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고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4.04.01 108번뇌의 본래 의미... 16
  2. 2016.10.09 인간은 원래가 외롭고 고독하다. 2
  3. 2016.06.12 사람의 인연... SNS 그리고 삶... 3

108번뇌의 본래 의미...

이동헌의 사주강의 2024. 4. 1. 07:50 Posted by Eastlaw

참 놀라운 게.. 정말 많이 쓰이는 108번뇌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인터넷 백과사전만 봐도 두 가지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필자가 알려드리는 내용과 다르다. 그러니 어쩌면 진짜 제대로 된 의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하루,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쌓여 한 계절이 된다. 네 개의 계절이 쌓이면 121년이 된다. 인류는 100년을 1세기로 정했고 그 속의 10년을 년 대로 구분해 왔다. 동양에서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로 10년의 의미를 부여했고 세대라는 말로도 구분해 왔다.

 

108이란 숫자의 산출 근거는 112달이 아홉 번 쌓인 9, 108개월을 의미한다. 그리고 108이라는 숫자에 번뇌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9년을 쌓은 후에 마지막 1, 12달을 더해서 120개월, 10년을 채워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고민되기 때문이다. 9년간을 잘 쌓아 왔다면 모르겠으나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일에는 기승전결이 있어 마지막의 이 아름답기는 쉽지 않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마지막 12달의 노력이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더 많기에 실행 여부를 두고 번뇌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요즘 108번뇌 중이다. 과거 도사님들이 사주를 실관하는 실황을 제자들이 문밖에서 들으며 사주를 배운데 착안해서 시작한 필자가 사주를 보는 실황을 들려주며 실제 사주를 보는 방법을 전수하는 실전사주강의9번째 클래스로 108강의 종강을 앞두고 있어서다. 처음 이 강의를 시작할 때 짜고 녹음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실제 실관하는 걸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들려줄 수 있나? 그러다가 실력이 탈로 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소리도 들었었다. 처음엔 아주 많은 인원이 수강했었다. 1년 이상 초급부터 배우시던 분들이 많아서였다. 하지만 시작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점차 줄어들어 이젠 서버 비용 정도를 겨우 감당할 인원과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고민인 것이다. 계속해서 120강을 채워야 하나? 108강에서 멈추어야 하나.. 시간이 돈인 필자 입장에선 적자인 일을 계속하는 게 필자나 회사를 위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작한 강의를 10클래스 120강의도 못 채운다는 게 또 자존심에 클랙가는 것이기도 해서 클래스와 클랙 사이에서 번뇌하는 것이다.

 

이런 게 108번뇌다. 손실이나 결과가 분명한 상황에서 관을 위해 명분을 채워야 하나 실리를 위해 그만두어야 하나. 내가 9번을 했는 데와 10번을 했는 데는 완성을 중시하는 인간사의 평가가 전혀 다른 것이라 그런 것이다.

 

108 앞에 서면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120을 채워야 하는 눈에 보이는 뻔한 고통에 더 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왜 그때 끝까지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래서 인간은 108번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누가 108번뇌에 대해 말하고 108이란 숫자가 어떻게 계산되는 것이라는 헛소리를 하거든 제대로 알려주시길...^^

 

 

 

인컨설팅 이 동 헌

 

혼자만의 판단으로 헤쳐나가야 하는게 인생이다. 그러므로 자식이건 부모건 배우자건 절친한 친구건 혼자 내버려두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나둬야 한다. 필자는 컨설팅을 해드릴 때 이런 취지의 말씀을 자주 드린다. 그럴 때마다 그럼... 부모의 역할, 자식의 역할, 배우자의 역할, 친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 필요없다는 말인가? 라고들 물어 오신다.

 

