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경고... 움켜쥐면 부서진다
天下神器 不可爲也。爲者敗之 執者失之。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천하는 신령한 그릇이라 억지로 어찌할 수 없다.
억지로 하려는 자는 그르치고, 움켜쥐려는 자는 잃는다.
노자는 도덕경 29장에서 천하를 얻으려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천하는 신기(神器), 신령한 그릇이다.
억지로 주무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주무르려는 자는 그르치고 움켜쥐려는 자는 잃는다.
모래를 쥐어 본 사람은 안다.
세게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빠져나간다.
그리고 노자는 그 이유를 덧붙인다.
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強或羸
만물은 저마다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것이 있고 따라가는 것이 있으며,
뜨거운 것이 있고 찬 것이 있고,
강한 것이 있고 여린 것이 있다.
천하만 신기가 아니다.
사람이야말로 신령한 그릇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이 그릇을 움켜쥐려다 부순다.
통제하려는 손은 늘 사랑의 얼굴을 하고 온다.
자식이 걱정되어 그의 진로를 쥐고,
배우자가 염려되어 그의 관계를 쥐고,
부하가 미덥지 않아 그의 일을 쥔다.
그러나 쥐는 순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쥐어진 쪽에서는 숨이 막히기 시작하고,
쥔 쪽에서는 불안이 자라기 시작한다.
통제는 불안을 달래려는 행동인데,
얄궂게도 통제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쥐고 있으니 놓치는 순간이 계속 보이기 때문이다.
열 가지를 쥔 사람은 열 가지를 걱정하고,
전부를 쥔 사람은 전부를 걱정한다.
움켜쥔 자가 잃는 것은 모래만이 아니다.
제 마음의 평화부터 잃는다.
혹행혹수(或行或隨),
저마다 결이 다르다는 말이 처방의 핵심이다.
통제욕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확신이 있다.
옳은 길은 하나이고 내가 그것을 안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앞서가는 아이를 잡아 세우고 느린 아이를 끌고 간다.
그러나 사람은 규격품이 아니다.
나는 타고난 결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읽는 일을 업으로 해 왔고,
그 자리에서 확언할 수 있다.
남의 결을 제 결대로 펴려는 시도는 예외 없이 실패한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상대가 꺾인 경우일 뿐이고,
꺾인 것은 언젠가 제 값을 청구한다.
그러면 다 놓아 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다. 노자가 버리라 한 것은 세 가지,
심함과 사치와 지나침이다(去甚 去奢 去泰).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악력을 푸는 것이다.
방향은 함께 보되 속도는 그의 것으로 두고,
울타리는 치되 울타리 안에서는 뛰게 두고,
조언은 하되 결정은 넘겨주는 것.
쥐는 손과 받치는 손의 차이다.
받치는 손 위에서 모래는 흘러내리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가장 세게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쥘수록 가까워지고 있는가, 빠져나가고 있는가?
빠져나가고 있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힘을 푸는 것이다.
신령한 그릇은 받쳐 든 손에만 머문다.
위 글은 필자가 출판을 위해 써놓은 아직 제목도 정하지 못한 노자 도덕경을 베이스로 하는 에세이다.
도덕경은 노자가 나라를 경영하는 군주와 자신을 경영하는 개인에게 바친 글이다.
지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시점에
그렇게 움켜쥐려는 분께 이 글을 드리고 싶다.
인컨설팅 이 동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