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之出口 淡乎其無味。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도가 입에서 나오면,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다.
귀에 당기는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도를 말하면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다. 보아도 볼 만한 것이 없고 들어도 들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자극과 지속. 노자는 이 둘이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맛이 강한 것은 발길을 멈추게 하지만 금방 물리고, 맛이 없는 것은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평생을 간다.
물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료이자, 유일하게 평생 마셔도 물리지 않는 음료다.
밥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다.
생명을 지탱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담담하다.
자극은 삶의 양념일 수는 있어도 주식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이 순서를 뒤집었다.
양념이 주식이 된 시대다. 더 자극적인 영상, 더 강한 맛, 더 큰 소리, 더 극단적인 말이 발길을 붙잡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자극에는 잔인한 법칙이 있다.
같은 강도는 금세 무뎌진다는 것이다.
어제의 자극은 오늘 밋밋해지고, 그래서 내일은 더 강한 것이 필요해진다.
자극의 계단은 오르막뿐이다.
그 계단을 오르는 동안 감각의 문턱은 함께 높아져서, 어느 날 발견한다.
웬만한 것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을.
자극을 좇는 삶의 종착지가 무감각이라는 것, 이것이 오미령인구상(五味令人口爽), 다섯 가지 맛이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던 노자의 예언이다.
관계에서도 같은 곡선을 본다.
만남의 초입이 불꽃 같았던 사람들이 그 불꽃의 소멸을 사랑의 소멸로 오해하는 것을 자주 본다.
설렘이 사라졌으니 사랑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렘은 정의상 지속될 수 없는 감정이다.
새로움이 연료인데 사람은 반드시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오래가는 관계는 불꽃이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불꽃이 잦아든 자리에 담담함이 남는 관계다.
별말 없이 마주 앉은 저녁이 편안한 것.
그 무미(無味)를 지루함으로 읽는 사람은 관계를 갈아치우며 평생 초입만 반복하고, 깊은 맛으로 읽는 사람은 한 사람과 평생을 간다.
일도, 공부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정말 성장시키는 것들은 대개 재미가 없다.
기본기 연습, 꾸준한 걷기, 반복해 읽는 고전.
화려한 비법은 나그네를 멈추게 하지만 석 달을 못 가고, 담담한 기본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십 년을 먹여 살린다.
용지부족기(用之不足旣),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는 노자의 말은 정확히 이런 것들을 위한 말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고를 때, 혀를 즐겁게 하는 것과 몸을 살리는 것을 구별하라. 첫맛이 강렬한 것을 경계하고, 첫맛이 심심한 것을 쉽게 버리지 말라.
사람이든 일이든 습관이든, 오래 곁에 둘 것은 담담한 쪽에서 골라야 한다.
좋은 것은 대개 맛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다.
발매 예정 <다투지 않는 삶. - 도덕경에세이. 이동헌 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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