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월 아주 더운 날.. 묘자리를 좀 봐달라는 분이 있어서 거창에 간 일이 있다. 풍수는 공장부지나 사업부지 정도만 봐주지만 워낙 오랜 고객이라 차마 뿌리치지 못한 동행이었다. 이분은 얼마전 농공단지조성공사 때문에 선산이 팔려서 이장을 하는데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 무덤에서 그렇게 물이 많이 나오더란다. 흔히 하는 말로 수맥에 묘자리를 쓴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하는 말이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신경관절이 그렇게 안좋고 저리더란다. 수맥에 증조할아버지 묘를 써서 후손이 관절이 안좋다고? 근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과 다른 지관이 다들 그렇다고 동조했다. 이후 수맥에 관한 아무말 대잔치가 한동안 계속 됐고.. 결론은 그래서 묘자리를 제대로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필자가 한마디 했다. 그냥 사장님 사주를 보면 관절이 안좋게 나오는데.. 부모님도 그랬다면 유전 아닐까요? 부모와 자식이 똑같이 그렇다면... 말들이 없다.ㅎ 여기서 한가지 그럼.. 수맥에 묘를 써도 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매장을 하는 이유는 시체를 잘 썩게 하기 위해서다. 실제 매장을 하기 이전의 유교의 장례풍습은 집에서 살이 모두 썩게해서 뼈만 따로 안치하는 방식이었다. 뼈에서 살이 썩어서 없어지는 시간을 사람의 혼과 백이 분리되는 기간으로 봤다. 이게 유교의 혼백론의 베이스 사상이다. 그러므로 수맥에 묘를 써서 제대로 시체가 썩지 않는 건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것이므로 안될 일이다. 하지만 그랬다고 산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건 밑도 끝도 없는 썰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거다.

 

필자는 묘자리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 보단 산사람을 위한 것이란 견해를 표한 적이 있다.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지만 그 관점에서 보면 아래에서 잘보이는 장소가 명당이란 말이고, 그 명당은 남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곳이 된다. 죽은 조상에게 저 정도 돈을 쓸 정도면 살아있는 후손이 얼마나 잘되어 있나..하고 생각하기 좋은 장소가 명당이란 얘기다. 사실 이 이론은 필자의 주장이 아닌 필자가 알고 지냈던 수 많은 도사님들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풍수의 최고 권위자 분들도 산사람이 좋은 장소가 명당이란 말을 한다고 들었다. 묘자리를 명당에 쓰면 후손이 잘된다는 썰은 전후의 과정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후손이 잘되고 나니 조상 묘자리를 훌륭하게 꾸민다에서... 하지만 이 전후과정을 살피지 않고 현재에 보이는 것만 보다 보니 묘자리를 잘 써야 후손이 잘된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다 해드렸는데도... 명당까지는 아니라도 풍수적으로 좋은 묘자리를 봐달라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그래서 뜬금없이 산에 끌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분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고용한 지관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인지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하긴 필자도 지관들이 자신들이 아는 용어로 땅에 관해서 줄줄 말하면 벙찌는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나. 실제로 명당이라고 불리는 묘자리의 가격은 그 주변 토지의 시세와 비교하면 정말 비싸다. 얼마전 해운대 달맞이 인근에서 본 묘자리는 평당 몇천이었다. 주변 시세가 몇만원도 안하는 해안 절벽이나 바닷가 녹지도 묘자리로 명당소리를 들으면 몇백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 맹지에 등산을 해야 올라갈 수 있는 위치라 묘를 쓸게 아니면 쓸모가 없는 땅인데, 역으로 묘만 쓸 수 있는 땅이라 그렇게 비싸게 값이 책정된 것이다. 이런 땅을 산다는 건 돈을 허공에 뿌리는 것일 수도 있으니 미약한 필자의 힘이나마 빌려서 제대로된 묘자리를 사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묘자리 명당은 아무 의미 없을까? 묘자리는 후손이 자랑하는 의미라고 위에서 말했다. 다 갖춘 집안이라면 돈만 있으면 좋은 집, 좋은 차는 누구나 탈 수 있다. 하지만 묘자리는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원하는 땅을 살 수는 없다. 특히나 묘자리는 그렇다. 그러므로 좋은 묘자리는 최고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다. 그냥 생각해보자. 아는 이가 있는데 조상묘가 선산이나 선영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바다에 뿌렸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를... 아무리 허래허식이라고 말하더라도 선산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더 귀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게 한국인의 정서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묘자리는 세력을 의미하고, 역으로 없는 세력도 묘자리로 만들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좋은 묘자리를 쓰려는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묘자리를 썼다고 해도 자랑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전설의 고향 같은 TV프로그램에서 명당에 몰래 자기 부모묘를 이장해서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는 그냥 옛날 잡설일 뿐이다.

