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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6.06.26 얼굴로 사람을 읽는다는 것
  2. 2017.07.31 하면 되는 운이라고 했는데 왜 안되었는가? 3

얼굴로 사람을 읽는다는 것

컨설팅사례보고 2026. 6. 26. 07:47 Posted by 인컨설팅

필자는 오랫동안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을 해 왔다.
관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내 얼굴 어때요? 부자 되겠어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필자가 얼굴에서 읽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자주 짓는 감정이 고스란히 새겨진다. 

 

늘 찡그리는 사람은 미간에 골이 패고, 
잘 웃는 사람은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이 잡힌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과 잘 참는 사람은 입매가 다르다.
얼굴은 거짓말을 잘 못 한다.

 

마음이 오래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관상이고, 관상을 보는 거다.

 

관상은 미신이 아니라 관찰의 통계인 것이다.
그 관찰에 부자 얼굴도 많긴해서 보면 안다. 근데...
겨우 그거 보는 게 뭐라고 일이라고 했겠나?

 

그런데 사람들은 관상을 잘 모르다 보니, 
관상을 오해하는 면이 크다.

 

관상이라는 학문에는 없는 
미디어나 소설, 요즘은 조회수를 노리는 
엉터리 관상 신문 기사 등에서 픽션으로 사용된 
유사 사이비 관상 이론을 진실이라고 믿고는 
거기서 본 걸 실생활 속에서 써먹는다. 

 

얼굴 한 번 슬쩍 보고는
‘저 사람은 인상이 안 좋아’
‘관상이 사납다’
'무슨 상이라서 어떻고, 무슨 상이라서 어떻다'
내가 어디서 봤는데 하며 사람을 단정해 버리는 거다.

 

관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얼굴로 사람을 읽는 일은 
그 첫인상의 함정과 아주 가까이 붙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얼굴을 보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왜 조심해야 하는가?
첫째, 얼굴은 한 장면이 아니라 
흐름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으로는 사람을 못 읽는다.
가만있을 때의 얼굴, 웃을 때의 얼굴, 
화날 때 일그러지는 얼굴, 
남의 말을 들을 때의 얼굴이 다 다르다.
진짜 그 사람은 이 여러 얼굴의 합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처음 마주친 한 장면, 
그것도 긴장하거나 피곤한 순간의 얼굴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해 버린다. 

 

그건 영화의 한 컷만 보고 
줄거리를 다 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둘째, 얼굴을 읽는다면서 사실은 
자기 편견을 읽는 경우가 너무 많다. 

 

눈이 작으면 째진 눈이라 사납다 하고, 
광대가 나오면 드세다 하고, 
입이 크면 욕심이 많다 한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나?
대부분이 그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이다.
그 고정관념을 얼굴에 덧씌워 놓고 
"관상을 봤다"고 하는 거다. 

 

이건 얼굴을 읽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편견을 얼굴에 투사하는 것에 가깝다.

잘생긴 사람은 성격도 좋을 거라 믿고, 
인상이 험한 사람은 속도 험할 거라 믿는 그 마음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외모가 호감인 사람에게 
능력이나 인성까지 후하게 점수를 준다. 
면접에서도, 첫 소개팅에서도 이게 작동한다. 
그런데 살아보면 어떤가?

 

얼굴 곱던 사람에게 크게 데이고, 
인상 험하던 사람에게 깊은 정을 받는 일이 
인생엔 수두룩하지 않나? 
츤드레란 단어가 만국 공용어가 된 이유도 이것 아니겠나?

 

그럼, 얼굴을 읽는 일은 다 부질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제대로만 읽는다면 얼굴은 분명 많은 걸 알려준다. 
다만 그 '제대로'가 어렵다.

 

필자가 권하는 올바른 스텐스는 이거다.
얼굴에서 받은 첫인상은 
'의문의 출발점'으로만 쓰라는 것이다. 
‘이 사람 표정이 좀 굳어 있네’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추고 단정하지 말고 
‘원래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궁금해하라는 거다.

 

인상은 가설이고, 
그 가설은 그 사람을 겪어 가며 확인하거나 
수정해야 할 무엇이지, 
처음부터 박제할 결론이 아니라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작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얼굴은 
남의 얼굴이 아닌 나의 얼굴이다. 

 

앞서 말했듯이 얼굴엔 자주 짓는 감정이 새겨진다. 
그 말은 곧,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가 
결국 내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남의 관상을 보는 데는 그렇게 열심이면서, 
자기 얼굴에 무엇이 쌓이고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매일 짜증과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과, 
매일 감사와 호기심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은 
십 년 후에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다.
그러니 얼굴 공부의 끝은 결국 자기 마음 공부로 돌아온다.

