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은 대개 맛이 없다

명리학으로 생각하기 2026. 10. 18. 21:02 Posted by 인컨설팅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도가 입에서 나오면,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다.
귀에 당기는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도를 말하면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다. 

보아도 볼 만한 것이 없고 들어도 들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자극과 지속. 노자는 이 둘이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맛이 강한 것은 발길을 멈추게 하지만 금방 물리고, 맛이 없는 것은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평생을 간다.
물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료이자, 유일하게 평생 마셔도 물리지 않는 음료다. 

밥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다. 

생명을 지탱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담담하다. 

자극은 삶의 양념일 수는 있어도 주식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이 순서를 뒤집었다. 

양념이 주식이 된 시대다. 더 자극적인 영상, 더 강한 맛, 더 큰 소리, 더 극단적인 말이 발길을 붙잡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자극에는 잔인한 법칙이 있다. 

같은 강도는 금세 무뎌진다는 것이다.

 

어제의 자극은 오늘 밋밋해지고, 그래서 내일은 더 강한 것이 필요해진다. 

자극의 계단은 오르막뿐이다. 

그 계단을 오르는 동안 감각의 문턱은 함께 높아져서, 어느 날 발견한다. 

 

웬만한 것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을. 

자극을 좇는 삶의 종착지가 무감각이라는 것, 이것이 오미령인구상(五味令人口爽), 

다섯 가지 맛이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던 노자의 예언이다.

 

관계에서도 같은 곡선을 본다. 

만남의 초입이 불꽃 같았던 사람들이 그 불꽃의 소멸을 사랑의 소멸로 오해하는 것을 자주 본다. 

설렘이 사라졌으니 사랑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렘은 정의상 지속될 수 없는 감정이다. 

새로움이 연료인데 사람은 반드시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오래가는 관계는 불꽃이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불꽃이 잦아든 자리에 담담함이 남는 관계다. 

별말 없이 마주 앉은 저녁이 편안한 것. 

그 무미(無味)를 지루함으로 읽는 사람은 관계를 갈아치우며 평생 초입만 반복하고, 

깊은 맛으로 읽는 사람은 한 사람과 평생을 간다.


일도, 공부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정말 성장시키는 것들은 대개 재미가 없다. 

기본기 연습, 꾸준한 걷기, 반복해 읽는 고전. 

화려한 비법은 나그네를 멈추게 하지만 석 달을 못 가고, 담담한 기본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십 년을 먹여 살린다. 

 

용지부족기(用之不足旣),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는 노자의 말은 정확히 이런 것들을 위한 말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고를 때, 혀를 즐겁게 하는 것과 몸을 살리는 것을 구별하라. 

첫맛이 강렬한 것을 경계하고, 첫맛이 심심한 것을 쉽게 버리지 말라. 

사람이든 일이든 습관이든, 오래 곁에 둘 것은 담담한 쪽에서 골라야 한다.
좋은 것은 대개 맛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다.

 

 

발매 예정 <다투지 않는 삶. - 도덕경에세이. 이동헌 저> 중에서

노자가 정의한 부자란?

대표님 저서 2026. 7. 14. 08:14 Posted by 인컨설팅

부자는 재산이 아니라 셈법이다

知足者富。지족자부.
'만족을 아는 자가 부자다.'

도덕경 33장의 이 네 글자는 부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재정의다.

부자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만족을 아는 사람이다.

듣기 좋은 위로처럼 들린다.

가난한 자의 정신 승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산수다.

그리고 그 산수는 냉정하다.

부유감은 분수(分數)다.

가진 것이 분자, 원하는 것이 분모다.

백을 가지고 이백을 원하는 사람의 부유감은 이분의 일이고,

오십을 가지고 오십을 원하는 사람의 부유감은 일,

완전수다.

세상은 분자를 키우는 법만 가르친다.

더 벌고, 더 모으고, 더 불리는 법.

그런데 분자가 커지는 동안 분모가 가만히 있어 주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 이 산수의 함정이 있다.

소득이 오르면 눈도 오른다.

예전에는 없어도 되던 것이 이제는 있어야 하는 것이 되고,

한때 사치이던 것이 어느새 기본이 된다.

쾌락 적응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사람의 뇌에 새겨진 기본 설정이다.

좋은 것은 곧 당연한 것이 되고,

당연해진 것은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분자가 두 배가 되어도 분모가 함께 두 배가 되면 부유감은 제자리다.

평생을 달렸는데 제자리인 러닝머신.

더 벌어도 늘 빠듯한 삶의 정체가 이것이다.

지족은 이 러닝머신에서 내리는 유일한 기술이다.

분모를 고정하는 것.

나에게 충분한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 것은, 이것이 분자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자는 벌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충분의 선이 없이 벌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충분선이 있는 사람에게 그 선을 넘는 소득은 전부 잉여의 기쁨이 되지만,

충분선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소득도 부족의 증거가 된다.

같은 돈이 한쪽에서는 풍요로 계산되고

다른 쪽에서는 결핍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것은 통장이 아니라 이 계산식이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이 산수를 자주 확인한다.

객관적인 형편과 주관적인 부유감은 놀랄 만큼 따로 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산가가 늘 쫓기듯 살고,

수수한 살림의 사람이 넉넉하게 산다.

전자에게는 분모가 없고 후자에게는 있다.

전자는 얼마가 있어야 충분하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답이 없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도착이라는 것을 영원히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 해 볼 계산은 이것이다.

나의 충분은 얼마인가?

체적으로, 숫자로, 어떤 살림이면 나는 족한가?

이 물음에 답을 가진 사람은 이미 절반쯤 부자다.

도착 지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족을 아는 것은 야망의 포기가 아니라 도착의 기술이다. 

분모 없는 부는 아무리 커도 허기이고, 

분모 있는 삶은 소박해도 잔치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운 <상하지 않고 오래가는 법>' 중에서...

본 책은 이동헌대표님의 신간 에세이로 7말8초에 출판예정입니다.

<적당한 거리>는 현대인이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

자신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룹니다.

명리학적인 지식을 배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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