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컨설팅사례보고 2019. 12. 14. 12:45 Posted by Eastlaw

'아침에 우리 애기 학교 갈 때...'

'애기요? 늦둥이라도??'

'아니. 대학원생인데 아직 애기 같아서 애기라 부르네요..'


이처럼 부모와 자식 사이는 친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동 소리를 듣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못하는 게 뭔지 모를 만큼 관심 가지는 분야마다 전국대회에서 상을 쓸어왔다. 중학교 가서도 그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할 즈음... 학교의 선생님들은 특히나 과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라 그 당시 전국에 하나밖에 없던 과학기술고등학교를 보내자고 했다. 이 아이가 받은 상 중에는 이 학교를 입학할 수 있는 상도 몇 개가 있어서 부모만 결심하면 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더니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할 거라고 했다. 선생님들은 재능이 아까웠지만 부모의 판단이니 바꿀 수가 없었다. 일반고에 진학해서도 역시나 이 아이는 성적이나 대회활동이 최고였다. 원하는 대학은 서울 쪽에 있었다. 그런데 고3 진학상담을 온 아버지는 다시 대학을 집에서 다니게 하겠다고 했다. 지역의 명문 사립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다니게 되었다.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탑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이 친구에게 제안한 게 학교에서 가라는 학교에 가서 학위를 받아오면 교수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정말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가 나섰다. 유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는 타 지역으로 파견근무의 가능성이 없는 지역업체에 취업했다. 취업을 해서도 역시나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고 회사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해외진출에 대한 전권을 맡게 됐다. 그때 다시 아버지가 나섰다.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몇 년은 해외근무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반대하시면서 사표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내에 상가 몇 개를 조기 상속해 줄 테니 임대업을 하면서 편하게 살라고 한단다. 이 즈음에 필자를 찾아왔었다. 이 친구가 오자마자 사주 안 봐도 될 사람이 뭐가 문제라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집만 떠나면 걱정 없이 살 팔자라고 했다. 이 친구의 대답은 집을 못 떠나겠어요.. 였다. 아버지와의 유대관계 때문이었다. 모친의 얼굴도 모른단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모친을 대신해 아버지는 극진히 자신을 키웠단다. 그런데 초등 5학년 때 큰 사고를 당하시고 다리가 불편해지셨단다. 처음엔 걷지도 못하셨는데 끈질긴 물리치료를 통해 걷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때 사고로 받은 보상금과 보험금으로 몸을 쓰는 일을 못하니 임대업을 하기 위해 매입한 상가들 주변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몇 개 들어서면서 월세만으로 충분히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후 땅의 일부를 건설사에 주는 조건으로 빌딩을 지어서 임대하면서 거부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부자 소리를 듣게 되었단다. 그러니 하루 종일 아들만 쳐다보고 살았다고 한다. 아들도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바쁜 교외활동도 항상 아버지와 동행했단다. 그 결과는 위와 같이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는 아들이 되었다. 물었다. 해외에도 아버지와 함께 나가면 되지 않냐고? 아버지가 싫어하신단다. 몸이 불편해지신 후로는 자신 이외에는 말을 섞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임대업도 친동생인 삼촌에게 부동산을 차려줘서 대신 관리하게 하고 있단다. 그러니 해외근무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이미 본인이 결론을 다 내놓고 왜 찾아왔냐니깐... 그냥 이런 얘기를 해도 배부른 소리 하네.. 는 안 할 것 같아서란다. 그래서 사주적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해줬다. 사주 원국의 반이 관이고 식상과 인성에 힘이 있는 정말 좋은 사주다. 아마도 격국으로 사주를 보는 것에 가면 거의 정관격의 정격이라고 할 만큼 관이 제대로 선 사주다. 보통 부모를 재로 보는데 자신을 잡고 있는 부모는 재가 아닌 관이다. 대운도 관대운으로 잘 흘러서 부모가 잡지 않았다면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의 관을 써서 열심히 일하고 승승장구했을 것이지만 부모에게 잡힘으로써 부모에게 구속의 관을 쓰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곧 관대운이 끝난다. 그게 2년 후다. 그러니 그냥 2년 아버지와 편하게 쉬어라. 회사 다닌다고 바빠서 같이한 시간도 많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여자도 못 만났을 텐데.. 여자는 필요한 사주니.. 관대운 이후에 만나면 된다. 처복도 있는 사주다. 어쨌든 2년 지나면 아버지가 먼저 본인이랑 안 놀아주실  있으니.. 맘껏 놀아라.


3년 후에 다시 찾아왔다. 역시나 관대운이 끝나 선지 옷이 달라졌다. 각진 양복 대신에 캐주얼을 입었고 더운 날이어서 반바지까지 입었다. 관대운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패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니 양복이 입기 싫어졌단다. 반바지까지는 안 입으려고 했는데.. 필자에게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최근 패션 그대로 입고 왔단다. 작년 말에 아버지가 급성 폐암으로 돌아가셨단다. 필자에게 다녀간 후 사표내고 거의 2년을 아버지와 세계 일주에 가깝게 여행을 다녔단다. 아버지가 잘 못 걸으시니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다녀서 더 많은 얘기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아프셔서 그렇게 가셨단다. 상복을 벗고 나서 한 번도 정장을 입지 않고 있단다. 그리고 올 한 해를 아무것도 안 하고 보냈단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이제 이 사람은 다시 태어났다. 직장은 다녔지만 자산관리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필자가 해줄 수 있는 컨설팅을 해주고 전문가도 연결시켜줬다. 그리고 3년 전에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 전 회사로 돌려보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대승하리라 장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사례로 남겨달라고 했다. 자신이  수많은 기회를 포기했는지도 말하고 싶었고, 아버지가  자신이 하려는 일마다 반대하셨는지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이게 나요하고 오픈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이 하나  있으면.. 저런 이유 때문에 다른 선택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길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상담을 해보면 실제 부모나 자식과의 관계에 엮여서 자신의 삶을 알아서 제한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게  사주팔자에 있기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주팔자에 그게 있다고 해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래서  자기 팔자소관이라고 말하는 거다.  사주가 이런데   있는 선택이 하나가 있던 백개가 있던  사주 원국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레고로  만들어도 레고이듯 말이다. 그래서 관이 강한 사람들은  두 가지라고도 말한다. 부모 말만 듣거나 남의 말만 듣거나...^^



인컨설팅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