 

좋은 얼굴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오래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의 처세서 <적당한 거리> 중에서... 

<적당한 거리> 는 2026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행운을 기대한다. 행운이란 노력한 것 이상의 것을 얻는 것을 말한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란 말을 해도 그건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기 보단 생각해봤는데 현상황에선 실현 불가능해서 기대 하지 않았다는 쪽이 더 가깝다. 그래서 나쁜 생각을 반전시키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 사용하는 요행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큰 행운은 단지 생각, 상상이라는 무노동의 노력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이익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에는 행운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 무노동의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을 읽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역과 사주명리학, 상학 같은 역학은 사필귀정이 확실한 논리적인 학문이기에 이유가 없거나 불확실한 일을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10대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역학에 빠져든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서 대부분의 분들이 어찌 이런 것까지 되지? 정말 편한데..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램을 짜면서 고려해 두었던 것들이다. 이유없는 결과가 없다는 점이 너무나 유사한 것이다. 필자가 프로그램을 짤 때 가장 즐거웠던 점은 내가 이렇게 프로그래밍을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쓰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후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과학이 수많은 설명할 수 없는 난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주역과 사주명리학의 앞섬에 경의를 표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행운이라 생각한 일도 사실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일일 가능성이 높고, 그게 아닌 행운도 존재하긴 하겠지만, 그럴 경우 그 때 역학의 관점은 인간의 손을 떠나서 벌어진 일이다. 이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무속이나 종교의 영역이 생겨난 것인데, 먹고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사회가 되다보니 이 영역침범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무속이나 종교의 영역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급이 안되는 역학자나 꾼들이 문제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제대로 된 무속인이나 종교인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그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주명리학에서의 운은 무엇이며, 그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 가가 궁금하실 것이다. 필자가 컨설팅할 때 일이 잘될 운이다 또는 합격할 운이다..라고 얘기하면 '일이 잘돼?', '합격해?' 라고 생각하면서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띈다. 하지만 곧 상황이 변한다. 필자의 운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주명리학은 어떻게 생겨나게 됐을까? 사주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주에는 인간관계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십신이란게 그 것인데,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관, 재를 포함한다. 정관, 편관, 정재, 편재, 식신, 상관, 정인, 편인, 비견, 겁재의 10가지 인간관계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고, 이 용어를 통해 인간관계 뿐만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일을 해석하게 된다. 여기에 사주명리학의 탄생의 이유가 들어 있다. 처음 인간이 모여 살 때는 음양만 있으면 모든 셜명이 가능했다. 남자여자, 남자남자, 여자여자.. 이렇게 같이 살아도 누가 더 남성적으로 양한지, 누가 더 여성적으로 음한지만 보면 둘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 수가 많아지면서 음양으로만 설명하기엔 벅차게 된다. 그래서 인간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이러한 십신을 이용한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주명리학이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학문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사주명리학을 완성 시키는데 필요한 사람은 전부 몇 명 이었을까? 그래 10명 정도다. 그래서 그 10명을 두고 너는 정관을 가지고 너는 편재를 가지고 하면서 돌고도는 운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운을 예측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인구는 몇명? 필자가 과거 문헌들을 찾아보면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할 때 재미있었던 기억이.. 동네에 이장을 뽑을 때 정관운이 들어온 사람을 뽑고, 마을 공동체에서 차출할 사람이 필요할 때 편관운이나 상관운이 든 사람을 보내는 걸 보고다. 지금은 어떤가? 인구가 많아지니 투표를 한다. 그 말은 관운이 든 사람이 많다는 말이고, 각종 운도 이젠 경쟁이란 말이다. 필자가 합천 얘기를 많이하는데 필자가 살던 동네는 50가구도 안되는 마을이었다. 70대 이전의 남자분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이장을 하는데, 다들 이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시다가 해가 바뀌고 나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분이 계신데, 그분들의 세운에 관운이 들어온 걸 보고는 역시 했었다. 이는 현대에도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운의 영향을  강하게 받지만, 그 운이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 좋은 운을 가진 사람에게 밀리거나, 비슷한 운을 가지고 더 노력하는 사람에게 밀리면 자신에게 들어온 운을 찾아먹을 수 없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컨설팅에서 운을 말해주는건 움직일 때 즉 운을 취하기 위해 행동할 때와 방법과 준비를 알려주는 것일 뿐이고 대부분의 컨설팅 시간 할애는 어떻게 경쟁에서 이겨서 그 운을 잡을 것인가에 촛점이 맞춘다. 그래서 쓰레기 통에나 버려질 몇세 운이 어떻고 몇세 운이 어떻게 어떻게 살아 갈 것이라는 300가지 데이터를 가지고 돌려가면서 프린트해주는 간명지 따위를 주거나 이렇게 돼, 저렇게 돼 하는 무당짓은 하지 않는다. 기업 컨설팅은 사실 결과만 알려주면 된다.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뭘 할지 또는 하지 말아야할지를 묻거나, 어떠한 이벤트가 운과 대비해 어떻게 결론날지를 묻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은 그렇지 않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이 재미로 보고, 뭘 하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누가 누구한테 보고 대박 났더라 하는 썰을 듣고는 밑도 끝도 없는 된다, 안 된다만 맹신해 버리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경계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필자가 택한 컨설팅 방법은 상담내용을 녹음해서 가서 듣고 듣고 또 들어라는 것이다. 상담하면서 필자가 상담자에게 질문을 해서 말해준 '그렇다'와 '아니다' 당신이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그걸 인정한다면..'이라는 큰 두줄기의 상담내용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자각한 후, 자신의 운의 방향대로 움직이라고 말해준다. 필자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되면 필자 말을 완전히 무시 하라고도 한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 자기인식이 먼저이고, 자기인식을 통해 자존감을 높인 후에 자신이 살아갈 운의 흐름을 듣고, 그 흐름대로 살아가면 거칠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성향적으로 자기인식이 늦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되는게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보통 도사들이 도통을 한다는 첫단계가 바로 이 자기인식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이 지피가 자기 인식이다. 그 자기인식을 본인 사주의 생긴 모양을 반복적으로 듣고 이해하면 할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오류도 있을 수 있다. 필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아서 상담의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사주를 왜곡시키는 삶을 살아오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도 긴 시간 얘기하다보면 다 바로 잡게 되고, 그 과정과 내용을 녹음된 파일로 듣다보면 자신의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상담시에 빠뜨린 내용은 이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보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보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 


