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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14 혈육에 갇힌 사람들을 탈출시키다 1

5년 전.. 필자에게 개인상담의 시작은 재능 기부라는 이유에서였지만.. 지나고 보니 상담비용을 모아 필자가 기부한 돈을 기부받은 분들보다는 필자에게 상담비용을 내고 상담받은 분들에게 더 큰 기부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전향시킨 분들이 계시기에 나름의 자평을 해본다면 그렇단 말이다. 그런 분들 중에 얼마 전 올려서 많은 반응이 있었던 '혈육에 갇힌 사람들'에 속하는 분들도 계셔서 소개해 드리려 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을 하시는 분이 찾아오셨다. 화종격에 가까운 사주로 식신을 쓰는 여자분이셨는데.. 뭘 해도 대박을 치실 수 있는 분이라.. 그냥 하시면 되지 왜 찾아왔냐고 물었다. 당연히 자신도 그냥 장사만 해도 된다는 걸 알고 계셨다. 그 당시 식당을 네 개 하고 있었는데 본점과 4호점은 자신이 맡아서 하고 있었고 2호점과 3호점은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고 있었다. 본점의 경우 부모와 같이 운영하다가 4호점을 내면서 빠지려고 했으나 연세가 있으신지라 자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 동시에 운영하고 있단다. 자신이 직영하는 규모가 네 개점 중에서 가장 작은 4호점의 매출이 가장 높았고 본점이 그다음, 동생들이 하는 2호점과 3호점은 계속 적자라고 했다. 이것도 처음 오픈했을 때 자기가 봐줄 때는 본점보다 매출이 오히려 높았으나.. 그렇게 매출이 오르니 2호점은 놀고 있던 아들에게 줬고, 3호점은 출산을 끝내고 사회복귀를 하려던 둘째에게 주더란다. 자신이 이룬 성과였으나 부모가 그러겠다고 하니 알았다고 했단다. 더 큰 문제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매출을 올렸음에도 처녀 때 받던 150만 원의 월급을 50대가 된 얼마 전까지 받았다고 한다. 3호점을 넘겨줬을 때 즈음 이분의 남편이 실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남편이 우겨서 4호점을 낸 거라고 한다. 4호점을 차리고 나서는 작은 월급마저도 끊겼지만 본점까지 직업 운영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분이 필자를 찾아온 이유는 만성적자인 2호점과 3호점을 접고 본점을 두 동생에게 주자는데 그래도 될지와 본점 점포가 계약기간이 만료돼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4호점을 옆 가게를 사서 확장해도 되는지도 물었다. 혹시 부모가 4호점 확장을 권한 건 아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4호점을 본인 마음대로 하는 건 아무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빚을 내서라도 사서 하면 금방 갚을 것이라고도 말해줬다. 하지만 4호점을 확장하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고 동생들을 들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알았다고 하면서 갔다. 