 

가끔 고객사의 공장자리를 봐줄 때가 있는데.. 보통 야산을 밀고 터작업을 해서 공장건물을 올리는데, 터 작업을 하기 위해 나무를 먼저 자르거나 뽑고 나면 공동묘지처럼 옛날 봉분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절개지에는 관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지도에도 없는 묘가 나온다는 말은 조선시대 이전에 조성된 묘지란 말이다. 사실 아직도 고조선시대 터가 발견됐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니 이 정도는 신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인류에게 매장이라는 장묘문화가 생긴 이후로 묘지로 안쓴 땅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골 야산은 거의가 다 묘지고 요즘은 시골 밭에도 묘를 써 놓은 곳이 많이 보인다. 부동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묘지와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할 만큼 묘지가 산 중에 산재한다.  그 자리가 예전엔 명당이라고 묘를 쓴자리였을 거다. 필자의 집안 묘 하나도 무려 산을 3시간이상 올라야 갈 수 있는 곳에 있다. 50년 전에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반나절을 갔었다고 집안 어른들이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다. 명당에 대한 갈구였지 않았을까? 근데 지금은 이 묘를 옮기자는 분들이 많다. 너무 멀다는 것이다. 벌초하기도 힘들고 성묘하기도 힘든 곳이 더이상 명당이 아닌 것이다. 묘를 쓰고 그 직계가 잘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ㅎ

 

명당은 분명 존재한다. 

내 조상 묘를 저기 썼다고 하면 '와~'소리 들을 곳이 그곳이다.

그리고 그걸로 나와 가문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래서 말한다.. 돈 있으면 하세요...라고..^^

 

 

인컨설팅 연구소     이동헌

 

 

PS. 요즘도 매장을 하는가? 좋은 묘자리 명당있으면 소개할라는 메시지가 예약센터에 많이 온다는데요.. 매장지를 원하는 경우도 많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집안의 납골묘를 만들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여러곳에 분산되어 있는 묘를 한곳에 모으고 또 납골당 비용도 아끼는 나름의 경제적인 이유에서 필요로 하는 거죠.^^

 

 

 

 

흔히 TV에서 민간의학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할 때면 나오는 자막이 있다.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지 의학적이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등장인물은 이 자막의 한다리 걸침과는 차원이 다른 확신을 가지고 있다. 왜냐? 자신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인사주를 단시간에 많이 보면서 가장 애로를 겪을 때가 바로 이렇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에 대한 맹신을 바탕에 둔 분들과 상담할 때다.

 

많은 분들이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의 꿈을 꾸면 그 꿈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꿈해몽에 대한 부분은 그런 분들도 있다...정도로 넘어간다. 실제로 무당들이나 신점을 보는 법사들이 신을 영접하는 형태와 유사한 형태일 것이다. 영이 맑은 사람들의 초능력 정도로 받아들여도 충분 할거란 말이다. 자신의 꿈이 잘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반면에 자신은 항상 개꿈을 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누구나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순 없지만 분명 그러한 꿈에 의한 예지, 즉 예지몽을 꾸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게 맞다는 얘기다. 그리고 외국의 뇌과학연구들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실제로 인간의 뇌는 현실의 사고능력이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현대과학으로도 꿈에 관한 미스테리는 풀려질 것으로 기대한다.

 

