑을 배웠어요.'라는 말이 있다. 이성을 만나서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여러사람을 대상으로 반복해야하는 사랑의 기술을 책만 보고 달달 외우는 사람이 실제 이성을 만나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기에 놀리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사주명리학을 이렇게 공부했다. 어떤 사주팔자를 펼쳐서 그 사주팔자에서 합이 성립하는지 성립한다면 언제 성립할건지를 사주명리학 고수에게 물어보러 다니지 않고 PC통신 동호회에 해당사주팔자 띠모임에 가입했다. 그리고 그 띠모임에서 생일이 같은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을 길게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찰 중에 있다. 이 사람의 합이 언제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살아있는 사람의 삶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내린 결론은 오행, 합, 충, 형, 파, 해, 격, 용신, 희신, 기신, 신살, 공망, 생극생재, 12운성 등의 이론은 사주를 보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게 있어도 작용력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어떨 때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란 말이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면 그럼 넌, 저런거 다 안중요한데 사주를 어떻게 보느냐, 너는 어떻게 저것들이 작용할 때를 아느냐고 묻는다. 이미 말했다. 음양으로 본다고, 자연을 관찰해서 22간지에 대입해보면 안다고... 원래 사주명리학은 음양으로 봐야 하고, 자연에 대비해서 봐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있음과 없음, 어두움과 밝음, 차가움과 뜨거움, 덜함과 더함, 즉 음과 양으로 사주를 본다. 여기에 세가지 도구를 더하게 된다. 좌표론, 이면론, 환경론이 그것인데, 좌표론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다는 절대 명제하에서 모든 인간이 거치는 운의 흐름으로 음양을 읽기위해 필요하다. 이면론은 사주팔자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의 정반대편 즉 이면이 주는 삶의 왜곡을 읽기위해 필요하다. 환경론은 사람의 실제환경을 말하는 것인데, 20대까지는 부모, 40대까지는 직업 등에 따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 음양과 좌표, 이면에서 읽은 그 사람의 삶을 보정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22간지와 십신이라는 사주의 기본구성이 가장 중요한 베이스다. 이게 필자가 사주를 보는 방법이다.

 

생년월일시를 넣어서 사주팔자를 뽑으면 수십개의 삶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그때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 중 어떤 시나리오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찾아내고 그 시나리오를 알려주면 사주는 다 본 것이다. 사실 그 시간은 불과 5분이내다. 그래서 실제 사주를 보는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을 알려줬는데도 계속해서 뭘 말해달라고 한다. 책으로만 사주를 공부한 사람들이 책 읽고 읽어주는 죽은 사람의 사주나 인터넷 사주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 걸 듣고 싶으면 비싼 돈내고 나를 찾아오지 말고 그냥 소설책이나 위인전을 사서 읽으면 된다. 어차피 남의 삶을 듣고 싶다면 말이다. 필자의 상담에서 5분 후의 과정은 반복, 설명, 설득이다.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처음 5분에 했던 말의 반복이 나의 답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상담을 할 때 녹음을 꼭 하시라고 권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기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미 자기 삶에 대해 대세적인 판단을 해놓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반대나 자신이 원치않는 답을 들었을 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위해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꿔서 끊임없이 머리굴린 질문을 쏟아낸다. 하지만 나의 답은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주란 건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사주대로 사냐고 묻는다.

                   필자는 대답한다. 그렇다!

많은 분들이 좀 다른 삶을 살 수 없냐고 묻는다.

                   필자는 대답한다. 없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은 왜 이렇냐고 한탄한다.

                   필자는 대답한다. 남들도 다 그렇다!

일부 분들이 왜 그리 비싸냐고도 묻는다. 필자는 대답한다.

                   당신의 그 돈보다 사실 내 시간은 더 비싸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필자는 사주를 요트에 비유한다.

 

사주는 태어난 생년월일시인 사주팔자와 그 사주팔자에 엮여 10년마다 바뀌는 대운, 모든 사람이 매년 공통적으로 적용받는 년월(세운), 월운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사주팔자, 즉 생년월일시는 요트의 종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트의 종류는 강력한 엔진에 수십명을 태울 수 있는 호화요트도 있고, 몸체와 돛대만 가진 혼자 탈 수 있는 요트도 있다. 정말 수많은 종류의 요트가 있는 것처럼 수많은 종류의 사주가 있다. 그 정확한 수는 518,400가지나 된다. 이 수는 60갑자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구할 수 있는데, '60년x12달x60일x12시'를 계산하면 나온다.

 

대운은 항로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을 항해할 수도 있고 대서양을 항해할 수도 있고 인도양을 항해할 수도 있는데, 한 항로를 통과하는 데는 10년이 걸리며 항로의 수는 총 60개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옛날에는 5~6개의 항로를 경험했고, 최근에는 8~9개의 항로를 경험하게 된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경험하는 항로도 늘어난 것이다.

 

년운은 날씨와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다. 날씨와 천재지변은 모든 사람이 같이 적용받는데, 이 년운의 종류 역시 60가지로 60년마다 같은 년운이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갓난아기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첫번째 년운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60년 후에 같은 년운을 경험한다고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흔히 사주팔자를 바꿀 수 없다 또는 팔자대로 산다는 말을 하는 건 이런 구조 때문이다. 2층 최신형 요트로 태어난 사람과 돛단배로 태어난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돛단배 요트가 평생 편안하게 태풍한번 안만나는 항로의 대운만 경험하고 세상을 마감할수도 있고, 초호화 요트가 타이타닉호 처럼 빙하에 부딪히는 항로의 대운을 만나 태어나자마자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게 인생인 것이다. 

 

사주명리학은 요트에 비유한 사주팔자와 항로로 비유한 대운,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년운을 읽어 거기에 대비하기 위한 학문이다. 읽은 결과에 비가 오면 우산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고, 읽은 결과가 우산이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태풍이라고 해도 알고 맞부딪히는게 모르고 당하는 것 보단 물질적 정신적 피해가 훨씬 적을 것이며, 정 안되면 피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사이비 점술꾼들이 미래의 대응방법으로 개명, 부적, 굿, 이장 등을 권하면서 금전을 갈취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는데 있지만, 그 사람들은 사주명리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쪽집게 무당이나 신점같은 사이비만 찾아 다니면서 사주가 맞네, 안맞네 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사주명리학적인 결과는 누구에게 보든 동일하게는 아니라도 비슷하게는 나와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고 들었다. 사주명리학자마다 공부한 관점이 다르고 감정해주는 방식이 달라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주를 볼 때 미래의 결과에 너무 집착해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 사주명리학자가 들려주는 말은 미래 특정시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빠르거나 더 늦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지 인생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주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명리학자가 해주는 말에서 인생의 흐름을 읽는다는 생각이 필요하고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쉽게 풀어쓴다고 한 글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같아 더 쉬운 설명을 차후에 덧붙이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끝으로 이 글을 보는 여러분 모두의 사주를 봐드리겠다.

 

'결국 죽습니다.'

 

그렇다. 인간은 결국은 죽는다. 우리 모두는 실은 죽음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