인간이 혼자 판단하고 행동할 때...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나?'하는 의문을 느끼게 되고 불안하게 된다. 그때... '그래 니가 가는 길이 맞아!'하고 칭찬해 주거나, '아니야 그리가면 안돼!'하고 질책해 주면 더 나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가족과 친구의 역할은 구체적인 방법이나 길을 특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칭찬'이나 '질책' 정도이어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도 그사람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만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칭찬도 할 수 없다. 인간은 뭐라도 해야 외부와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움직일까? 타인이 무언가를 시켜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움직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이 시켜서 움직이거나 움직일 마음이 생겨야 움직인다. 칭찬은 바로 후자의 본인이 움직일 마음이 생겨서 움직일 때 해줘야 비로소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사주를 읽어주는 사람의 역할도 이래야 한다. 내가 내 사주팔자에 있는 일을 하고 살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해주는 사람이 명리학자, 역학자, 역술인이다. 잘하고 있는 부분은 칭찬해주고 아니게 가고 있는 부분은 왜 아닌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알려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수긍을 얻어내야 한다. 마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리 알려줘도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으니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중년의 나이가 넘어서면서 성장보다는 결실을 둘러보고 마무리를 준비해야할 시점이 오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같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자신만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다져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함은 인간이 본래 고독한 혼자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트러블이 발생한다. 그때까지 자신만의 생각과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온지라 자신이 가진 생각이 누구나가 가지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어떤 특정한 생각들이 나만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착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똥철학임에도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철학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인간은 고독을 고독으로 즐기지 못하고 고립되기 시작한다. 나와 생각이 같으면 오케이고 아니면 적으로 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가 사주이론의 핵심임 인간의 대운에 따른 인간의 반응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고립을 통해 인간은 태초의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는 차원이 다른 고립에 의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 이후의 과정은 지금까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라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걸 느낄 때 그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제 만난 잘 모르는 사람과는 친할 수 있지만 오래 가까이 지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그게 통하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가족과 친구, 지인 모두를 개선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이럴 때 정치적 이념의 대립이나 종교의 대립이 함께 한다면 그 고립은 깨지기 힘든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럼 이러한 고립을 깨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자각 밖에 없다. 스스로 사고를 유연하게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이해하는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유연한 사고를 갖게 해야하고, 특히 자신의 자식에게 유연함을 보여줘서 그 자식이 나이들면서 그 유연함을 배우게 해야한다. 꼰대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고리타분한 선생님이나 기성세대를 말하는 은어라고 나와 있다. 근데 사실은 극복이 안되는 아버지를 부르는 은어다. 어찌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가? 하고 화가 나는 분이 있다면 꼰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이 꼰대가 되지 말자는 취지다. 유연해지자, 그럼 원래가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라도 그 고독은 원할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

 

 

 

 

부산이란 지역이 사주명리학계의 명사들이 많다는 건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필자도 부산사람이고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도 주소지를 부산에 두고 있다. 그래서 부산에 대한 사정이 밝아서 이런 세세한 얘기를 해드릴 수 있지 싶다.

 