개명에 관한 얘기는 이전에 한 적이 있다. 실제로 별 효과가 없지만 그래도 최후의 수단이라면 해볼만 하다는 내용과 아주 나쁜 뜻을 지닌 한자가 포함됐거나, 아주 촌스러운 이름, 유명인이나 범죄자의 이름과 같다면 바꾸는게 좋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개인상담을 해보니 의외로 개명을 맹신하는 분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 대부분은 개명 후에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도 무조건 개명을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의 사주를 보면 개명의 영향이 아닌 대운의 변화에 따라 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50대 여자분이 자기 남편의 이름을 개명해야한다고 어디가서 이름을 지어왔는데 남편이 바꾸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를 설명했다. 자신은 자기 원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개명을 했는데 그 이름으로 바꾼 후에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갔고 거기서 뼈주사를 맞았는데 그 주사약의 부작용으로 지금까지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두 이상해서 다른 철학관에 가서 물었더니 이름을 잘못 바꿔서 그렇다고 당장 다른이름으로 바꾸라고 해서 바꾸고 나서는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한번 얻은 병은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했다. 실상은 어떨까? 이 분의 대운의 흐름이나 세운의 흐름에서 그 당시를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는 운의 흐름과 현실에선 이혼이 겹쳐 있었다.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같이 먹고 있었고 변화를 위해 개명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약의 부작용으로 현재의 증상이 이어져오고 있는 듯 보였다. 의학적인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한마디로 약을 잘못 또는 과하게 먹어서 생긴 증상이지 개명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모든게 개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아이들 때문에 남편과 아직 끊지 않고 왕래를 하고 있는 중에 남편이 이름을 바꾸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개명을 주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의 개명이 필요없다고 말하자 갑자기 필자 개명도 모르는 사이비 취급했다. 사실 이런 분은 사주를 봐드릴 수 없는 분이다. 사주란건 사고가 깨어 있는 분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에겐 전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경험이란 건 정말 아주 개인적인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식적인 면이나 보편성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 이름이 정말 중요하지 않냐는 의문이다. 필자는 항상 얘기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하다는 것과 이름을 바꾼다는 건 큰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름을 처음 지을 때 상식선에서 이상이 없는 이름을 지었다면 그 이름 때문에 인생이 뒤틀리는 경우는 없을 거란 말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이장에 관한 것들일 것이다. 사실 장례에 관한 부분은 사주명리학의 영역이 아니다. 또한 다른 역학의 영역도 아니다. 사주명리학이나 역학은 살아있는 자의 학문이기 때문에 죽은자를 다루는 장례와는 무관한 것이다. 물론 묘자리하면 떠오르는게 역학의 한 분야인 풍수지리학이라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역학의 풍수지리학은 나라의 수도를 정하기 위해 나온 학문이므로 그 뿌리가 다르다. 현재의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대부분이 유교에서 파생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유교에 대한 합당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교란 학문은 뜻을 펼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학파를 만들고 그 학문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개념을 가진 학문이다. 그래서 유교는 자신과 뜻이 다른 학문을 배척하는 아주 이기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유교의 장례문화를 이 정도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보면 조금은 들여다 볼 여지가 생긴다. 사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게 책읽고 토론하는 것 외엔 거의 없다. 그런데 관혼상제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식적인 행사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여서 세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가 아는 좌청룡, 우백호와 배산임수는 좋은 묘자리를 찾는 방법이 아닌 안전하게 모여서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지역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렇게 모여서 세를 과시하는 문화는 유교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초기에는 사람이 죽으면 살을 썩혀서 뼈만 바르는 죽은 사람에 집중한 혼백론을 바탕에 둔 장례문화가 주를 이루었다. 죽고나서 혼이 이성을 떠나 저성으로 가는 시간을 3년으로 보고 3년상을 지냈던 것도 혼백론에 의한 장례문화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살아있는 사람, 즉 상주의 세를 과시하는 형태의 장례문화로 변질되어 왔다. 장례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교통을 못한다는데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잠이나 병이라는 과정을 통해 예행연습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에 죽은 조상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된다. 이 사이를 파고든 분야가 무속이다. 죽은 자와 교통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죽으면 그냥 끝인 것이다. 다시 무덤 묘자리 얘기로 돌아가자.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이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묘자리가 부족해서다. 시골에 가보면 온 산이 무덤으로 뒤덥혀 있다. 현행 법으로 내 땅에 있는 무덤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무덤이 있는 땅은 죽은 사람이 묻힌 땅이 아니라 그냥 죽은 땅인 것이다. 이런 죽은 땅을 사용해야 할 일이 생길 때 잘 써먹는 제도가 이장이다. 묘자리를 잘못써서 후손이 안되고, 아프고 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 그건 그냥 하는 말 또는 핑게일 때가 많다. 그것보다는 이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토지보상과 성묘, 벌초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많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토지개발업자는 전국 지자체에 농공단지 같은 공단조성을 많이 알아보러 다니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선산이나 문중의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 공단을 조성하기 가장 쉬운 지역이라고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이장은 안된다고 하던 문중어른들이 토지보상금이 나온다고 하면 쉽게 한발 물러선다는 말이다. 현대는 죽은 땅인 선산을 크게 보유한 가문보다 돈을 많이 가진 가문이 더 경쟁력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볼 때 과연 묘자리나 이장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할 사람이 있겠는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꿈, 개명, 이장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봤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이 세가지로 트집을 잡으려면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철학관이나 무당집을 찾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20년을 먹고 살았고, 물리학을 전공했고, 심리학과 종교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니 당신의 미스테리한 경험은 나한테와서 물어볼 생각말고 스프라이즈 같은 TV프로그램 작가에게 제보하기 바란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