9개월 정도 후에 이 분이 다시 예약해서 찾아왔다. 자신이 대출 15억을 내서 지금 가계와 옆 가계를 사야 한다고 모자라는 1억 정도를 빌려달라고 하자 부모가 1, 2, 3호점을 정리한 돈 6억을 줄 테니 나머지를 대출받아서 4호점과 옆 가게를 사자고 하더란다. 당장 6억이란 돈이 들어온다니 OK 하고 가게를 매입하고 남는 돈으로 인테리어를 깨끗하게 하고 나니 자신 앞으로 10억의 빚이 생기긴 했으나 가게는 손님으로 넘쳐나고 매출도 한쪽만 할 때보다 3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월급은 다시 150만 원이 되었고, 남편은 투자한 투자금을 돌려준 후 가게일을 관두게 하면서 부모가 너무 심하게 괄시해서 끝내는 협의이혼을 했다고 한다. 필자가 하지 말라고 한 한 가지를 한 결과가 너무 혹독하게 돌아온 것이다. 남동생은 매월 1000만 원 정도를 돈통에서 꺼내가고 있으며, 여동생은 출근도 안 하면서 300만 원 이상을 주고 있단다. 자기는 뼈 빠지게 일하고 150만 원을 받고 있는데.. 부모는 10억의 빛에 대한 이자 300여만 원을 더해 계산해서는 450만 원이나 가져가면서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는 소리를 하며 타박한단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주니.. 정말 친부모가 맞냐고 묻더란다. 필자도 재차 물었다. 맞는 것 같단다. 자신도 친부모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할 만큼 괄시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를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다 뺏고 싶은지 아니면 다 던지고 싶은지... 다 뺏아서 자기가 운영하면 돈은 벌겠지만 마음이 편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던지는 방법을 알려 달란다. 일단 남동생에게 자신의 대출을 넘겨야 된다고 하니.. 안 그래도 맨날 자기 명의로 식당을 돌려달라고 한단다. 필자가 말해줄게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어디 가서 차려도 잘될 거니깐.. 다 넘기고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1년 후.. 테이블 4개 두고 식당을 하고 있다며 다시 찾아왔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아침 10시에 문 열면 밤 10시까지 쉴틈이 없이 손님들이 문 앞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고 포장과 배달도 홀 매출 이상으로 나가고 있단다. 자매처럼 지내던 주방이모 둘을 모두 불러서 예전보다 월급을 더 주고 있단다. 왜 왔냐니깐.. 지금 하는 가게 건물을 사도 될지 묻는다. 1년도 안됐는데.. 그럴 돈이 있냐니깐.. 찜이 마진이 좋단다. 대출을 받긴 해야 하지만 사서 테이블 늘이고 하면 몇 년이면 원금상환이 가능할 거란다. 그럴 걸 그 고생을 했냐니깐.. 필자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관이 강하거나 없는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 대부분의 무관이나 다관은 관 속에 파묻혀 살기 때문에 자신이 선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그 환경을 빠져나온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를 찾아왔을 때 32살인 여자분 얘기다. 아주 경쟁력 있는 사주를 가지고 있어서 괜찮은 직장을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고 있단다. 무슨 공부냐고 물으니 의전을 준비 중이란다. 의전요? 왜요? 아버지가 원하신단다. 아버지는 이름하여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란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논밭이 모두 신도시가 되면서 거금을 손에 쥐게 되자 대토를 통해 땅을 사들이고 이주 토지에 건물을 짓고 팔고 하는 과정을 거쳐 부를 이루셨다고 한다. 정말 이런 게 전형적인 졸부의 형태다. 오빠 둘과 언니 하나가 있는데 모두 공부를 못했단다. 그래서 큰 오빠는 읍내에서 짜장면 배달하다가 지금 아버지가 차려 준 중국집을 해서 먹고살만해졌단다. 둘째 오빠는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운전기사 겸 부동산 자산관리를 하고 있단다. 언니는 엄마가 차린 카페에서 같이 일한단다. 자식에게 큰 기대가 없었던 아버지가 막내인 자신이 중학교 때부터 1등을 하기 시작하자 오만 때만 철학관, 무당집, 입시컨설팅을 찾아다니면서 내린 결론이 의사를 시키는 거란다. 그것도 신경외과 의사가 되라고 하신단다. 시골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신경외과를 다니니 자기 건물에 차리면 환자를 독점할 거란 생각에서란다. 필자가 물었다. 의대 갈 정도는 아닌데요? 그렇단다. 자기도 안단다. 근데 아버지가 끝까지 밀어줄 테니 하라고 해서 하고 있단다. 입시공부만 10년 이상 했으나 올해도 자신이 없단다. 이 사주는 가르치는 건 정말 잘할  있을 텐데... 같이 학원 다닌 사람 중에 자기한테 배워서 의대 갔다는 사람도 있고, 좋은 대학 간 사람들은 많아서 자기도 자신이 가르치는 재주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단다. 입시학원 강사에게 국어와 논술강사를 제안받은 적도 있단다. 이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 같으면 사범대 국어과 지원해서 다니면서 학원에서 일하겠다고... 안 되는 의대 입시보다는 자기 평생 먹거리를 다지는 게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란 초등 선생님 얘기다. 이 분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교대 다닐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단다. 아버지가 고아 셔서 친가 쪽은 아예 친척이 없었고 고아인 아버지와 결혼한다고 외가 쪽 하고도 인연을 끊고 지낸 까닭에 친척은 본 적이 없었고 엄마와 아주 친하게 지낸 지인 한분이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집에 김치와 밑반찬을 계속해서 챙겨주시면서 인연을 이어가다가 졸업 후 교사 발령을 받고 나서 진지하게 자기 아들을 만나보라고 해서.. 인생 첫 남자로 만나 결혼에 이렀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에 남편이 들어와 살았고, 공시생이던 남편의 수험비용과 용돈까지 대주었다고 한다. 남편은 결혼 3년 후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된 엄마의 지인은 자신을 딸처럼 대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우연스럽게 엄마가 목돈을 주면서 대학 졸업 때까지 반찬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단 걸 남편 고모에게 들었다고 한다. 결혼을 시킨 이유도 교사 며느리를 얻어 아들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말도 들었단다. 그리고 남편이 공무원에 합격한 후에는 대놓고 시집살이를 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주부로서 해야 할 집안일을 못하는 건 맞지만.. 그걸 가장 잘 알면서도 결혼을 시킨 사람이 집안일 못한다고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까지 하면서 자신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욕하기까지 했단다. 첫째가 태어나고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더한 괄시를 받고 있단다. 빨리 헤어지라고 했다. 그리고 1년  남편이 유책 배우자가   있는 각종 자료를 모아서 이혼에 성공했다.


이보다  극적인 탈출도 많이들 알려오신다. 그리고 물으신다. 과연  탈출이 정말 행복으로 가는 길인가를.. 지금까지 갇혀 있는 곳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니 당연히 불안해하는 것이다. 필자는 답한다. 지금 행복.. 그런 거 바라지 마시라.. 그냥 불행 끝.. 이란 점만 명심하시라고... 그리고 행복은 이제 본인이 본인 손으로 만들어 가면 된다고 말이다.



인컨설팅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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