필자가 듣기로 6.25 한국전쟁 이전 부산에는 사주명리학을 하는 사람 중 이름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에 부산이 바닷가인 까닭에 포구마다 큰무당이 있었고, 산 중에는 유명한 사찰들이 있어 운명에 대한 부분을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함경도와 평안도의 사주명리학자들이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에서 피난 온 사주명리학자들이 부산에서 돗자리를 깔게 되었다. 여러분들이 궁금한 점은 어느 동네에 있는 철학관들이 용했냐 일 것 같다. 그건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발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산은 원래 포구가 발달한 지역이라 처음엔 철학관을 차린다고해도 장사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다만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 처음엔 철학관 장사가 잘 될 가능성이 많은 지역이었다. 부산의 피난촌은 중구와 동구, 영도가 주를 이뤘다. 국제시장부터 부산역, 범일동의 조방앞, 영도 영선동 등이 그 지역이다. 그 후 여기에서 시작한 분들 중 부산의 원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래, 대신동으로 옮기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진짜 부자들, 그러니깐 기업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하는 사주를 보는 분들은 60년대와 70년대 부산의 모든 기능이 모여 있었던 조방앞 특히 은행을 비롯한 사채, 금융권이 밀집한 부산 진시장 부근으로 옮겨오셨다. 이곳에서 개업을 하신 분들은 일반인 손님은 받지않고 기업, 금융, 정치, 사법계의 고객만 받아서 대중적으로는 유명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하루종일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며칠을 사랑채에서 기다리다 사주를 보고 올라가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나 조흥은행, 제일은행, 기업은행, 부산은행 등을 사이에 둔 부산진시장 옆 철도건널목을 철까치라고 불렀는데, 철까치 근처에 개업하신 분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도사들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다. '철까치'라는 말은 북한말로 철로옆, 철길근처라는 뜻이다. 아쉬운 점은 이곳에 계시던 분들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손님들이 문 밖을 메운 까닭에 대부분의 철학관하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사이드잡으로 하던 교육이나 문하생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철학관들은 서기를 둔다. 손님을 받아서 생년월일시를 들어 사주팔자를 뽑게하고 그것의 반복과 교육을 통해 문하생을 키운다. 흔히 고수가 수제자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밥은 줄테니 알아서 배우라는 일종의 도재식 교육으로 제자를 키운 것이다. 지명도가 떨어지거나 상담능력이 낮은 철학관은 손님이 적을 것이므로 교육생을 받아 교육비를 받으면서 교육을 해주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의 경우 큰 돈이 오가기 때문에 거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접수를 맡긴다. 그래서 아들이 없는 경우엔 거의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어제 아쉬은 얘기를 들었다. 이 철까치 철학관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명세철학관이 문을 닫은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런 얘길 캐나다에서 들으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 했다. 전통사주명리학을 하시는 분 답게 사주에 나와 있는 미래를 그냥 읽어만 주는 방식의 사주를 봐주시는 분이었다고 들었다. 이 철학관의 선생님은 기업보다는 주로 개인사주를 보시는 분으로, 그래서인지 조방앞에선 많이 떨어져 있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부산진역과 가까워서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최근까지도 성황을 이루었고, 아무래도 개인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작명에 더 집중을 하시는 편이라 작명으로 더 유명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전하신 분을 얼마전 20년만에 만났다. 손자의 이름을 짓기위해 가셨다가 발걸음을 돌렸다는 말씀과 함께... 필자가 제자는 아니기에 모셨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철까치 주변의 도사님 중 넘버원이셨던 정도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자긴 이제 다됐으니 필자를 찾아가란 말씀을 듣고 제대하는 날에 맞춰 나를 찾아오셨던 분이다. 한때 대한민국 신발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장님이셨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해 진짜 그만 둬야 되냐고 몇 번을 물어오셨고, 제가 보기엔 그렇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있다. 그 후는 사실 필자의 기억에서 지워진 일이지만 1년에 걸처 회사를 매각했고 사업을 필자 말대로 접었다고 한다. 사실 접고나선 후회를 엄청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회도 잠시 매각하고 불과 몇 개월 후에 IMF가 터졌고, 다른 공장들이 문닫을 때 자기는 이미 확보된 현금으로 금융과 부동산으로 돈을 더 번 후에 신발사업으로 인연이 있었던 스케쳐스 사장의 도움으로 미국에 이민 가셔서 지금은 미국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 당시 같이 필자를 찾아오셨던 LA기어란 추억의 브랜드를 자신보다 더 크게 하셨던 최사장님이란 분은 업을 계속하시다가 IMF이후 부도가 나면서 연락이 끊어졌다고 믿고 안믿고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신뢰가 갔다는 말씀에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필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한눈에 알아봤다고 하신다. 얼마전 머리카락을 짧게 쳤더니 제대했을 때 모습이 보이셨나 보다. 워낙 노안이어서 나이들면 오히려 안늙는다는 소릴 많이 들었지만 그 덕에 오랜 인연이 한번에 알아봐주니 반가웠다. 이 분이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당시 필자도 이 분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 즈음 필자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의사 진단이 사망할 것이라고 나오는 바람에 피해자일수 밖에 없었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가해자로 둔갑해 그당시 고급차였던 그랜저와 프린스 수리비 및 말도 안되는 각종 병원비까지 물 처지에 몰렸다.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사장님의 인맥 덕분에 쌍방과실로 겨우 낮출 수 있었다. 다만 진실을 밝히기엔 자신의 인맥도 무리라고 했다. 그 후 그에 역인 것들은 필자의 능력으로 다 죄값을 치르게 했지만 이 분의 도움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었던 필자의 20대 후반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얼굴을 지구 반대편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위해 나타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같은 비행기를 탄 것도 아니고 미국시민권자는 외국여권소지자와는 다르게 캐나다에서는 자국민 대접을 받기 때문에 밴쿠버국제공항이란 메이저급 공항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마주친 것이다. 출국장을 나서면서 운동화 끈이 풀어진 걸 발견하고는 카트를 통로 벽으로 붙어 끈을 고쳐 매는데 종이 한장이 필자의 발 앞에 떨어졌다. 노인 한분의 메신저백에서 빠진 듯 보였다. 일어서서 그분을 부르려던 순간 한무리의 여행객들이 그 분의 뒷모습과 나 사이를 갈랐다. 내가 카트를 밀고 출국장 밖으로 나갔을 땐 그 분이 누구였는지 잠시 본 뒷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마중 나온 와이프와 인사한 후 그 종이가 무언지 자세히 보게됐다. 한장 짜리였지만 대충 봐도 계약서 같아 보였다. 와이프와 같이 나온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건 일종의 차용증 같은 것이라고 했다. 금액이 컸다. 분명 없어진걸 알면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살피는 노인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앞서가던 그분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익스큐즈미 하며 혹시 찾는게 있느냐고 물었고, 계약서라고 하셔서 내가 주은 종이를 전했다. 그 때 서로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그 사장님이었다. 잠시간의 인사를 끝내고 내 한국과 캐나다, 미국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어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자신이 꼭 매입하고 싶었던 건물을 자신이 소유한 땅과 교환하는 거래가 있었는데, 내 덕분에 원만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달 필자의 고객이 가진 땅 몇 필지를 팔면 그걸 산다는 분의 사주로 봐서 땅 전체의 가치를 올려줄 것이라고 컨설팅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매수자가 바로 이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어준 계약서는 그 거래와 관련된 계약서였다고 했다. 그 건으로 필자에게 비지니스적인 좋은 제안을 해오셨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가 있고, 서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이가 있다. 사주명리학적으로 보면 그건 혈연이나 친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걸 필자는 일궁합 또는 궁합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주 구조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일궁합이 맞는 사주의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어슬프게 그런 걸 경험한 사람들은 인맥관리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많은 사람을 알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런 경우 오히려 많은 피해를 입는 구조의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분명한건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보단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고 파악하고 판단하는 노력이 당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사람을 찾아나서 보자.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알아두고 가까이 있으면 그냥 도움이 될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지 모르니 일단 많이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도구로 필자는 SNS를 추천한다. 느슨한 친분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자 현대의 인맥교류방법이다. 필자는 실제로 SNS를 통해 교류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주고 있다.

