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도,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는 의외로 드물다.
다들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날지는 고민하면서,
어떻게 나쁜 관계를 끝낼지는 잘 배우지 못한다.
그런데 필자가 상담을 하며 절감한 건,
사람을 가장 망가뜨리는 게 잘못된 만남보다
'끝내야 할 관계를 못 끝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끝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관계에 질질 끌려다닌다.
왜 그럴까? 끝내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쏟은 것이 아까워서다.
사람들은 흔히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 참았는데",
"들인 시간이 얼만데" 하며 못 떠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이미 쏟아부은 시간과 마음은
떠나든 안 떠나든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돌아오지 않을 과거가 아까워서,
돌아올 수도 있는 미래까지 같은 관계에 갈아 넣는다.
밑 빠진 독에 이미 부은 물이 아까워서,
남은 물까지 계속 붓는 격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지금 결정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쏟았나'가 아니라
'지금부터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떨까'여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판단해야 한다는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익숙함이다.
사람은 익숙한 고통을 낯선 평온보다 편하게 느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아무리 힘든 관계라도 익숙해지면,
그걸 끝내고 혼자가 되는 낯선 상태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람만 한 사람도 없다",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하며 또 주저앉는다.
특히 앞에서 말한 혼자 있는 능력이 약한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잘 빠진다.
혼자가 무서워서,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라도 붙잡고 있는 거다.
그러니 헤어질 결심은 사실
혼자서도 괜찮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나를 해치는 관계를 끊어 낼 수 있다.
그럼 어떤 관계를 끝내야 하나?
필자가 사람들을 보며 세운 기준은 단순하다.
첫째, 나를 위험하게 하는 관계. 몸이든 마음이든,
폭력이 있는 관계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끝내야 한다.
"변하겠다"는 말은 앞에서도 말했듯 말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행동으로 확인할 일이지, 매번 믿어 줄 일이 아니다.
둘째, 함께 있을수록 내가 점점 작아지고 망가지는 관계.
좋은 관계는 함께할수록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나쁜 관계는 함께할수록 내가 자꾸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그 방향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다.
끝내는 일에도 태도가 있다.
잘 헤어지는 것도 능력이다.
미워하며 헤어지면 그 미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니 가능하면,
상대를 악마로 만들지 않고 헤어지는 게 좋다.
"저 사람은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결론 내려야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미움을 연료로 떠나면
그 미움이 다음 관계까지 오염시킨다.
"이 사람과 나는 여기까지였다, 서로 안 맞았을 뿐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건강한 마무리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잘 끝낸 사람이 다음을 잘 시작한다.
그러니 끝내야 할 관계라면, 너무 늦지 않게,
그러나 너무 모질지 않게 끝내는 법을 배워 두자.
이동헌이 전하는 대인관계에서 손해보지 않는 궁극의 처세 에세이
<적당한 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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