필자도 필자가 모르는 부분이나 변해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 부분을 언제라도 활 쏘듯이 말해줄 오랜 지인그룹의 도움을 받는다. 인간이 완전해질 순 없겠지만 어떻게 변하고 변해가는지만 알아도 살아갈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필자가 보는 사주가 99.9% 다 맞다고 감히 말한다. 이유는 필자가 피상담자의 사주만 보고 줄줄 외는게 아닌, 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그 사람 사주 컨설팅을 함께 완성시켜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예측이 맞고 안맞고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필자는 그 사주가 가는 길을 아는 것이고, 가 있는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그래서 그 길을 이제 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가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 어떠한 이벤트로 과정이 달라지더라도 그 길의 끝인 그 마지막 종착점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컨설팅 덕분에 잘살고 있다고도 하고, 어떤 분들은 필자가 말해준 대로 안되서 미안하다고도 한다. 필자는 후자분들에게서 많은 보람을 얻는다. 어떤 운이라고 했는데, 그 운을 못잡았다. 그래서 일이 안됐다. 그런데 필자한테 자기 부족으로 못했다고, 알려줬는데도 못했다고 미안해 하는 것이다. 이 분들이 고마운 이유는 필자의 컨설팅이 제대로 먹혔다는 점과 이제 자신을 아셨으니 과정은 조금 달리지겠지만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셔서 자신이 도착할 최적의 목적지에 도착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사람도 간혹 있다. 필자 말대로 안되서 뭐도 안되고 뭐도 안되고 돈도 잃고 다 잃었단 거다. 온동네 온인터넷에 떠들고 다닌다. 그래라. 어차피 그래서 개인상담 요청해오는 사람 없어지면 나야 더 편하고 좋다. 하지만 그리 흘러갈 당신들 인생을 생각하면 참... 아쉽다. 방향이 맞았다면 일이 안되는게 아니고 방법이 틀린 것이다. 왜 그 틀린 방법을 고칠 생각은 하지않고 다 때려업고 다른 방향만 바라 보는가? 왜 나사를 망치로 못질하지말고 드라이브로 돌리라는데 그 말은 안듣고 딴소리를 하냔 말이다. 하면 되는 운이라고 했는데 왜 안되었냐고? 이래도 모르겠다면 나도 방법이 없다.




인컨설팅 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