 

지리산의 어느 암자에 간적이 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으나 그치지 않아 하루밤을 묵어야할 처지였다. 스님은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날 밤 등산복 차림의 노인 한분이 암자를 찾았다. 스님은 엄청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옛날 얘기를 주고 받으셨다. 필자는 정말 친한 사이인가 생각하면서 두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오신 노인분이 20여년전 필자처럼 비를 피하러 오셨던 적이 있었단다.가 너무 많이 내려서 3일을 묶고 가셨다는 얘기였다. 그게 다였다. 무료한 산 생활에서 절을 찾는 보살을 빼면 그런 식으로 3일 씩이나 묶고 가는 사람은 20여년 동안 이 분 한분이셨던 것이다. 그동안 한번도 안부를 전한 적도 마주친 적도 없었지만 '아직 여기 계셨네요. 아, 어..' 하다가 그 3일의 얘기를 쏟아내시는 거였다. 인간의 인연이란 원래 이런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사회란 타이트한 구조 속에서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놓고는 서로 고통스럽게 참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이 절대고독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 말은 스스로 혼자있는 시간을 갈구하고 있다는 말의 반증인거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각각이 떨어져서 독립생활을 했을 것이고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 모였을 것이다. 현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의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만 불과 100여년 전 산업혁명 전에는 인간이 모일 일은 전쟁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산업혁명의 집단주의적 생산과 소비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SNS 같은 인간에게 느슨함과 자유를 주는 도구가 생겨나고 점차 확산되면서 사회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을 맞대고 어울려야 인간미가 있다는 건 전쟁터의 전우애나 노동착취를 당하던 시절 좁은 방안에 온가족이 엉켜살던 시대의 깝깝함을 미화하고 싶어한 사람들에게 세뇌당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주명리학으로 본 인간은 모두 독립체이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편하기 위해 참거나 편하기 위해 휘두른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그것 뿐인 것이다. 하지만 휘두르는 사람보단 참는 사람이 많다. 아니 휘두르는 사람은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없어 못보는 것 뿐이다.

 

'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지금 OO해서 죽고 싶을 것 같은데?'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부모님이랑...'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저 좋자고 그렇게 하면 회사는...'

  ......

 

편하게 살자. 편하게... 이기적으로 살자. 사실은 그게 남을 돕는 거다.

 

 

 

인컨설팅 역학연구소    이동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